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옛날의 일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숲속 한 구석에서
달팽이 한 마리와 예쁜 방울꽃이 살았습니다.
달팽이는 세상에 방울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방울꽃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토란 잎사귀 뒤에 숨어서 방울꽃을 보다가
눈길이 마주치면 얼른 숨어버리는 것이
달팽이의 관심이라는 것을 방울꽃은 몰랐습니다.
아침마다 큰 바위 두개를 넘어서 방울꽃 옆으로 와선,
"저어, 이슬 한 방울만 마셔도 되나요?"
라고 수줍게 얘기하는 달팽이의 말이
사랑이라는 것을 방울꽃은 몰랐습니다.
비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면
방울꽃 곁의 바위 밑에서 잠 못 들던 것이,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자기 몸이 마르도록
방울꽃 옆에 서 있던 것이 달팽이의 사랑이라는 것을
방울꽃은 몰랐습니다.
그러고도 행여 자기의 마음이 들킬까보아,
민들레 꽃씨라도 들을까봐 아무 말 못하는 것이
달팽이의 사랑이라는 것을
방울꽃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나날이 흘렀습니다....
숲에는 노란 날개를 가진 나비가 날아 왔습니다.
방울꽃은 나비의 노란 날개를 좋아했고
나비는 방울꽃의 하얀 꽃잎을 좋아했습니다.
달팽이에게 이슬을 주던 방울꽃이
나비에게 꿀을 주었을 때도
달팽이는 방울꽃이 즐거워하는 것만으로 행복해했습니다.
"다른 이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거야"
라고 민들레 꽃씨에게 말하면서도
까닭모를 서글픔이 밀려와 이슬도 먹지 않곤 하는 것이
달팽이의 사랑이라는 것을 방울꽃은 몰랐습니다.
방울꽃 꽃잎 하나가 짙은 아침 안개 속에 떨어져 나갈 때에
나비는 바람이 차가와 진다며
노란 날개를 펄럭이며 떠나갔습니다.
나비를 보내고 슬퍼하는 방울꽃을 보며
달팽이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비가 떠나던 날, 밤새 방울꽃 주위를 자지 않고 맴돌던 것이,
클로버 잎사귀 위를 구르는 달팽이의 작은 눈물방울이,
달팽이의 사랑이라는 것을 방울꽃은 몰랐습니다.
이제 꽃잎은 바닥에 다 떨어져 버리고,
방울꽃은 하나의 씨앗이 되어 땅위에 떨어졌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하얀 눈이 바람에 흩날리며 씨앗 위로 떨어질 때
달팽이는 방울꽃의 씨앗 위로 흙을 곱게 덮어 주었고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자기의 몸으로 씨앗이 덮인 흙 위를 감쌌습니다.
달팽이의 몸 위로 차가운 눈이 쌓여져 갔지만
달팽이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땅속의 방울꽃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다시 당신을 기다려도 되나요?"
그제서야 방울꽃은 달팽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떠날 나그네들 - 친구에게 (0) | 2009.06.12 |
---|---|
홀딱벗고 새의 전설 (0) | 2009.06.11 |
꽃 이름에 담긴 불교 이야기 - 무정설법(無情說法)의 꽃 (0) | 2009.06.10 |
삼겹살 알고 먹기 (0) | 2009.06.06 |
돈 떼먹는 사람 구별법 (0) | 2009.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