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문자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번은 처갓집에 갔는데 그날 밤에 호랑이가 와서 장인을 물어갔다. 이 사람이 동네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 말이 이랬다.
"遠山大虎(원산대호)가 突入(돌입)하여 吾之丈人(오지장인)을 捉去(착거)하니 有弓者(유궁자)는 持弓而出(지궁이출)하고 無弓者(무궁자)는 執杖而出(집장이출)하라!"
먼산 큰 호랑이가 갑자기 뛰어들어 장인을 잡아갔으니 활이 있는 사람은 활을 갖고 나오고, 활이 없는 사람은 막대기를 갖고 나오라는 말을 이렇게 한 것이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서 장인은 그만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 사람은 자기 장인이 범에게 물려가니 도와 달라고 외쳤건만 아무도 도와 주지 않았다고 동네 사람들을 고소했다.
원님은 곧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까닭을 물었다.
"사람이 호랑이에게 물려가니 도와 달라고 했다는데, 왜 너희들은 도와 주지 않았느냐?"
"어찌 저희가 알면서도 돕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소리를 못들었습니다."
원님은 역정을 내면서 다시 다그쳐 물었다.
"이 사람이 밤새도록 장인이 범에게 물려가니 도와 달라고 했다는데, 너희들이 몰랐다니 말이 되느냐?"
"저 사람이 무어라고 어려운 문자를 써서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글을 읽는 줄만 알았지, 그것이 도와 달라는 소리인지는 몰랐습니다."
원님이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해서
"네가 문자를 썼기 때문에 네 장인이 변을 당했으니 네 잘못이다. 그런데도 동네 사람들을 무고 했으니 매를 맞아야 한다." 라고 판결을 내렸다.
볼기를 맞으면서 이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伐南山之杖木(벌남산지장목)하여 猛打吾之肥臀(맹타오지비둔)하니, 아야, 臀(둔)이야. 아야, 臀(둔)이야"
<남산의 몽둥잇감을 배어 내 살찐 엉덩이를 사납게 치니, 아야, 내 엉덩이야. 아야, 내 엉덩이야.>
원님이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면서, 문자를 쓰다가 그런 화를 당했으니 다시는 문자를 쓰지 말라고 호령했다.
그러자 이 사람 하는 말이
"예, 예. 此後更不用文字(차후갱불용문자)호리로다."
<이후에는 다시는 문자를 쓰지 않겠습니다.>
원님은 더 화를 내면서 영을 내렸다.
"그놈 안되겠다. 옥에다 가두어라."
이 사람이 옥에 갇히게 되니까, 이 사람 마누라가 밥을 가지고 와서 넣어 주는데 구멍은 좁고 손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이 사람이 문자로 탄식했다.
"嗚呼哀哉(오호애재)라 汝手(여수)가 長(장)커나 吾手(오수)가 장(長)커나."
<아, 슬프다. 네 손이 길거나 내 손이 길었다면.>
마누라는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문자 쓰다가 이렇게 갇혔는데 또 문자를 쓰시니 남이 듣겠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誰乎(수호), 誰乎(수호)?"
<누가 듣냐, 누가 들어?>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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