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찾아 가는 길

치악산 국형사 동악단과 우물의 전설

難勝 2009. 9. 24. 05:51

 

 

원주 국형사 동악단과 우물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98번지에 위치한 국형사(國亨寺). 원주에서 동남쪽으로 6Km 지점, 치악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의 오악(五岳)가운데 동악에 속하는 치악산 천년송림에 자리한 이 절은 신라 경순왕 때 무학대사가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 했다. 조선 태조는 이곳에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동악단을 쌓았으며 해마다 봄 가을에 원주 횡성 영월 평창 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고문암은 ‘나라의 만사형통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국형사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조선 숙종때(1680년) 왕명으로 중건했다. 이 동악단은 현재도 국형사 대웅전 옆 산 능선에 있는데 사찰의 산신각 역할을 하고 있다. 동악단 아래는 예로부터 영험 있기로 소문이 난 우물이 있는데 조선 정종의 둘째 딸인 희희공주가 병을 고쳤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도 이 우물은 전해지고 있는데 지역민들의 약수로 인기가 높다.


산신령 현몽한 공주 불치병을 고치다

“이일을 어찌할꼬.”


조선시대 두 번째 왕인 정종의 둘째딸 희희공주(역사에는 숙신(淑愼)옹주)가 있었다. 공주는 어려서부터 불치병에 걸려 항상 병석에 누워 있었다. 정종은 어명을 내려 세상에서 용하다는 명의는 다 불러다가 고쳐 보려 했으나 도무지 약효가 없었다.

그런만큼 정종의 근심도 깊어만 갔다. “내가 임금이면 무엇해. 병든 딸을 고칠 수도 없으니 말이야. 하루하루 깊어가는 공주의 병색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오히려 병이 날 지경이다. 어의(御醫)는 빨리 공주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도록 전국에 방을 내려 약을 구해 오도록 하라.”

그리하여 전국에서 공주의 병을 고치겠노라고 한양에 당도한 의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하지만 명쾌하게 공주의 병을 고치는 의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정종 옆에서 보필하던 어의가 제안을 했다.

“전하. 아뢰옵게 황송하오나. 공주마마의 병색이 호전되지 않으니 어디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을 시켜보심이 어떠할런지요.”

“그래? 그럼 어의는 어디 좋은 요양처를 알고 있는가?”

어의는 재빨리 자신이 점지해 둔 요양처를 아뢰었다. “예. 예로부터 오악 가운데 하나인 동악단 옆에 암자가 있다고 하니 그곳이 어떠할런지요.”

“음 동악이라…”

정종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동악단이라 함은 선대인 태조임금을 도와 조선을 개국한 무학대사가 계룡산에 머물며 산신을 현몽한 뒤 임금에게 진언하여 세운 오악단 중의 하나였다. 즉 동악단으로 치악산 국형사에, 중악단으로 계룡산 신원사에, 서악단으로 황해도 구월산에, 남악단으로 지리산에, 북악단으로 묘향산에 세웠으니 영험도 있을 법했다.

“사람의 의술로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천지신명과 부처님께 기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야.”

어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동악단 아래는 예로부터 맑은 약수가 흘러나오는데 이 물을 마시면 고치지 못하는 병도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러니 공주마마를 국형사에 머물게 하면서 약수물을 길러 드신다면 쾌차할 수도 있을리라 사료되옵니다.”


“허허. 어의의 뜻이 그러하다니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구나.”

이리하여 희희공주는 도성을 떠나 원주의 치악산까지 먼 길을 떠났다.

“병약한 이 몸 부처님께 의지하여 완쾌해 아바마마의 마음을 편안케 할 것이야.”


국형사에 도착한 희희공주는 100일기도를 하기로 작심했다. 매일 새벽마다 오악단(산신각) 아래로 가서 약수 물을 길어 산신령에게 올리면서 지극정성으로 발원했다. “산신령님. 소녀는 어릴때부터 병약해 왕실의 걱정을 많이 안겨주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100일기도를 올리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매일 발원을 세우니 하루빨리 병이 쾌차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매일 같이 올리는 기도에 감응했는지 어느날 희희공주의 꿈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 산신령이 나타났다. “나는 치악산에 사는 산신령이오. 보아하니 공주께서 중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이오?”

“네, 산신령님. 소녀의 병은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양을 떠나와 동악단에서 요양하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산신령은 수염을 쓸어 담으며 말했다. “공주의 지극한 정성을 내가 받아들여 병을 낫게 해 줄터이니 과히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그 방법을 알려줄 터이니 그대로 따라 하시오. 내일부터 공주가 길어 올리는 약수물을 오악단(산신각) 뿐만 아니라 국형사 부처님께도 올리시오. 그리고 난 뒤 그 약수물을 매일같이 마시면 분명히 병을 나을 수 있을 것이오.”


희희공주는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 기억이 생생했다. “내가 꿈을 꾼 것인가? 산신령을 만난 것인가?” 다음날부터 공주는 오악단 아래 약수를 길어 산신령과 대웅전 부처님께 올리고 자신도 마셨다.

며칠이 지나자 정말 공주의 병색에 차도 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온 몸에 힘이 없었는데 이젠 기운이 생기는 것 같구나. 이제는 내 스스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희희공주의 얼굴은 매일매일 생기를 찾아갔고 100일기도가 회향되는 날에는 병석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됐다. 병이 완쾌된 공주는 한양으로 돌아와 정종을 알현했다.

“아바마마. 소녀이옵니다. 그렇게 병약했던 몸이 이렇게 쾌차돼 돌아왔습니다.”

정종의 크게 기뻐하며 공주를 맞이했다. “그래 그래 참으로 잘 된 일이구나. 내 너의 병을 쾌차하게 해 준 사찰에 덕을 베풀겠다.”


정종은 곧바로 오악단에 내탕금(왕실에서 하사하는 금일봉)을 내어 국형사를 중창하도록 명했다. 그렇지만 국형사는 1680년 폐사된 뒤 오랜 세월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1907년, 1945년, 1974년에 중수됐다. 현재는 선혜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범종과 종각불사를 회향해 지역민들의 정신적 귀의처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