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출가하기 전 고타마 싯달타 태자시절의 이야기부터 들려드리지요.
태자가 출가를 결심하고 산책길에서 돌아오던 날, 정반왕은 태자에게 아들이 탄생했음을 기쁘게 알려줍니다. 아들의 탄생소식을 듣는 순간 싯달타 태자는 혼자말처럼 말했습니다.
"장애가 생겼구나, 속박이로구나."
자녀에 대한 애정이 출가를 가로막는 얽매임이 될 것을 염려하셨던 것 같습니다. 장애, 인도말로 라후라(Rahula)라 합니다. 그 혼잣말은 그대로가 아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태자는 아들이 태어난 지 이fp만에 카필라성을 넘어 출가의 길을 떠납니다. 그 아들을 한역경전에서는 라후라(羅候羅)라고 부르지요.
부처님께선 생전에 여러 차례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첫째가 출가한 지 한 9년쯤 뒤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석가족들은 가문의 자랑스런 어른 부처님을 극진하게 맞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선 궁궐에 머물지 않으신 채 평소처럼 매일 탁발을 다니고 설법을 들려주셨던 모양입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 정반왕께서 사람을 보내 "수천명의 수행자에게 공양하는건 어렵지 않은 일이니 얻어먹지 말고 궁궐에 와서 머물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선, "이 일은 출가자의 바른 수행방법입니다."라며 탁발을 쉬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교화에 감동했고, 이틀째 되는 날에는 난다를 비롯한 석가족의젊은이들이 줄지어 부처님 제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출가 전 아내였던 야소다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아홉 살이 된 아들 라후라의 손을이끌고 탁발하고 계신 부처님을 가리키며 "저분이 네 아버지다. 아버지께 가서 당신의 재산을 상속해 달라고 말씀드려라"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 관해서는 경전마다 조금씩 그 내용이 달리 기록돼 있습니다. 그 이야기 그대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고도 하고, 부처님의 자애로움에 라후라는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 곁에 있으니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더 타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왜 야소다라가 아들을 시켜 부처님께 재산 상속 이야길 꺼낸 것인지, 그 대목이 몹시 흥미롭기만 합니다.
세속의 모든 것을 떨치고 출가의 길을 떠난 과거의 남편, 그리고 이제는 인류의 스승이 돼고향땅에 교화의 길을 나오신 부처님께 왜 야소다라는 상속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일까요.
부처님께서 라후라가 한 이야기에 고심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곤 상수제자 사리불을 불러라후라의 출가문제를 상의하십니다. 욕망의 덩어리인 재산상속보다 중요한 것이 진리라고 하는 보배의 상속이라고 부처님이 파악하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곧이어 라후라는 출가를 합니다. 아홉 살 된 라후라, 그의 교육은 목건련 존자가 맡았습니다.
아들이 출가한데에 이어서 사랑하는 손자까지 출가의 길을 떠나자 충격을 받은 정반왕은 부처님께 간곡한 부탁을 올리게 됩니다.
"부처님, 사랑하는 아들이었던 당신의 출가는 내게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왕위를 이을 라후라마저 출가를 했습니다. 자식 사랑하는 아비의 심정을 헤아려서 제발 앞으로는 부모의 허락없이 출가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율장> 대품에 보면 그때부터 "출가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규칙이 보태어졌다고 합니다.
라후라는 나이가 어린데다가 궁중에서의 습관이 몸에 밴 탓에 행자생활을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수행하지도 못했고 거짓말도 종종했으며, 주위 수행자들을 놀려대기도 한 장난꾸러기였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이 계신곳과는 정반대의 장소를 일러줘 헛걸음을 시켜 놓곤 즐거워하기도 했다고 하죠. 그 나이 또래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개살궂은 모습이었겠지요.
주위 평판이 좋지 않자 부처님께서 라후라의 방으로 찾아가십니다. 세숫대야에 물을 떠오게한 뒤에 발을 닦으시곤 라후라에게 이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발을 씻어 더러워진 물을 어떻게 마실 수 있겠냐고 답하는 라후라를 향해 부처님께선 이렇게 이르시지요.
"그대도 이 물과 같다. 본래 맑은 이 물 같은 마음으로 출가를 했거늘 수행에 힘쓰지 않고
마음을 맑히지도 않으며, 계율을 지키지도 않았다. 탐. 진. 치 삼독의 때를 가득 안고 있으니 마치 이 물처럼 더러워져 있구나."
다시 부처님께선 라후라에게 대야의 물을 버리라 하시곤 이 대야에 음식을 담아먹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으십니다. 손발을 씻던 대야엔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없다고 답하는 라후라를 향해 부처님께선 또 이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대도 이 세숫대야와 같다. 수행자로서 거짓말을 일삼으면 그 마음은 더러운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리고 세숫대야를 발길로 한 번 걷어차시면서 다시금 이렇게 이르십니다.
"그대도 이 세숫대야와 같다. 수행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면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목슴이 다하도록 깨닫지 못한 채 헤매이기를 이 물 그릇처럼 할 것이다. 라후라여, 정신을 가다듬어라!"
이 준엄한 꾸지람을 들은 아홉 살 라후라는 속으로 깊이 뉘우쳐 정진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진리에 눈뜨고 아라한이 되지요.
<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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