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책벌레와 책 찜질

難勝 2009. 9. 16. 08:29

농가의 7월 월령가에 보면 장마가 끝났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이며 의복, 서책을 거풍(擧風)했는데 사나이들은 짝지어 등고(登高), 곧 등산하여 정상에서 바지춤 내리고 국부를 햇볕에 노출, 거풍시키기도 했다.

곧 음력 7월은 거풍의 계절이다.

국립 중앙도서관에서도 소장하고 있는 수백만 권의 책을 찜질, 종이 파먹는 좀이나 벌레를 죽이는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2년 간격으로 사고(史庫)의 서책을 펼쳐 볕을 쬐고 먼지를 털었던 조선조 포쇄(曝灑)의 연장이랄 수 있다.

 


종이벌레는 여느 벌레와 달리 이승의 지극한 한(恨)이나 원(怨)의 변신(變身)으로 이야기가 많다.


동사(東寺)란 절에 어린 사미가 법화경(法華經)을 읽는데 안경을 뜻하는 애체(靉靆)라는 두 글자에 부딪히면 읽지 못하고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스승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 이 사미는 절 마을에 살았던 한 여인의 후신으로 이 여인이 죽기 전에 읽었던 법화경에 애체란 두 글자를 종이벌레가 파먹어 결해 있었다는 것이다.

왜 종이벌레가 그 두 글자만을 파먹었습니까라고 묻자 한 선비가 절세의 미색을 아내로 맞았는데 눈이 어두워 애체를 구하다가 끝내 못 구하고 품은 한을 종이벌레로 환생, 한풀이를 한 것이라 했다.

스승은 절 마을에 가 사미승의 나이인 17년에 죽었다는 것과 그 여인이 읽었다는 법화경에 애체란 두 글자가 빠져 있음을 확인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종이벌레가 도교의 경전 속에 들어가 신선(神仙)이란 글씨를 파먹으면 몸에 오색이 나는 신선이 된다는 설이 소개돼 있다. 당나라 장역지(張易之)의 아들이 신선이란 글자를 써서 병에 담고 종이벌레에게 먹임으로써 신선이 되려 했으나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종이벌레의 전생·후생담이 맥락되어 무당굿의 한 유파(流派)를 형성하기도 했는데 곰팡이를 뜻하는 마불림제며 칠석놀이의 명다리 타기, 포쇄놀이 등 기생(寄生) 무속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포쇄가 끝나면 창포(菖蒲)와 천궁(川芎)과 함께 붉은 보에 싸 다시 담았다던데 온고지신으로 그 약효를 현대화해 방(防)곰팡이제를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