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1회 포교사문제(1~5번) 해설입니다.(일부 잘못 된 답은 문의 바랍니다.)
1. 부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이 바르게 묶여진 것은?
① 백반왕-야쇼다라 ② 정반왕-마야
③ 백반왕-마야 ④ 정반왕-야쇼다라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가지의 주요 사건으로 나타낸 팔상성도와 일대기는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
김응철 교수님, 김경집 박사님 강의 시간에 수차 나왔습니다.
부처님은 석가(샤카)족의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야쇼다라는 부처님 부인, 백반왕은 정반왕의 동생의 이름입니다.
2. 부처님 당시는 부족들이 강력한 국가에 의해 잇달아 멸망해 가는 시대였다.
부처님의 종족인 석가족도 강력한 국가에 의해 멸망하였는데 석가족을 멸망시킨 국가와 왕으로 올바르게 짝지워진 것은?
① 코살라국- 비두닷바 ② 마가다국-바사익
③ 마가다국- 아자타삿투 ④ 코살라국 -빔비사라
1번 문제와 같은 맥락입니다.
부처님 일생을 두 번, 세 번 읽으시면 귀에 익으실 겁니다.
3. 다음의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어느 때에 설하신 것인가?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남에게 귀의하지 말라.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며, 남을 등불로 삼지 말라."
① 성도하신 직후에 ② 녹야원에서 처음 설법하실 때
③ 열반시에 ④ 제자들에게 전도를 선언하실 때
부처님 열반시(팔상성도중 쌍림열반상입니다)에 제자들이 이제 저희들은 누구를 의지하여야 하느냐고 물으니 이미 너에게 법이 있음을 설하였는데 무엇이 두려우냐 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열반경에 자등명(自燈明)법등명(法燈明)이라는 글로 전해지는데 자신의 마음에 법을 잘 지키면 이미 성도의 길에 들어섰음을 말씀하신 글입니다.
참고로, 수제자 가섭에게 법을 전한 三處傳心(염화시중, 다자탑전반분좌, 곽시쌍부)의 마지막 대목과 함께 공부하시면 좋습니다.
삼처전심은 교리 담당하신 분이 나중에 자료 제공 하실 겁니다.
4. 부처님의 깨달음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역사적인 종교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은?
① 유성출가상 ② 수하항마상 ③ 녹원전법상 ④ 쌍림열반상
역시 부처님 일생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에 동료이던 다섯 비구에게 사성제(고집멸도)를 설하신게 최초의 설법, 녹야원의 설법입니다.
이때 이 다섯 비구가 부처님께 귀의하여 종교의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종교는 교주, 법(교리), 신도가 있어야 한다는 건 배우셨죠? 부처님이 교주, 사성제가 교리, 5비구가 신도가 되는 겁니다.
5. 다음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으로서 적절치 않는 것은?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 법을 설하라."
① 흔히 전도의 선언이라고 하는 가르침이다.
② 순교이생(巡敎利生)의 명령이라고도 한다.
③ 아라한과를 증득한 60명의 제자들에게 설하신 가르침이다.
④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한 설법이다.
불교근본교설中 부처님의 생애에 나오는 글입니다.
초전법륜 후 5비구 중 교진여를 시작으로 설법을 듣고 아라한과를 증득한 제자가 60명이었는데, 바라문교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만 깨달음을 전하는 것과 반대로 누구에게나 법을 전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만큼 불법이 보편적이고 타당함을 당당히 나타낸 것입니다
이 때, 둘이 가지 말고 혼자서 가라는 말씀도 처음 나옵니다.
부처님이 직접 행하셨듯이, 나의 깨달음을 나만 갖고 있지 말고 모든 이들을 구제하는데 쓰라는 자비와 대승의 마음을 당부하셨습니다.(신중단 예불 때 利益人天無量師라는 글도 있습니다.)
참고로 4번은 <열반경>입니다.
예문 중의 네모는 빈 칸이 아니고 괄호 표시와 같은 부호입니다. ^^
당장은 몰라도 어느 때가 되면 앞의 배움과 뒤의 배움이 연결됨을 알게 되겠지요? 우리 모두 정진 합시다.
2007. 3. 30 難 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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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佛-2 제1회 포교사 문제(6~10번) 해설입니다. (일부 잘못된 해설은 질문 바랍니다.)
