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후라의 행자시절 또 다른 일화입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무실 때 수많은 사부대중이 모여 밤늦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신 스님들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고, 젊은 스님들은 재가불자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심한 잠 버릇을 하는 재가불자들 때문에 스님들이 잠을 설쳐야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틑날 부처님께선 제자들에게 출가자와 비구계를 받지 않은 일반인은 함께 자지 말라는 규정을 정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부터 라후라는 잠자리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새로 정해진 규정인만큼 누구도 아직출가하지 않은 라후라를 재워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잘 곳을 잃은 라후라는 헤매 다니다가 부처님께서 사용하시는 화장실에 들어가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화장실에서 라후라와 마주친 부처님께선 그 사정 이야길 전해 들으시곤, 제자들을 불러모으셨습니다.
"사리불이여, 어제 라후라는 화장실에서 눈을 붙였다. 이렇게 한다면 출가해 아직 계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자야 하는가. 규정을 바꿔서 행자들은 비구방에 이틀씩 머물게하고 사흘째 되는 날까지 거처를 찾아 주도록 하라."
부처님의 이 말씀은 자신의 아들이 화장실에서 잔 것에 대한 꾸지람이 결코 아닙니다. 제자들이 계율 지키는 것에만 급급해서 새로 불문에 귀의한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 것에 대한경종이지요. 물과 젓처럼 화합하며 사는 교단에서 서로 돕지 않고 계율의 문구에 집착해 사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는 큰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날 화장실에서 잔 라후라에 대해 많은 스님들의 칭찬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더러는 부처님께서 라후라를 챙겨주지 않으셨다는 비난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전에는 악마가 부처님을 향해 사랑하는 자식을 화장실에서 재우고 당신은 편안히 잘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고 돼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주위에서 쑤군거렸다는 비유라고 여겨지는데요.
그때 부처님께선 이렇게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부처는 모든 제자들에게 평등한 마음(等心)으로 돌본다."
우리네 생각이야 피붙이에 대한 애정은 조금은 남다를 것으로 보이지만 부처님의 눈으로는누구나 한결같이 대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어린 라후라도 여간 의젓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리광부리며 자랄 그 나이에, 쪼르르 아버지를 찾아가 잠 잘 곳이 없다고 투정부릴 법한 그 나이에 말없이 화장실을 찾아들어가 쪼그린채로 밤을 난 것 입니다. 그를 두고 엄격한 규칙과 계율을 지키며 수행에 힘써 이룬 경지라 는 의미에서 "밀행(密行)제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너나없이 아버지의 지위와 아버지의 명예를 팔아 "황태자"의 신분을 유감없이 누리는 세상이 아니던가요.
라후라 존자의 밀행제일다운 면모는 다음의 일화에서도 엿볼수 있습니다.
스승 사리불 존자를 따라 탁발을 나섰다가 이교도 청년에게 봉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뒤로 이교도들의 자리가 점차 좁아져간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던 것 같습니다. 난데없이 나타난 외도청년은 사리불 존자의 발우에 모래를 집어놓고, 라후라의 머리를 주먹으로 치는 등의 행패를 부린 것이죠. 그러나 두 수행자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걸어가기만 했습니다. 그것이 이교도 청년의 부화르 더 돋웠을 것도 같습니다. 이 청년은 계속 쫓아오면서 욕설을 퍼붓고 퍼붓다가 제풀에 지쳐 돌아가고 맙니다.
이때 스승 사리불 존자가 이야기 합니다.
"라후라 존자여, 부처님의 제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분노를 간직해선 안된다. 항상 자비심으로 중생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부처님께서 인욕보다 큰 기쁨은 없다고 이르시지 않았는가. 나도 인욕을 보배처럼 여긴다. 라후라 존자여, 그대도 마음을 억누르고 참아라."
이마에 흐르는 피를 물가에서 씻으면서 라후라는 스승 사리불 존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이 아픔을 견디며 오랫동안 아픔을 당하는 이웃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실제로 세상엔 악한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결코 화내지 않습니다. 다만 진리를 모르는 저들을 어떻게 교화하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진리를 설해도 썩은 시체와 같이 감동할 줄 모르는 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리불 존자가 돌아와 이 일을 부처님께 전해 드리자 부처님께서는 크게 칭찬하며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선 부정한 것이 정의로운 것을 질투한다. 탐욕한 자가 욕심없는 이들을 좋아하 지 아니한다. 그러한 때라도 우리는 참아야 한다. 인욕은 마치 커다란 배와 같아서 능히 곤란을 헤쳐나가며 인욕은 마치 좋은 약과 같아서 능히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리라."
외도의 주먹에 맞아 이마에 피흘리는 라후라스님의 모습은 마치 오늘의 한국불교 현실을 보는 듯한 느낌이지 않습니까. 주지실까지 찾아와 "사탄이여 개종하라"며 찬송가를 부르는 타종교인들, 국보인 <백의관음도>에 십자가를 그려 넣은 이교도들, 부처님 오신 날 전후해서생겨나는 각종 훼불 사건들..... . 그래도 인욕해야 함을 사리불, 라후라 두 스님은 보여주고계십니다.
참고 견디기, 그것이 평화를 이루는 비결입니다. 또한 그것은 불교가 역사속에서 단 한번의종교전쟁을 치른 일이 없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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