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金剛經) 강의(두번째)
解 題 - 경제목 해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은 생략하여 『금강경(金剛經)』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께서 40년 동안 소승경을 비롯한 많은 경을 설법하신 뒤에 말씀하신 중요한 최고의 경입니다. 그러니 당시 부처님 제자들은 금강경을 말씀히기 전에 부처님을 사십년 동안 모시고 다니며 『아함경』, 『방등경』등 금강경을 제외한 다른 대반야경을 다 들은 이 들이었으므로 금강경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기초 법력(法力 : 지식과 수도력)을 갖춘 이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마음을 깨달아 큰 지혜를 밝힌 십대 제자와 천이백 대중을 비롯한 많은 대중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본래 설법을 하실 적에 국민학교로부터 대학원 과정까지의 순서를 따라 불법의 깊은 진리를 체계 있게 설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마음의 법문을 49년간의 교육 기간을 통해 다 설파하시는 가운데 아함경은 국민하교 과정으로 12년간 걸렸고, 방등부는 중학교 과정으로 8년 걸렸으며 “반야육백부”는 고등학교. 전문학교 과정으로 21년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8년 동안에는 “법화열반부”라고 하여 대학의 최고학부에 해당합니다. 그 가운데 금강경은 육백부의 반야사상뿐만 아니라 불교의 전체 사상의 골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님들도 이 금강경을 특히 존중해 왔던 것입니다. 말과 문자를 버리고 교 밖에서 직접 마음을 깨치려는 선종에서까지 존중하는 경전이 금강경입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49년동안 설법하시는 가운데 그 반이나 되는 시간을 기울여 반야경을 말씀하신 것은 이 반야사상이 불교 정신의 핵심이며 중심이 되기 때문인데, 특히 그 가운데 금강경은 반야경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대문으로서 반야육백부를 거의 다 말씀하신 577부째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금강경은 반야사상의 핵심을 결론적으로 천명하신 경(經)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깨치는 요체로서 중생이 이것을 의지하여 마침내 불타의 지혜인 반야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금강(金剛)-마음보다 강한 것은 없다
금강(金剛)이란 다이어먼드를 말합니다. 다이어먼드는 모든 자연 물질 가운데서 가장 강한 물질입니다. 쇠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옛날에는 돌로 연장과 무기를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그것은 돌이 흙이나 나무보다 더 강했던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쇠가 발견되면서 쇠가 돌을 대신하게 됐으니 쇠가 돌보다 훨씬 강했던 때문입니다. 또 쇠를 자르는 강철이 나오면서 강철이 더 강한 것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쇠나 강철보다 더 강한 물질이 있는데 그것이 금강석입니다. 금강석에 의해서 깨지지 않는 물질은 없고 다이어먼드를 당할 물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에 와서는 금강석보다도 더 강한 물질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러나 자연물질 가운데서는 그 이상 굳센 물질은 없으므로 금강은 강한 것 중에 가장 강한 것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진리는 인류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서 제일 완전하고 가장 강하여 다른 어떤 지혜에 의해서도 견줄 수 없는 진리이므로 여하한 물질에 의해서도 부서지지 않는 금강석을 부처님 법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자리가 물질도 허공도 아니므로 불로 태울 수도 없고, 원자탄이 터져서 온 지구가 녹아 없어진다 해도 우리 마음자리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는 때문입니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 물질, 허공, 에너지 등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우리의 생각, 감정까지도 다 변하지만 오직 우리의 마음자리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하는 뜻에서 금강이라 하고 금강경(金剛經)이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금강은 물질 가운데 강도가 가장 강한 최고의 강철로 된 철퇴(鐵槌)를 뜻합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이것에 맞으면 다 부서지지 않는 것이 없으며 어떤 물건으로도 이 금강은 부술 수가 없는 것이므로 금강을 우리 마음자리에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자리는 온 우주 모든 현상계를 창조한 근본 바탕이고 동시에 우주를 다 거두어 들여서 없앨 수도 있습니다. 금강 철퇴와 같은 이 마음자리는 내가 지금 말하는 이 마음자리이고 여러분이 듣고 있는 그 마음자리인데, 자기 스스로나 남이 부술 수도 없는 영원 불멸의 존재이면서 우주 만유에 자유자재하는 그런 거룩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육체 그 자체를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금강처럼 이렇게 위대한 실재인 자아를 망각해 버려서, 웬만큼 설명을 들어 봐도 이런 마음자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부처님의 금강경 법문을 통해 이런 마음자리가 확실히 있다는 것을 말하고 듣게 되었으니 다시없는 공덕이라 할 것입니다.