6. 다음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이다. 적절치 않은 것은?
"비구들아,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눈이 불타고 있고 모든 사물(色)이 불타고 있고, 안식(眼識)이 불타고 있고, 시각(視覺)이 불타고 있다. 괴로움이든 즐거움이든 비고비락(非苦非樂)이든 시각으로 인해 일어난 모든 감각이 불타고 있다. 그것들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로 타고 있다. 또한 그것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과 고통과 비탄과 번민으로 불타고 있느니라."
① 부처님이 카필라(가비라)성에서 행한 유명한 설법이다.
② 흔히 기독교의 산상 수훈에 비견되는 감동적인 가르침이다.
③ 약 1천명의 비구들을 향하여 한 설법이다.
④ 가섭 3형제를 귀의시킨 후에 한 설법이다.
사성제 中 고(苦)의 원인이 되는 집(集)을 설하는 내용으로, <상응부 경전 연소> 편 에 나오는 내용이며, 아버지인 정반왕의 요청으로 카필라성으로 가기 전, 불을 숭배 하는 배화교도였던 가섭 3형제가 이끌고 귀의한 1천명의 비구들에게 불의 비유로 苦 와 集을 설하신 내용입니다.
장소는 마가다국의 왕사성입니다.
참고로, 가섭 삼형제의 이름은 우루빈라 가섭, 나제 가섭, 가야 가섭입니다.
7. 라자가하 시내에서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가 조용히 걸어가는 산뜻한 모습을 보고 감동하고 그가 말한 연기(緣起)의 법칙을 듣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목건련과 함께 회의론자 산자야의 제자이기도 했던 분은 누구인가?
① 사리불 ② 가섭 ③ 우팔리 ④ 아난
5번 문제의 이후 대목입니다. 5번의 대목은 <중생의 편에 서다>이며, 그 다음다음 편인 <훌륭한 제자들> 편에 나오는 글입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지혜제일 사리불과 신통제일 목건련(목련존자라고도 함.)을
제자로 맞는 과정입니다.
이 두 제자와 250 비구가 함께 귀의하여 종단은 더욱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앗사지는 아습비라고도 불리는데 녹원전법에서 나오는 다섯 제자 중 한 분입니다.
<불교 근본 교설> 中 부처님의 생애는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8. 부처님의 탁발에 관한 설명으로서 옳은 것은?
① 처음 눈에 띄는 집부터 일곱집을 차례로 다니며 탁발하였다.
② 부처님은 직접 탁발을 하지 않으셨다.
③ 가난한 집에서는 폐를 끼칠까봐 탁발하지 않으셨다.
④ 부자들을 미워하며 부자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3월 24일 강의시간에 사의법을 배우셨지요? 그 중 첫 번째 칠가구(七家口)에 관한 문제입니다. 부처님은 직접 탁발을 하셨으며, 모두에게 보시의 깨달음을 주기 위하여
부자나 가난한 이를 차별하지 않으셨고, 처음 눈에 띄는 일곱 가구 이상은 탁발하지
않음으로 욕심과 게으름을 버리는 행을 직접 실천하셨습니다.
9. 다음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의의에 대한 설명이다. 옳지 않은 것은?
① 탐욕으로 이루어진 나와 세계의 무상함을 알게 되므로 진실한 종교심이 싹트게 된 다.
② 무집착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③ 염세적 인생관을 확립시킨다.
④ 변화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정진과 노력에의 의지를 북돋운다.
강의 시간에 불교는 비관적인 종교가 아니라고 배우셨지요?
염세적이라는 말은 세상에 회의와 염증을 느껴 삶 자체를 비관함을 뜻합니다.
참고로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또는 열반적정)를 삼법인이라 합니다.
네가지인데 왜 삼법인이냐 하면, 불제자가 수행을 통하여 얻어야 할 목표가 적정이기 에 최근에는 일체개고 대신에 열반적정을 삼법인으로 하기도 합니다.
10. 다음은 부처님의 사문유관과 관계있는 내용을 짝지은 것이다. 잘못된 것은?
