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육바라밀이란 무엇인가

難勝 2009. 7. 30. 06:03

●육바라밀이란 무엇인가●
 
바라밀(波羅密)은
저 언덕에 건너감을 뜻하는 말로써,
육바라밀은 생사의 고통스러운 세계를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인 열반(涅槃)의 세계에
이르도록 하는 여섯 가지 방편입니다.

이 여섯 가지란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
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를 말합니다.

보시란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남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주는 수행으로,
재물을 베풀어주는 재보시(財布施)가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의 안락과 참다운 삶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보시(法布施)가 있으며,

또 계(戒)를 지니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보호하여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보시(無畏布施)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베풀어 줄 물건도 없고
남에게 전해줄 만큼 부처님의 말씀도 아는 것이 없으면
자기 몸으로써 남을 돕는 것도 훌륭한 보시인데,
정성스런 마음으로 행하면 그것이 아주 작은
물건이거나 짧은 단 한마디의 위로의 말이더라도
크나큰 공덕이 됩니다.

보살행(菩薩行)은
남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 근본이므로,
보시를 할 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주었다는 생각조차 없어야 합니다.

춥고 가난한 사람에게 한 벌의 옷이나 음식을 주는 것.
눈에 보이는 재물로써 보시함은 물론 재보시이지만.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 즉,
부모와 자식, 친구와 이웃, 국가를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희생정신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재보시라 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주어 베푸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부처님께서는 진리에 어두워 온갖 욕심과 집착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로수와 같은 불법을 전해서,
지혜를 얻게 하여 참되게 살도록 함이
더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가난과 복덕, 행복과 불행은
다 마음가짐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지계는 부처님께서 금하신 계율을 지켜 범하지 않는
수행을 말합니다. 보통 계(戒)를 그릇에 비유하는데,
계행을 지키지 않으면 수행자는 깨진 그릇과 같아서
지혜와 공덕 등 그 무엇도 담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계율에는 대승계(大乘戒)에
삼귀의계(三歸醫界)·삼취정계(三聚淨戒)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등이 있고,

소승계(小乘械)에는
오계(五戒)·팔계(八戒)·십계(十戒) 등의
재가(在家)불자를 위한 계와
비구(比丘)의 250계,
비구니(比丘尼)의 348계,
사미계(沙彌戒).사미니계(沙彌尼戒) 등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특히 수행인 에게는 계율이
새의 두 날개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윤리도덕과 사회질서가 혼란스러운 때에
이러한 계율은 더욱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인욕은 모근 어려움과 고통을 참고 견디어
이겨내는 수행입니다.
자신의 내부에서는 일어나는 온갖 욕망·갈등과
외부로부터의 자극, 즉 유혹이나 모멸 등을
수행을 성숙시키는 원동력으로 알아 감수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이
언짢고 화나는 마음을 참고 견디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거의 이루어 놓고도 한순간 마음을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치신 것도,
위대한 사람들이 그러한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모든 참기 어려운 것들을
능히 인욕하고 애써 노력하여 얻어진 결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욕 하는 데에도
네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복인(伏忍)으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화나는 그 마음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힘들고 성나는 일만 참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을 끄는 즐거운 일도
참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의 경계에 분노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順境)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이끌려서
몸과 마음을 더럽혀 망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유순인(柔順忍)입니다.
사람이 항상 참기를 많이 하면
경계(境界)가 생길 때마다 저절로 억제가 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의 어떤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무생(無生)인(忍)입니다.
이것은 참고 견디어 보상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인욕행(忍辱行)으로써,
인생이 무상(無常)하여 세상이 허황됨을 깨닫고,
만유제법(萬有諸法)이 인연으로 모였다가
인연에 의해 흩어지는 진리를 알고 보면,
그다지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넷째, 적멸인(寂滅忍)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지위에 있어서와 같은 인욕행으로,
생사고해를 벗어나서 본래부터 적멸(寂滅)한
열반의 경지에서 분별과 차별이 없는 경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경계는 지어서 인욕행을 닦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어떠한 분별심이나 차별상도
일으킴이 없는 경지를 가리킵니다.

정진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 쉬지 않고
한결같이 노력하는 수행입니다.
정(精)은 순수하여 잡스러움이 없음을 의미하며,
진(進)은 용맹스러워서 물러섬이 없음을 말합니다.
즉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부적인 것이나 외부적인 자극에 의해
흔들리거나 물듦이 없이 꿋꿋하게 나아가는 수행입니다.

이러한 정진행(精進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몸과 입으로써 부지런히 선행을 닦고 실행하는 것과,
듯을 항상 진리에 머물게 하여 모든 생각이
참된 진리를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밖에도 사정진(事情進)과 이정진(理精進)있습니다.

사정진이란
이 육신(六臣)으로 세간(世間)사업이든지
출세간(出世間)사업이든지 그것을 한번 이루려고 결심했으면,
그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부지런히 정전함을 의미합니다.
이정진이란 악한 생각을 없애고 선한 마음을 내어,
자신과 이웃에게 좋은 일이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성취하도록 노력하고 정전함을 말합니다.
생존경쟁이 심한 오늘날의 현실생활에서는
더욱더 이러한 정진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선정은 보살이 실다운 지혜를 얻어 성불하기 위하여
마음을 밝히는 수행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현실생활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잡다한 생각을 쉬지 못하고
어리석게 여럿 것들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헛된 생과 나쁜 생각·허영심·분별심만 버리면,
이 세상이 곧 극락이요,
이 마음이 곧 부처님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바라밀 가운데 선정행(禪定行)은
마음을 고요히 쉬는 수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욕심과 집착을 여의과 순수하고 바른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지혜행(智慧行)은 사물의 실상을 밝게 비추어 보아서
모든 의혹을 끊고 바른 깨달음을 얻는 힘을 닦는 수행을 의미합니다.
이 지혜를 반야(般若)라고도 하는데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문자반야(文字般若)로서의 지혜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경전)·율·론 을 가리키고,

또 하나는 관조반야(觀照般若)로 경·율·론 의
글과 말에 의하여 진리를 알아내어,
그것에 의해 수행·실천함을 말합니다.

또 하나는 실상반야(實相般若)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는 세상의 지식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지혜로써 마음을 닦으면
궁극에는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