반야(般若)-마음 밝으면 지혜
금강경을 자세히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하는데, 반야는 지혜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세상에서 생각하는 지혜와는 크게 다른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간의 지혜와 구별하기 위해 번역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간의 지혜는 객관세계에 대한 지식, 논리와 개념에 의한 지식, 이런 것들을 분별하는 지혜를 말하지만, 반야의 지혜는 마음을 깨쳐서 육체가 “내“가 아니고 시간 공간이 벌어지기 이전, 주관 객관이 나누어지기 이전, 곧 마음의 근원에 돌아간 지혜를 말합니다.
“마음”은 곧 “나”입니다. 허공도 물질도 배설하는 기계인 이 육체도 내가 아니고 “나”는 오직 순수한 “나”라는 생각까지도 아니며, 글자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며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아니면서 살아 있어서 얘기할 줄 알고 얘기를 시켜 놓고 그것을 다시 비판도 하는, 이 만사의 주체, 생각의 주체, 우주의 핵심이 곧 “나“입니다. 이것이 생각을 내서 과학, 철학, 종교를 만들고 그것을 마음대로 뒤집어 엎기도 합니다. 이것보다 앞서는 사건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각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고 물질도 몸뚱이도 아닌 “나”, 일체가 다 아닌 “나”, 이것이 우주의 핵심이고 실재이며 곧 우주와 인생의 근본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반야지혜입니다. 그런데 또 아무 것도 아닌 이 “내”가 자유자재로 온갖 생각을 내서 과학도 만들고 철학도 만들고 현상 세계, 즉 꿈속 세계의 모든 것을 만들고 다 압니다. 그런 걸 “반야”라 합니다.
가령 “신심명을 들었다” “금강경을 듣는다” 또 “경을 듣는 이걸로 해서 부처님 말씀을 배운다” 하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을 설명 듣는 것이 되고 내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듣는 것이 되는 데, 그래서 그 법문을 듣고 “나“를 확실히 깨쳐 “마음”이 열리면 이때는 전체가 “반야”의 지혜입니다. 내 마음을 어떻게 깨칠는지 정신 바짝 차리고 금강경 법문의 핵심을 그대로 들어서 따라가 보면 결국 마음을 깨치게 되고 반야를 얻게 됩니다.
부처님의 많은 제자 가운데 마음 깨친 법을 가장 정통으로 이어받은 분이 우두머리 제자이신 마하가섭존자입니다. 또 이 어른의 마음 법을 정통으로 전해 받은 분이 이조(二祖) 아란존자이고, 이렇게 내려가서 二八대의 조사가 되는 분이 바로 유명한 달마대사입니다. 이 달마대사는 중국에 오셔서 선종의 초조(初祖)가 되셨고 마음 깨치는 법을 혜가(慧可)스님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국에 부처님의 마음 깨치는 법을 크게 일으키신 분이 육조 혜능대사(六祖 慧能大師) 이신데, 이 어른이 본래 글도 모르는 무명의 나무장수였습니다. 육조 스님이 마음을 처음 깨치게 된 동기가 바로 이 “금강반야바라밀경”에 있습니다. 시장에 나무를 팔고 돌아가는 길에 어느 스님에게 금강경 가운데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란 경문을 듣고 마음을 활짝 깨쳐서 반야지혜를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뜻은 본문을 해설할 때 자세하게 소개되겠지만, 그 대의를 우선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싫다, 좋다, 내 것이다, 주관이다, 객관이다, 나쁘다, 착하다 하는 분별심을 버리고 본연의 마음 자세 그대로의 마음을 지니고 오직 중생제도를 위해 살라.”는 뜻입니다. 하나 더하기 둘은 셋이 된다는 수학의 기본원리를 두살 세살된 어린애들은 해결 못하지만 어른들은 듣자 마자 알게 됩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는 하나 둘을 들어도 곧 잊어버릴 정도로 지혜가 아직 밝아지지 못했기 때문이고, 나이가 들어서 곧 알게 되는 것은 지적 능력이 열리고 지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을 많이 넓히려면 설법을 듣고 경전을 많이 익혀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널리 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참 지혜는 말과 글을 따라 뜻을 파악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말과 글 밖에 나에게 있는 마음을 바로 깨쳐야만 반야지혜를 성취하게 됩니다. 그 동안 신심명, 반야심경을 들었으니 여러분들은 짐작으로나마 “아, 어떤 것이 마음이로구나. 마음의 불생불멸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판단 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야지혜”가 지식이며 판단이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며 이것은 인식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인식합니까.