① 서문-상여행렬 ② 동문-노인 ③ 북문-갓난 아이 ④ 남문-병자
부처님이 왕자이던 시절의 이야기인 사문유관은 생노병사를 최초로 인식한 사건으로,
북문 밖에서는 출가수행자를 만났습니다.
권농행사차 아버지인 정반왕을 따라서 나갔을 때는, 쟁기에 땅이 뒤집히자 끌려나온 벌레를 새들이 잡아먹는것을 보고 삶이란 무엇인가를 관하고 출가를 결심하셨습니다.
생노병사의 生을 <태어남>으로 착각하도록 함정을 만든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는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2007. 4. 6. 難 勝
자료 요청 및 문의는 ixang@hanafos.com으로 하시면 됩니다. 七佛-3 제1회 포교사 문제(11~15번) 해설입니다. (일부 잘못된 해설은 질문 바랍니다.)
11. 독 묻은 화살의 비유로 유명한 『전유경(箭喩經)』이 결국 우리에게 말해주려고 하 는 내용이 아닌 것은?
① 인간은 자신의 무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집착한다.
② 참다운 인생의 길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③ 불교는 맹신만을 강조한다.
④ 불교는 인간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가르침이다.
잠깐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참고로 中阿含 전유경 중 관련된 내용 일부를 올립니다.
어떤 사람이 독 묻은 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을 때 그 친족들은 곧 의사를 부르려 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 <아직 화살을 뽑아서는 안되오. 나는 먼저 이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성은 무어고 이름은 무엇인지, 어떤 신 분인지를 알아야겠소. 그리고 그 활이 뽕나무인지 물푸레나무인지, 화살은 보통 나 무인지 대나무인지 알아야겠소. 또 화살깃이 매 털인지 독수리 깃털인지, 닭털인지 알아야겠소.> 이와같이 말한다면 그것을 알기도 전에 화살 맞은 사람은 죽게 될 것이다.
세계가 영원하다거나 무상하다는 소견 때문에 나를 따라 수행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이하 생략)
12. 다음은 맹인들은 코끼리 전체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 만 져본 부분에 관한 지식만을 말할 뿐이다는 비유에 대한 설명이다. 적절치 못한 것은?
① 이것은 본래 부처님당시 많은 사상가들의 편견과 선입견을 꼬집기위한 비유였다.
② 자기 중심적 사고보다 폭넓은 사고를 할 것을 강조한 가르침이다.
③ 인간은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알 수 없다는 말씀이다.
④ 모든 사물과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중도(中道)의 입장에서 바라보라는 가르침이다.
역시 중아함경에 나오는 비유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모두 아시겠지요?
코끼리를 인생으로 보았을 때, 한 쪽으로 치우친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은 편견에
빠져 전체의 궁극적 진리를 알 수 없음을 설하신 내용입니다.
치우침이 없는 중도이되, 양쪽을 모두 무시하고 모른체 하는 게 아니라 양쪽 모두
觀 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 비유입니다.
13. 최초의 불교사원인 죽림정사에 대한 설명 중 올바른 것은?
① 죽림정사가 있는 나라의 수도는 사위성이다.
② 이 절은 부처님과 인연이 많은 프라세나지트왕이 건립하였다.
③ 부처님이 성도하신 지 얼마 안되어 가란타장자가 죽림원을 보시하고 빔비사 라왕이 그 곳에 정사를 지었다.
④ 이 절은 왕사성 시가지 중심에 있는 대나무숲 속에 자리 잡았다.
이 문제도 함정이 있는 문제입니다.
금강경의 시작 부분에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이 나오는데요, 사위國의 왕자인 기수 와 장자인 급고독이 지은 정사(절)는 기수급고독원의 앞과 끝 글자를 따서 기원정사 입니다.
죽림정사는 천축국(天竺國) 다섯 정사의 하나이며 인도 승원(僧園)의 시초입니다.
가란타(迦蘭陀) 장자(長者)가 자기 소유의 죽림을 헌상하고,
마가다 국왕 빔비사라가 건립하여 불교 교단에 기증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가장 많이 이용된 사찰로서 부처님의 교단이 기반을 구축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지난 주 해설 중 가섭 3형제를 제자로 맞은 곳입니다.
