尋劍堂

10월 27일 무상님 자료입니다.

難勝 2007. 10. 25. 04:24
 

                                                   10월27일 자료

(3) 唯識學의 中心思想 - 薰習과 現行                  妙珠스님/동국대 교수


우리가 보통 태아영가 또는 수자령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태아는 임신 첫 주부터 엄연한 인격체라고 생각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낙태(落胎)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불교에서는 낙태행위를 살인에 버금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극단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계율(戒律)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바탕에는 항상 중도정신(中道精神)이 깔려 있습니다. 중도라는 것은 계율을 지켜야 할 때는 철저히 지켜야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님들은 살생(殺生)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면 僧軍이라고 하여 살생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는 열고 막는 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낙태 문제도 이와 같습니다. 될 수 있으면 낙태를 사전에 예방하여야 하겠지만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반드시 후속조치를 취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천도재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아영가 즉 수자령은 낙태를 하고 나서 10년 정도까지는 어머니의 주위를 돌면서 엄마를 그리워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태아영가는 성인영가보다 빨리 다른 곳으로 잘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0년이 넘으면 그 그리움이 증오로 바뀝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부모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아 영가가 끼칠 해가 무서워 천도재를 지내기보다는 도의적인 면에서 그리고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죽은 태아를 연민하는 마음으로 천도재를 지내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도재를 지내면 그 공덕(功德)으로 인해서 태아영가가 설사 다른 몸을 받아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천도재의 음덕이 곧 공덕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모든 인식(認識)과 행동(行動)의 결과를 전부 저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또 그것이 윤회(輪廻)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결코 소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뢰야식은 그 안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를 유지하고, 신체의 기능을 유지하는데도 작용합니다. 한 마디로 명줄과 같은 것입니다.  아뢰야식은 군의 총사령관이 군대의 모든 것을 통제, 지휘하듯이 신체의 모든 대사들을 통제하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아뢰야식 안에 어떤 내용이 저장되느냐에 따라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부분의 병이 심인성(心因性), 즉 마음에서 비롯된 병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아뢰야식이 바로 신체기능을 총괄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을 미워한다거나 스스로 비관하는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속상해도 ‘다음에는 다 잘 되겠지’ 하면서 낙천적으로 생각을 해야지 ‘죽고 싶다’라고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면 그것이 그대로 아뢰야식 안에 저장이 됐다가 나중에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결국은 죽음의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뢰야식의 인식대상, 즉 아뢰야식도 하나의 식(識)인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眼識)이라고 할 때는 바로 시각(視覺)을 이르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는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바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는 인식의 주체이고 ‘색성향미촉법’은 인식의 대상인 것입니다.

바로 그 대상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종자(種子)입니다. 아뢰야식 안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는 늘 끊임없이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종자들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체기능(身體機能)입니다.  아뢰야식은 이 신체기능을 인식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 영역에 있으면서도 신체의 현상들을 늘 보고 있습니다.

