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부처님의 제자 - 마하 가섭(2)

難勝 2009. 3. 15. 05:35

대가섭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가장 큰 상수 제자로서 다른 제자들보다 별다르고 돈독한 부처님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부처님과 가섭존자 사이에 오고 간 사랑에 얽힌 이야기들 중에서 특히 정겹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는 두 분이 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는 이야기와 말 한 마디 주고받지 않고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전한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일화가 있다.


먼저 두 분이 옷을 바꾸어 입었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가섭존자는 부처님과 함께 탁발을 마치고 정사로 돌아가던 중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가섭은 부처님의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음을 보고 자기가 입고 있던 가사를 벗어 부처님이 앉으시도록 자리를 마련하여 드렸는데, 부처님은 가섭이 깔아주는 그 가사를 손으로 만져 보시고 '천이 참 부드럽고 좋구나' 하면서 가섭을 바라보았다.


말을 듣는 순간 가섭은 부처님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있었던 자신을 무척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서 자기의 가사를 벗어 부처님께 드리고 자기는 부처님이 입고 계시던 낡은 누더기를 입고 한 평생 그대로 살았으며, 하루에 한끼씩의 식사를 하면서 나무 밑이나 묘지 등에서 평생 동안 자리에 눕지 않고 앉아서 잠을 잤기 때문에 가섭을 일러 두타행제일(頭陀行第一)의 제자라고 한다.


다음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일화란 부처님과 가섭 사이에 있었던 일로서 말 한 마디 없이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은 세 가지의 일화를 말하는데, 첫째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라는 자리 나눔의 일화이고, 두 번째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전한 염화미소(拈華微笑) 또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이며, 셋째는 부처님 열반 후에 있었던 곽시쌍부(槨示雙趺)의 일화이다.


먼저 '다자탑전분반좌'란 이야기로서 가섭은 항상 누더기 옷을 걸치고 무덤주변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몸에서 항상 고약한 냄새가 나서 다른 수행자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부처님은 어느 날 설법 도중에 가섭을 불러 '나는 그대의 스승이고 그대는 나의 제자이니 여기 함께 앉자'고 하면서 부처님이 앉았던 자리의 절반을 내어 주시면서 가섭에 대한 남다른 신임을 보여주었다.


다음 이야기는 '이심전심의 일화'로서 부처님께서 어느 날 영취산에 모습을 나타내시었는데, 대중들은 평소와 같은 설법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부처님은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모든 대중들이 그 뜻을 몰라 부처님의 얼굴만 처다 보고 있을 때 가섭존자는 얼른 뜻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고 있었는데, 이것을 '염화미소(拈華微笑)' 또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라고 한다.


부처님은 가섭의 미소를 보고 설법을 시작하면서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 및 실상무상(實相無相)의 미묘법문(微妙法門)은 교리 밖에 따로 전하는 것으로 이것을 가섭에게 부촉(咐囑)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염화미소 또는 염화시중의 미소로 인해서 선문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는 법의 계승이 이어지고 있으며, 수행자들에게 공안이 되고 있다.


부처님이 한 송이의 꽃을 들고 대중들에게 보인 것은 말이 아닌 꽃을 듦으로서 직접 '부처님의 마음(大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부처님이 꽃을 들었을 때 가섭존자가 미소를 지은 것은 부처님의 마음과 가섭의 마음이 일체가 되었음을 보여준 것으로 이것이 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미소'인 것이다.


마지막 일화는 부처님의 열반 때 있었던 '곽시쌍부(槨示雙趺)의 일화'이다. 부처님은 가섭존자가 멀리 다른 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을 때 열반에 드셨는데, 가장 사랑하는 제자를 만나보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을 못내 잊지 못하였으나 계속 기다릴 수도 없는 형편이라서 장례 원칙에 따라 시신을 관속에 안치하고 다비(茶毘)를 위해서 관을 불 위에 올려놓았으나 불이 자꾸 꺼지면서 관은 꿈적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멀리서 부처님의 열반소식을 듣고 제자 5백 명과 함께 달려온 가섭이 유해 곁으로 다가가서 관을 붙들고 통곡을 하였는데, 갑자기 관에서 구멍이 뚫리면서 제자를 마중이라도 하듯이 두 다리가 관 밖으로 나왔다. 가섭이 관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두 손으로 다리를 받쳐들었더니 조용히 관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다비를 진행하였다.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할 때 두 손을 받쳐드는 것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법화경 수기품(授記品)에 의하면 부처님은 십대제자 중 가섭에게 가장 먼저 미래세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내리면서 '나의 큰 제자 가섭은 오는 세상에 삼 백 만 억 부처님에게 봉사하고 공양하며, 부처님을 존경하고 존중하며, 기리고 찬탄하여 최후의 몸에서 부처가 될 것이니 그 이름은 광명여래(光明如來)이고 나라 이름은 광덕(光德)이요 겁(劫)의 이름은 대장엄(大莊嚴)이라 하리라'고 하시었다.


가섭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이후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 하나라도 사라지기 전에 하루 빨리 결집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해 하안거를 마치고 난 후 상좌비구 5백 명을 칠엽굴(七葉窟)에 모아 놓고 아난(阿難)이 경(經)을 외우고 우바리(優婆離)가 율(律)을 암송하면 다른 제자들은 이를 확인하여 각자의 머리 속에 다시 정리하였는데, 이것을 제일결집(第一結集) 또는 상좌결집(上座結集)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