죽림정사는 공부삼아 각자 책 찾아 보시기를... 흐흐흐흐^^
14. 불가에서는 예배 공양 또는 수행에 쓰이는 여러 불구가 있다. 그 가운데서 본디 인도에서 벌레를 쫓는데 사용했던 생활용구에서 수행자의 마음의 번뇌, 또는 티끌을 털어내는 상징의미를 지닌 법구가 된 것이 있다. 보통 짐승의 털이나 삼실 등을 묶어서 자루 끝에 맨 형태이며, 고승들의 진영을 보면 이것을 들고 계신 모습을 볼 수 있다. 흰 말의 말총으로 만든 것을 제일 귀하게 여긴다고 하는 이 법구는 무엇인가?
① 금강저 ② 육환장 ③ 불자 ④ 추미
금강저는 금강역사의 무기, 육환장은 지장보살의 지팡이,
불자는 말꼬리 모양의 털이개, 추미는 산신각의 산신이 들고 있는 사슴꼬리 모양의 부채입니다.
한정된 페이지라 그림을 보여 드리기는 어려우니 있는 곳만 소개합니다.
금강저 : 월정사 성보 박물관
육환장 : 어느 곳이든 지장보살이 들고 계신 여섯 개의 둥근 고리가 달린 지팡이
불자 : 월정사 조사당 자장 스님 영정 (구룡사 조사당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추미 : 산신각의 산신 부채
15. 불교 경제관의 기조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① 금욕적인 근검절약 ② 무차별적 개발 ③ 소비가 미덕 ④ 획일적 분배
현대불교 기본 이념을 제시하는 시사 문제입니다.(알아서 판단하시길........^^)
자료 요청 및 문의는 ixang@hanafos.com으로 하시면 됩니다. 2007. 4. 14 難 勝
七佛-4 제1회 포교사 문제(16~21번) 해설입니다. (일부 잘못된 해설은 질문 바랍니다.)
16. 3개월에 걸친 여름의 안거생활이 끝나는 날인 7월15일에 안거를 함께 한 스님들이 모여서 각자가 자기 스스로 지난 안거 기간 중에 자신에게 범계(犯戒) 등의 허물이 있었다면 무엇이든 지적해 달라고 동료인 스님들에게 청하는 의식은?
① 탁발 ② 울력 ③ 참회 ④ 자자
탁발 : 부처님의 걸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스님들이 가가호호 돌며 식량, 불사에 필요한
재물을 걷는 것으로 현재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울력 : 스님들이 절에서 하는 모든 육체적 노동행위를 말합니다.(경작, 연등 만들기 등)
참회 : 전생, 현생, 미래의 모든 업을 씻고자 반성함을 말합니다. 108참회문을 읽으며
108배를 올리거나 1천배, 3천배를 올리기도 합니다.
자자(自恣) : 스님들이 안거를 끝내는 마지막날, 함께 공부하던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여 꾸중듣기를 청하는 의식입니다.
참고로, 포살(布薩)은 보름과 그믐에 대중들이 한곳에 모여 계경(戒經)을 다시 한번
들어가며 잘 지켰는가를 대중 앞에서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17. 다음 중 불교의 종교적 특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① 깨침의 종교이다. ② 자아발견을 중시하는 종교이다.
③ 절대자의 구원을 중시하는 종교이다. ④ 자비의 종교이다
3번의 경우는 잘 아시지요?
오로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맹신은 불교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개개인의 마음에 이미 불성이 있으므로 見性을 하면 成佛할 수 있다고 했고
利他慈悲(이타자비)를 실천 목표로 합니다.
18. 근래 다른 종교에서도 많이 사용하나 본래는 불교용어였던 단어가 많다. 그런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은?
① 집사 ② 예배 ③ 전도사 ④ 목사
1회분 5번 문제의 해설<전도의 명령>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집사는 본래 부처님이 계신 절(정사)를 관리하는 사람,
예배는 부처님께 예를 갖추어 절을 올리는 의식,
전도사는 아라한과를 증득한 제자들이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펼치는데서 유래했습니다.
목사는 양을 기르는 목동에서 유래한 말로 기독교 신자들을 양에 비유해서 그들을
보호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9. 팔만대장경을 만든 곳은?
