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름에 담긴 불교 이야기 - 불교와 꽃
‘어젯밤 내린 비에 꽃이 피더니(花開昨夜雨) 오늘 아침 부는 바람에 꽃이 지는구나(花落今朝風)’라는 운곡 송한필(조선 선조 때 문장가)의 싯귀처럼 천지를 용광로처럼 달구던 무더위도 계속되는 비에 한풀 꺾인 듯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함이 느껴진다. 예로부터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대표적인 전령사는 꽃이다. 우리나라에는 총 3000 여종의 꽃들이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불교와 연관된 이름을 지닌 꽃들이 있어 흥미롭다.
먼저 여름에 피는‘동자(童子)꽃’이 있는데 이름의 유래가 설악산 오세암 설화와 비슷하다.
오세암 설화에는 홀로 남겨진 동자승이 관세음보살의 보살핌으로 이듬해에 무사히 스님을 만나지만 동자꽃의 전설에는 노스님이 탁발 나가면서 먹으라던 가마솥 공기밥도 그대로 둔 채 얼어 죽은 동자를 발견하게 된다는 다른 결론을 보여주고 있다. 그 후 동자를 양지바른 데 묻어 주었는데 동자가 묻힌 곳에서 동자의 얼굴을 닮은 붉은 꽃들이 피어나자 사람들이 이 꽃을 동자꽃이라 불렀다고 한다.
부처님 이름을 딴 꽃도 있는데 이름 하여 ‘부처꽃’이다. 언제부터 이와 같은 이름을 지녔는지 알 수는 없으나 흔히 백중날을 전후로 피어 절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데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다. 특히 이 꽃은 한방에서는‘천굴채(千屈菜)’라 하여 이뇨제와 지사제로 쓰인다고 하니 나오지 못하는 것을 나오게 하고, 멈추어야 할 것을 멈추게 하는 효능이 이름만큼이나 신통하다.
부처꽃처럼 부처님을 묘사한 꽃이 또 하나 있으니 부처님의 머리모양인 나발(螺髮)처럼 생겼다고 하여 ‘불두화(佛頭花)’라 이름 붙여졌는데, 꽃피는 시기도 초파일을 전후이고 꽃말도 ‘은혜’와 ‘베품’이라고 하니 이름만큼이나 의미하는 바가 깊다고 하겠다. <해동문헌록>의 저자로 유명한 ‘김휴’는 ‘도리사기소견(桃李寺記所見)’이란 자신의 시에서 ‘성래지시불두화(醒來知是佛頭花)’라 하여 각별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꽃은 아니지만 불수감(佛手柑)이란 과일도 불교이름으로 유명하다. 본래 감귤에 속하는 과일로 그 모양이 부처님 손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날에는 불수감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복숭아, 석류와 함께 삼다(三多: 多男.多福.多壽)의 상징으로 여겨 십장생도(十長生圖)에 복숭아와 함께 그리기도 하였고, 국립박물관 등에 보관된 ‘청화백자칠보불수감문호(靑華白磁七寶佛手柑文壺)’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문양으로 널리 활용되기도 하였다. 문화재 자료 25호 ‘범어사 연(梵魚寺 輦)’에도 창문에 만자(卍字), 불로초, 연꽃과 더불어 불수감(佛手柑)을 새겼다.
설총이 지은‘화왕계(花王戒)’에 보면 미모를 뽐내는 장미와 충언을 마다않는 할미꽃 백두옹이 나오는데 미모에 현혹된 화왕에게 임금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 하지 않는 이는 드물다며 충신의 간언에 귀 기울일 것을 설파하는 대목이 있다. 이를 들은 신문왕은 설총에게 “그대의 우언(寓言)에 정말 깊은 의미가 있으니 글로 써서 왕자(王者)의 계감(戒鑑)을 삼게 하기 바라오”하였다고 하니‘초목국토 실개성불(草木國土 悉皆成佛)’이란 <열반경>의 가르침처럼 우리 주위에 피는 모든 꽃들이 ‘무정설법(無情說法)’의 스승들이 아닐 수 없다.
김유신 /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이사
불수감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 닿는대로 따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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