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52대 효공왕 때 영암구림 출신으로 일찍이 큰 지혜로써 도를 깨쳐 그 높은 도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대선사인 도선국사는 당나라에 들어가 풍수지리학을 배워 처음으로 신라에 전파하였다. 그는 한반도의 형세가 행주형국(行舟形局-태평향을 행해 가는 배의 모양)인데 동해안인 관동지방, 영남지방은 태백산맥으로 산이 높아 무거운데 반해 호서, 호남지방은 평야가 많아서 가볍기 때문에 동쪽으로 기울어져 나라가 편안치 못하고 항상 변란이 많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산세를 관찰한 도선국사는 여기에 높은 탑을 많이 세워 돗대로 삼고 부처로써 짐을 많이 실어 놓으면 배가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며, 천불은 사공이 되어 태평양을 향해 저어가면 풍파가 없으리라 생각하였다.
이 같은 생각에서 도선국사는 이곳에 절을 세워 나라를 편안케 하기위하여 사동(使童) 하나를 데리고 와 터를 다듬고, 도력(道力)으로 천상의 석공들을 불러 그 날 닭이 울기 전까지 흙과 돌을 뭉쳐 천불천탑을 만든 다음 닭이 울면 천상으로 가도록 부탁하였다. 그러나 도선 국사는 혹시 시간이 부족해서 일을 다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아무도 모르게 절의 서쪽에 있는 일괘봉(日掛峯)에 해를 잡아 매 놓았다고 한다. 석공들이 열심히 탑과 부처를 만드는 곳에서 심부름을 하던 사동(使童) 녀석은 공사바위(절 뒤에 있음)에서 돌을 날라다 주다가 그만 짜증이 났다. 그때 도선 국사는 일이 거의 되어가는 것을 보고 가만히 해를 풀어 주었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는 일도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석공들은 와불의 마지막 손질을 위해서 바삐 손을 놀리고 있었다. 이때 꾀 많은 사동은 일에 지치자 그만 닭 우는 소리를 내 지르고 말았다. 석공들은 와불을 다 세우고 절에서 6㎞ 떨어진 하수락 일대의 돌들을 끌어 모아 놓고 일을 마칠 계획이었는데 닭소리가 나자 일손을 멈추고 창고바위에 도구를 모두 넣은 다음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석공들이 모두 천상으로 가버린 뒤에 살펴보니 와불은 그냥 누워있고, 탑과 부처가 각각 천개에서 하나씩 모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서 있어야 할 부처님이 그냥 누워있어서 와불이라 이름하게 되었고 와불이 일어서면 조선이 일어선다는 설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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