① 강화도 ② 해인사 ③ 묘향산 ④ 부인사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 불교의 힘으로 외적을 몰아내고자 하는 큰 원력이 팔만대장경 제작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법보 사찰로 공인된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지만, 본래는 묘향산 등
여러 곳에 분산 보관했었는데 대부분 소실 되었습니다.
부인사는 대구 팔공산에 있는 절로 고려시대 초조대장경을 만든 절입니다.
20. 불교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하여 생활속에서 살아 숨쉬는 불교를 지양하고 생명존중과 평화사상에 입각한 비폭력시민운동으로 사회와 민족내부의 제반갈등과 모순을 극복하여 국민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정의가 확립된 민주복지 사회건설을 목표로 하여 설립된 불교사회운동단체는?
① 불교인권위원회 ② 생명나눔 실천회
③ 공해추방운동불교인모임 ④ 경제정의 실천 불교시민연합
포교의 측면에서 나온 시사문제입니다.
굳이 해설이 필요치 않은 문제이니 각종 뉴스에 관심을 가지시면 됩니다.
21. 다음 사찰 중 고려시대 목조건물이 남아 있는 곳은?
① 수덕사 ② 경천사 ③ 용주사 ④ 직지사
충남 예산 덕숭산에 있는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에 지은 고려 후기 목조건물로 국보 제49호이며 백제계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경천사는 심효섭 교수님 강의 시간에 배운 10층의 대리석탑이 있는 절입니다.
용주사는 경기도 파주와 수원 두 군데에 같은 이름의 절이 있는데, 파주의 용주사는
마애불이 유명하고, 수원의 용주사는 본래 신라의 갈양사였는데 정조대왕이 사도세자를 추모하여 중창한 절로 고려시대의 범종이 국보입니다.
직지사는 경북 김천에 있는 절로 제6교구 본사이며 금동6각사리함(국보 제208호),
석조약사불좌상(보물 제319호), 대웅전앞3층석탑 2기(보물 제606호), 비로전 앞3층석탑(보물 제607호), 대웅전삼존불탱화 3폭(보물 제670호),
청풍료앞삼층석탑(보물 제1186호)등의 문화재가 있다고 합니다.
2007. 4. 21. 難 勝
자료 요청 및 문의는 ixang@hanafos.com으로 하시면 됩니다.
七佛-5 제1회 포교사 문제(22~번) 해설입니다. (일부 잘못된 해설은 질문 바랍니다.)
22. 신라 후기의 선종에 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① 개인적인 정신세계를 찾는 경향이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② 교종의 기성 사상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색하여 진리를 깨닫는 것이 옳다 고 주장하였다.
③ 중앙 귀족들과 연결하여 5교의 종교를 이루었다.
④ 고려 시대의 한문학을 크게 발달시킨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선종은 본래 불립문자 견성성불(不立文字 見性成佛 : 불경에 의존하지 않고 참선에 의 해 성도를 할 수 있다)의 명제를 갖고 시작되였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중국에 유학한 귀족출신 승려들을 중심으로 성행하였구요.
이때 참선에 의한 깨달음을 글로 남긴 것이 많은데 의상조사 법성게등이 대표입니다.
아름다운 글이 많아 중국글자인 한문학의 중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교종은 부처님 말씀인 법(法)을 따라 수행하면 성도를 할 수 있다는 기존의 사상인데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줄기입니다.
신라 말기에는 교종과 선종이 성쇠를 반복했는데 교종 5개파, 선종 9개파가 각각 위세 를 떨쳤습니다.
이른바 5교9산이라고 통칭하는데, 금주에는 5교9산을 간단히 간단히 정리하는 것으로
포교사 문제 해설을 대신합니다.
현재 조계종은 선종에서도 6조 혜능선사의 법맥을 표방하기에, 5교는 아니라도 9산은
시험문제에 자주 취급되고 있습니다.
9산 정도는 암기하시는게 좋겠습니다.
5교는 교학(敎學)을 바탕으로 한 교종의 5종파이다. 삼국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불교가 한창 성할 때 교학을 위주로 공부하는 종파가 열반종(涅槃宗), 계율종(戒律宗), 법성종(法性宗), 화엄종(華嚴宗), 법상종(法相宗)의 5개 종파로 나누어졌다.
