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 떨어졌다고 부모한테 꾸중을 들은 사춘기 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했다는기사를 접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더러 뒤질 수도 있을 성적에 대한 부모의 꾸중이 얼마나 혹독했기에 죽음까지 몰고 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으로는 요즘 10들이 얼마나 심약하게 크고 있는가를 돌아보게도 됩니다. 정말 야단맞는일이 목숨과도 바꿀 만큼 치명적인 일일까요. 꾸중을 약이 되게, 인생을 바꾸는 계기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인지요.
그럼 점에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아나율 존자(범어로 아니롯다.(Aniruddha))는부처님의 호된 꾸중을 삶의 전환점으로 삼은 대표적인 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원정사 강당에서 부처님께서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설법도중에 아나율 존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슬쩍 낮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우리도 마(魔)중에 제일 무서운 마가 수마(睡魔)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설법을 마치신 부처님께선 조용히 그를 불러 앉히셨습니다. 그리곤 다음과 같이 충고를 주셨지요.
"벗이여, 그대는 진리를 찾아 출가한 것이 아니었던가.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잠을 자다니........ 그 첫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부처님의 날카로운 지적에 그는 마음의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그리곤 몸이 썩어 부서질지라도 다시는 잠을 자지 않겠다는 원을 세움니다.
고문 가운데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고문이 잠재우지 않는 방법이라고 하지요? 아마 아나율 존자가 수면을 거부하는 일 역시 힘겨운 고행이었을 터입니다.
수마와 싸워가며 그렇게 정진하다 보니 아나율 존자는 눈의 시력을 잃고 맙니다. 도중에 명의사 지바카가 그를 진찰하기도 했고, 부처님께서 지니치게 수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타이르시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그때마다 아나율 존자는 "부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은 결단코 깨뜨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지요. 결국 눈의 시력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대신 아나율은 지혜의 눈(心眼, 天眼)을 떠 "천안제일"의 불제자로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설법 현장에서 조는 불자들을 보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졸다가 문득 부끄럽게 여겨정신차리는 쪽이 있는가 하면, 설법을 마치도록 정신없이 졸다 깨는 쪽도 있게 마련이지요.아나율 존자에겐 스승의 설법 때 졸았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수치심으로 여겨졌던가 봅니다.
아나율 존자는 오늘날 시각장애인 불자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는 존재입니다. 단지 보이지 않는 것은 "불편"한 것일 뿐 "불완전"한 것이 아님을 그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두 눈의 시력을 온전히 갖고 있어도 볼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이웃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그는 정반왕의 동생인 감로반왕의 둘째 아들로 부처님의 사촌동생입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큰 인물이 될 것으로 만인의 기대를 얻었던 인물인데요. 카필라성에서 부처님의 설법을접한 뒤에 출가를 결행했습니다. 출가를 결행할 당시에 하나뿐인 형 역시 출가를 결심하던차였다고 하죠. 형과 상의해 한 명은 대를 잇기 위해 남고 아나율 홀로 출가의 길을 떠나기로 했나 봅니다.
이때 그의 어머니가 결사적으로 만류를 했습니다. 아들의 단단한 결심을 접한 어머니는 마침내 석가족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뛰어난 젊은인 밧디야가 출가한다면 허락해 주겠노라고 약속하게 되죠. 결코 밧디야는 출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나율 존자의 뜨거운 신심은 마침내 밧디야까지 설득해 출가시키고야 맙니다.그뿐만 아니라 주위에 가까운 이들 다섯 명마저 출가사문의 길로 이끌게 되었지요. 그 가운데는 난타와 우바리 그리고 반역으로 유명한 데바닷타도 들어 있습니다.
아나율 존자의 적극적인 출가의지가 마침내 귀한 인재들을 불문에 귀의케 했던 것입니다. 서원한 대로 잠을 자지 않는 것이나 출가의 뜻을 굽히지 않고 단행한 일화들을 보자면 아나율 존자는 극성스러우리(?)만큼 한 가지에 몰두하는 철두철미한 성격이었던 듯합니다.
앞을 못 보는 그에게 해진 옷을 꿰매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부처님 교단은 언제나 자신의일은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 기본이지요. 그런점에서 바늘귀에 실을 매는 일은 시력을 잃었
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일 일이었습니다. 바늘귀에 실을 꿰다 못한 아나율 존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 주고 공덕을 쌓을 이웃은 없을까?"
그러자 누군가가 그의 곁에 다가와 실과 바늘을 건네받으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
다.
"벗이여, 내가 그 공덕을 쌓겠소."
그 몫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부처님이셨습니다. 깜짝 놀란 아나율 존자가 다시 여쭈었지요.
"더 이상 행복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신 성자께서 왜 공덕을 쌓으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나율 존자여, 나도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공덕을 쌓으며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내가 쌓는 공덕은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중생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는 아나율 존자의 떨어진 옷가지를 꿰매여 주십니다.
눈먼 제자의 옷을 손수 꿰매 주신 자상하신 부처님의 모습은 눈물 겹기까지 합니다. 오늘날몸 불편한 장애인 벗들 곁에 우리 불교가 어떤 모습으로 나투어야 할지를 일러주는 일화가아닐 수 없지요. 더불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만중생의 행복을 추구한다 하신 부처님의 모
습, 공덕을 쌓는 자세에 몸소 보여주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선가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이후에도 수행하다(頓悟漸修)는 것과 상통하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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