셋째는 자연계(自然界)입니다. 자연계라는 것은 시각과 공간을 초월한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자연계가 무의식의 영역에 있지만 아뢰야식에서는 이곳도 인식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과거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것. 멀리 있는 것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 때문에 아뢰야식은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혹 가까운 장래에 좋은 일이나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꿈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뢰야식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연계를 인식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낮에는 의식이 너무나 생생하게 깨어 있기 때문에 그 같은 꿈을 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 의식이 좀 잠들 때인 밤에는 바로 그 상징적인 내용을 꿈으로 올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앞날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의식이 예민하고 정신이 맑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꿈이 잘 맞는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아뢰야식의 인식대상이 자연계이다 보니,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환경이 아뢰야식 안에 다 조성 되어 있습니다. 씨앗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던 상황이 외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난다거나 무슨 일을 한다거나 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미 아뢰야식 안에 그 같은 상황이 다 조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뢰야식 안에 어떤 내용을 저장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삼업(三業), 즉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내용들이 모두 저장된다고 하니 남이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지고 바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또 인과법(因果法)처럼 업종자로 저장이 되어 있는 모든 것이 때가 되면 스스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므로 자주 참회를 하고 업장을 다스려 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과 행동의 모든 결과가 아뢰야식 안에 저장이 될 때, 그것을 種子 또는 習氣라고 했습니다. 종자라는 것은 씨앗이라는 뜻인데, 씨앗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난 뒤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고 또 그 씨앗을 심었을 때 꽃이나 열매가 피게 됩니다. 그래서 씨앗은 어떤 결과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행동의 결과가 아뢰야식 안에 저장이 되고 또 저장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하나의 가능성을 내재(內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자는 업의 종자인 것입니다. 선업(善業)이든 악업(惡業)이든 업의 종자입니다.  또 업종자(業種子)라고도 하고 업습기(業習氣), 습기(習氣)라고도 합니다. 결국 반복적으로 익혀지는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하나의 성격으로 나타나서 거의 같은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흐름, 즉 에너지이므로 이 습기는 특수한 정신적인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업종자의 작용의 원리는 훈습(薰習)과 현행(現行)입니다. 훈습이라는 것은 8식(識)1)가운데에서 아뢰야식을 제외한 나머지 7가지 식의 모든 결과가, 말과 생각과 행동의 모든 결과가 아뢰야식 안에 종자로서 저장이 되고 또 이미 저장되어 있던 종자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정장이 되고 힘이 커지는 것을 말합니다. 훈습은 결과로서 저장이 되고 이미 저장되어 있는 종자에 새로운 영향을 반복적으로 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행은 종자가 아뢰야식 안에 저장이 되어 있으면서 새로운 훈습에 의해서 순간순간 변하기도 하면서 때가 되면 떠올라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업종자의 작용의 원리는 훈습과 현행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첫째는 일단 훈습이 된 것은 반드시 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구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선(善)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착한 사람도 고통을 받는다.  악(惡)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나쁜 사람도 즐거움을 받는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다 익으면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의 열매가 다 익으면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선업의 종자를 나름대로 쌓았지만 현실적으로 바로 어떤 응답이 오지 않을 때 답답해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구경의 말씀처럼 때가 되면 지은 만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훈습이 된 것은 반드시 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과법(因果法)입니다.

두 번째는 훈습된 것이 현행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현행되려면 반드시 그 전에 훈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훈습, 즉 반복적으로 익혀야만 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앞날을 내다보고 어떤 소원을 성취하려면 미리미리 대비를 해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뢰야식 안에 업종자로써 저장이 되면 그 결과를 반드시 나중에 받데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결과를 불러 옵니다.

우리가 살면서 악업을 지을 수도 있고 때로는 전생에 지은 악업으로 인해서 금생에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소에 업장을 소멸하기 위한 참회발원(懺悔發願)이 없다면 그 업장이 나타날 때가 되면 말리지 못합니다. 평소에는 판단력이 좋은 사람이더라도 지은 업에 대해 대가를  치를 때가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돼 결국엔 업장을 소멸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지은 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 대가는 꼭 치러야만 끝이 나는 것입니다.               - 끝 -


※ 그동안 3주에 걸쳐서 묘주스님의 유식학의 중심사상을 게재하였습니다. 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게재한 보람이 있겠습니다.  묘주스님의 본 원고는 계속되지만 요번 주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졸업이 4주밖에 남지 않아서 제 나름대로 정리한 “불교입문”(교재)을

11월 중에 다시 복습하는 의미에서 게재하겠습니다.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므로 참고하면서 법우님들도 복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유식학의 중심사상 읽어 주시어 감사합니다.       무상 합장


普賢十願

1.禮敬諸佛 2. 稱讚如來 3.廣修供養 4. 懺悔業障 5. 隨喜功德

6.請轉法輪 7. 請佛住世  8.恒修佛學 9. 恒順衆生 10.普皆廻向

                             -終-




1) 8識 : 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 末那識. 阿賴耶識

 *말나식 : [명사]<불교>삼식(三識)의 하나. 모든 감각이나 의식을 통괄하여 자기라는 의식을 낳게 하는 마음의 작용. 객관의 사물을 자아로 여겨 모든 미망(迷妄)의 근원이 되는 잘못된 인식 작용을 이른다. ≒말나(末那), 사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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