계율종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이 통도사를 중심으로 창종했다. 법상종은 신라 경덕왕 때의 진표(眞表)가 금산사를 중심으로 창종했다고 알려져 있다. 열반종은 신라 무열왕 때의 고승 보덕(普德)이 경복사를 중심으로 창종한 종파라고 알려져 있다. 법성종은 성종(性宗)이라고도 하며 신라 문무왕 때 원효가 분황사를 중심으로 창종했다고 알려져 있다. 화엄종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당나라에 가서 화엄교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부석사를 중심으로 창종했다.
9산은 선종(禪宗)에 속하는 9개의 사찰이다. 통일신라시대 승려들이 중국에 가서 달마선법을 받아와서 실상산문(實相山門), 가지산문(迦智山門), 동리산문(桐裡山門), 사자산문(師子山門), 사굴산문, 희양산문(曦陽山門), 봉림산문(鳳林山門), 성주산문(聖住山門), 수미산문(須彌山門)의 9개 산문(山門)을 중심으로 종풍(宗風)을 일으켰다.
가지산문은 도의(道儀)를 종조(宗組)로 전남 장흥 가지산의 보림사(寶林寺)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다. 2조는 염거(廉居:?~844), 3조는 보조체징(普照體澄:804~880)이다. 도의는 784년 당나라로 건너가서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받고 821년에 귀국하였다. 설악산에서 염거에게 법을 전하고 염거는 체징에게 전했다. 840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체징은 보림사를 세우고 법을 전파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1206~1298)도 이 산문의 승려이다.
실상산문은 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 홍척(洪陟)이 전북 남원에 실상사를 창건하고 세운 선문이다. 홍척은 당나라로 건너가 서당지장에게 법을 공부한 후 귀국하여 국왕의 후원하에 실상사에서 선법을 펼쳤다. 가지산문의 종조인 도의와 같은 스승에게서 법을 받았으나 그보다 늦게 귀국하였다. 그러나 도의보다 먼저 산문의 터전을 닦았기 때문에 9산문 중 제일 먼저 개산한 선맥이다.
동리산문은 신라 문성왕(재위 839~857) 때 선사 혜철(慧撤)이 지금의 전남 곡성 죽곡 동리산에 태안사(泰安寺)를 세우고 개산했다. 혜철은 당나라에 가서 서당지장에게서 공부하다가 839년 귀국하여 태안사에서 선법을 펼쳤다. 고려 숙종 때의 왕사이며 풍수지리설의 시조로 불리는 도선(道詵:827~898), 그리고 여(如) 선사와 함께 동리산문의 3조로 일컬어진다.
사자산문은 신라 말의 선사 도윤(道允:798~868)의 제자 절중(折中)이 강원도 영월 사자산의 흥녕사(興寧寺)에서 일으켰다. 도윤은 847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쌍봉사(雙峰寺)에서 선법을 펼쳤기 때문에 쌍봉화상이라고 한다.
사굴산문은 문성왕 때 범일(梵日:810~889)이 강원도 강릉 굴산사에서 개산했다. 범일은 847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굴산사에서 법을 폈다. 개청(開淸:854~930), 행적(行寂:832~916) 등의 제자가 있고 고려 때까지 번성하여 9산 중 가장 위세를 떨쳤다. 지눌(知訥:1158-1210)도 이 산문 출신이다.
희양산문은 고려 태조 때 긍양(兢讓:878~956)이 경북 문경(聞慶) 봉암사(鳳巖寺)에서 개산했다. 봉림산문은 신라 말 현욱(玄昱:787~868)의 제자 심희(審希)가 이 경남 창원 봉림사(鳳林寺)에서 개산했다. 개조인 현욱은 837년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선법을 펼치다가 심희에게 전수했다.
성주산문은 신라 문성왕 때 무염(無染)이 충남 보령(保寧) 성주사(聖住寺)에서 개산했다. 무염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성주사에서 법을 펴다가 경문왕과 헌강왕의 국사가 되었다.
수미산문은 고려 태조 때 이엄(利嚴:870~936)이 911년 중국에서 귀국하여 지금의 황해도 해주 수미산에 광조사(廣照寺)를 세우고 개산했다. 5교 9산은 고려시대에 오교 양종으로 통합되었고 조선시대에 다시 선,교 양종으로 정립되었다.
2007. 4. 28. 難 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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