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일여(生死一如).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예부터 불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 단순명쾌한 정신이 웰빙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웰엔딩(well-ending), 웰다잉(well-dying)이라는 신조어가 바로 현대판 ‘생사일여’다. 웰빙(well-being)이 ‘참살이’를 뜻하는 말이라면 웰다잉은 어떻게 잘살까에 머물러 편안한 삶에 집착하던 수준을 훌쩍 넘어, 삶을 진솔하고 슬기롭게 꾸리고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하고자 하는 고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웰다잉 운동이 호응을 얻은 지 오래이다. 프랑스에서는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고 임종 때까지 간호와 호스피스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률’을 제정했으며 미국과 대만, 일본은 적법한 규정에 따라 호스피스 시설에 임종실을 마련하도록 법으로 규정돼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5년 1월 국립암센터가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웰다잉 준비시대에 들어섰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연구과장은 “우리나라는 1년에 15만 명이 간경화와 암 등의 중병을 앓는다”며 “이들을 위한 호스피스 치료와 정서적 지원을 통한 죽음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합리적인 장례비용을 산출하고 마지막을 장식하도록 돕는 데스 코디네이터(death coordinator), 데스 컨설턴트(death consultant) 등 신종직업도 등장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약 27억의 장례비용을 쓰고 있지만 많은 돈을 쓰는 것이 웰다잉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불교계에도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능인선원과 대원사, 관음사 등은 이미 몇 해 전부터 불교적 윤회ㆍ생사관과 웰다잉을 접목한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능인선원은 죽음준비교육 수련회 ‘빛으로 태어나기’를 7월 중순 경 1박2일로 진행한다. 보성 대원사도 ‘죽음을 준비합시다’라는 특별수련회를 매달 셋째 주 진행하고 있다. 이들 수련회는 유언장 작성과 관에 들어가는 임종체험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있다. 대구 관음사는 영남불교대학 5층에 내생체험관을 마련해놓고 극락과 지옥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대원사 특별수련회에 참가했던 정희연 씨는 “저승체험실에 들어가 관에 눕는 순간, 인생이 무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무 집착하고 욕심 부리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를 떠올리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교계 웰다잉 운동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각 사찰이 진행하는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이 단조롭다는 지적도 있다. ‘임종체험’과 ‘유언장 작성’ 등에 집중돼있고, 일회적ㆍ이벤트적 성격이 짙을 뿐 아니라, 타종교 호스피스 프로그램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불교적 웰다잉에 대한 강좌와 체험프로그램도 속속 개설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개별사찰의 수련회 성격에서 벗어나, 불교적 죽음준비교육 방법을 정립하기 위한 참고모델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봉은사는 6월 20일~8월 29일 10주간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회향 웰다잉 체험교실’을 진행한다. 봉은사 교육국장 선업 스님은 강좌 개설 이유를 “자아성찰을 통해 죽음을 이해하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수강생 모집 하루 만에 정원이 마감되고 대기자만 100명이 넘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불교계 복지관인 서울노인복지센터도 노인들을 대상으로 불교적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인 ‘사(死)는 기쁨’을 운영해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3월에 시작해 올해 11월까지 이어지는 ‘사는 기쁨’은, 인생회고, 임종의식, 호스피스, 생명나눔서약, 상장례봉사, 사(死)축제 등을 통해 불교적 죽음에 대해 체험해나갈 수 있도록 구성돼있다.
단편적인 임종체험은 자칫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을 불러일으키거나 개인적인 경험에서 그치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모든 교육프로그램이 그룹 활동으로 진행된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사는 기쁨’ 프로그램의 핵심은 죽음과 삶이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고 주변과 나누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불교적 웰다잉의 핵심이자 최상의 죽음 준비는 바로 ‘적선(積善)’이라고 입을 모으며, 지난해 열반한 前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불교적 웰다잉의 표본이라고 꼽았다. 미리 죽음을 준비하고, 시신을 기증한 후 화장(火葬)할 것을 유언했던 모습이 불교적 웰다잉의 귀감이라는 것.
최근 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는 웰다잉 열풍을 불교계가 활용하기 위해서는 의료시설과 학계, 자원봉사단체 등과 연계된 다각적인 활동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생사학연구소장 오진탁 교수는 “기독교적 죽음관에 입각한 호스피스 교육이나 임종체험이 아닌 불교적 죽음준비교육 방법을 정립하기 위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는 한편, 불교계 의료시설에서 임종실을 마련하고 적극적인 호스피스 간호를 유치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펌 글)
'생사일여'와 통해…불교계 관심은 초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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