경(經)-경 중의 경
경(經)이란 성인께서 말씀하신 진리의 내용을 이야기한 “말씀”, “글”, “이야기”란 뜻입니다. 이 경자(經字)를 “날경”, “법경”이라 하고 “글경”이라고도 합니다. 옷감으로 쓰는 베를 짤 적에 요사이는 방직기계(紡織機械)로 짜지만 원리는 다 한가지여서 날이 있어야 그 날 사이로 실을 감은 실톳이 왔다갔다하면서 길쌈을 짜게 되므로 날이 무명을 짜는데 핵심이 됩니다. 이와 같이 성인의 말씀이 모든 이치의 핵심이 되므로 “경”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 “經”자 대신 “徑”자를 쓰기도 하는데 “徑”자는 “지름길경”, “빠를경”자 이니 , 빠르게 지름길로 간다는 뜻입니다. 중생들은 삐뚤어진 길로 꼬불꼬불 돌아다니지만 성인이 말씀한 진리는 인생을 바른 길로 가게 하는 지름길로 빠르게 가게 한다는 뜻으로 “徑”자를 씁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에 “徑”자의 뜻이 있다는 정도이지 실제로는 “經”자로 그 뜻을 포함하여 표시합니다.
그래서 경전(經典), 경교(經敎), 경률(經律), 경서(經書), 장경(藏經), 성경(聖經)이란 말이 있고, 유교(儒敎)에서도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있는데 불교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四九년간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고구정녕(苦口)으로 중생들의 근기(根機)와 정도에 맞추어 이렇게 말씀하시고 저렇게 설명하셔서 마음을 깨치도록 하신 八만 四천 법이 경 가운데, 실려 있다고 해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합니다.
이 팔만대장경은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 그 교법(敎法)이 흩어지지 않고 후세에 잘 전해지도록 하기 위해 부처님의 제자들이 저마다 들은 것을 외워 내어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비로소 경으로 체계(體系)있게 결집(結集)함으로써 완성된 것입니다.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법문을 청함으로써 묻고 대답하는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깨쳐서 “참나”(眞我)를 완성하고 부처를 이루어 반야의 지혜를 말씀하신 것이 이 “금강경”이니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경(經)중의 경인 것입니다.
아울러 『금강반야바라밀』책 제목에서 반야라는 말 앞에 '금강'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금강석처럼 일체의 법을 타파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금강경에는 5~6가지 번역본이 있는데 우리가 쓰는 것은 鳩摩羅什의 번역본입니다. 어떤 번역본에는 能斷이라는 글자가 추가 된 것도 있는데 세상의 일체 고통과 번뇌를 끊어야 성인이 되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라밀'이란 일반적으로 '피안에 도달한다' 일체의 법을 끊을 수 있고, 일체의 번뇌를 타파할 수 있으며, 반야의 대 지혜를 성취할 수 있고, 고해를 떠나 피안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불경 가운데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경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소개되어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이 경은 특히 대승경전의 초기 경전으로 대승사상을 천명하는 발단이 되었는데, 유명한 중관사상 곧 공(空)사상 성립의 바탕이 되는 경인 600부 반야경 속에 들어 있습니다. 과거 한전(漢典)의 교상판석(敎相判釋)에 있어서는 부처님의 설법 중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설해 놓은 법문이라 합니다. 반야부 600권 중 577권째가 금강경입니다. 범어의 원래 이름은 Vajra Prajna Paramita Sutira입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번역하여 제명을 붙였으나, 한역의 번역본에 따라서 능단(能斷)이나 능할 또는 불설 등의 말이 첨가된 이름도 있습니다. 중국 불교사상 가장 많은 경전을 번역한 역경의 제일인자인 현장의 역본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줄여서 보통 금강경이라 하는데, 이는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끊는 반야 곧 지혜를 금강에 비유하여 하는 말입니다. 영어로 번역된 금강경 이름을 Diamond Sutra 라고 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이 경이 널리 알려져 많이 읽혀지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경문의 문체가 간명하고 전체의 분량이 길지 않은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국 선종에서 이 경을 소중히 여겨 어느 경전보다도 수지독송을 권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중국 선종의 5조(祖) 홍인 스님 당시부터 금강경을 중시하여 심지어 금강경만 수지 독송하여도 견성성불할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 경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인도 중국을 비릇하여 우리 나라와 일본 등지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전해지고 있는 금강경에 대한 책만도 무려 200여 가지에 달합니다. 근래에는 서양에서도 불교학이 일어나면서 이 경에 대한 연구도 많이 시도되고 있다고 합니다. 종래 한역의 대표적인 번역본 6본이 있는데, 그 중 우리 나라에는 구마라습의 번역본이 널리 유통되어 읽혀 왔습니다. 경의 전문을 32분으로 나누어 각 장마다 제목을 별도로 붙힌 것은 양 무제의 아들 소명태자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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