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고려시대에 요세스님의 백련결사와 쌍벽을 이루는 결사로 보조국사가 결성한 것은?
정혜결사
정혜결사는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근수(勤修)하는 결사(結社)입니다.
정혜결사는 첫째 당시에 극히 속화되고 미신화된 '호국기복불교' '우상불교'에서 현실적으로 안심입명(安心立命)하고 구세제중(救世濟衆)하는 '정법불교'의 복귀운동이며, 둘째 명리(名利)의 도구화된 '형식불교, '가면불교'에서 진실한 출세간의 길을 밟아 성불도생(成佛度生)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수행불교'의 재건운동이며, 퇴폐하고 변질되어 버린 '궁중불교' '관권불교'에서 참신하고 생명 있는 '민간불교' '대중불교'의 건설운동이었다.
정혜결사의 운동은 새로워지려는 자기 반성의 정신이며, 참정신으로 돌아가려는 개혁의 정신이다. 이는 종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기의 마음을 바로 찾아 바로 닦는 일에 정진할 것을 강조한 정법결사(正法結社)이며 수심결사(修心結社)이다.
'마음이 곧 부처'란 것을 바르게 찾고 바르게 닦는 것으로 우리는 속 좁은 중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음 밖에서 부처 찾는 일은 마치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이 무모한 일이라며 스님은 가르치셨다. [권수정혜 결사문]에서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모두 잊는 것이 선정이요, 모두 비추는 것은 지혜이니, 선정과 지혜가 고르면 어느 마음이 부처가 아니며, 어느 부처가 마음이 아니겠는가. 마음과 부처가 그러할 때에는 온갖 대상과 온갖 반연(絆緣)이 모두가 삼매일 것이니, 누가 다시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 높은 소리로 부처님을 부를 필요가 있겠는가."
본래 마음에 대해 눈을 뜨고 '마음이 부처'란 것을 단박에 깨닫고[頓悟] 난 후에라도 꾸준히 그 마음 닦는 일[漸修]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스님께서는 '깨달음[悟]은 마치 햇빛과 같이 갑자기 만법이 밝아지는 것이고, 닦음[修]은 거울을 닦는 것과 같이 점차 밝아지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면서, 만일 깨우치지 못하고 수행만 한다면 그것은 참된 수행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선오후수(先悟後修)를 강조하였다. [수심결]에서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돈오는 비록 부처와 동일하나 다생(多生)의 습기가 깊고, 바람은 멈췄으나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망상이 그래도 침범한다. 반야(般若)로써 공과 노력을 더하지 않으면 어떻게 무명을 다스려 아주 쉬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마음이 곧 부처'란 사실을 어떻게 깨달은 것인가? 이는 선정과 지혜로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은 마음을 비우고 본래 마음에 하나되는 것이며, 지혜(智慧)는 마음을 환히 밝게 가지는 것이다. 본래의 마음은 본래 비었기에 밝은 것이다. 정혜결사란 바로 선정과 지혜로 함께 닦아 본래의 '마음이 곧 부처'란 것을 바르게 깨닫기 위한 결사이다. 스님은 [수심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정은 본체요 지혜는 작용이니, 본체인 작용이기 때문에 지혜는 선정을 떠나지 않고 작용인 본체이기 때문에 선정은 지혜를 떠나지 않는다. 선정이 곧 지혜이기 때문에 고요하면서 항상 알고, 지혜가 곧 선정이기 때문에 알면서 항상 고요하다."
정혜결사는 선정과 지혜로 본래의 마음이 부처란 것을 깨닫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부처되는 자기 완성에 그치는 것이 참 불교는 아니다. 참 불교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과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지눌스님의 정혜결사는 바로 이웃과 사회 완성을 위한 이타행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교종과 선종이 각기 자신만이 옳다며 갈등과 대립으로 참 불교에서 멀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스님은 [화엄경]에서 교·선 일치의 단서를 찾고 둘은 서로 통하며 하나로 만날 수 있다고 기뻐하였다.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은 부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의 말씀이다.[禪是佛心 敎是佛語]"
중생의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부처의 마음은 말씀과 다르지 않다. 말씀 속에 마음이 담겨 있고 마음은 말씀으로 나타나니 이 둘은 같은 것이다. 그것을 바로 찾고 불교가 하나 되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혜결사의 정신이다.
각자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수행으로 부처님의 바른 법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어떤 이는 경전으로 다가가고, 어떤 이들은 문자의 장애를 뛰어넘는 화두참선으로 다가가고, 어떤 이는 염불과 보살행으로 부처님께 다가갈 수 있다. 지눌스님의 정혜결사는 바로 교종의 수행법과 선종의 수행법 등이 사람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다양하게 열려 있는 수행(修行) 교실이며 각자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가르침[隨機說法]인 것이다.
마음[心]과 부처[佛]가 하나되고, 깨우침[悟]과 닦음[修]이 하나되며, 선정[定]과 지혜[慧]가 하나되며, 자(自)와 타(他)가 하나되고, 교(敎)와 선(禪)이 하나되는 정혜결사의 전통은 바로 원효스님의 일심화쟁(一心和諍)·원융회통(圓融會通)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이러한 회통적 조화의 정신은 고려의 불교를 새롭게 탄생시켰으며, 한국 불교를 부처님의 정법 세계로 다가가도록 인도하는 전통을 확립하였고 나아가 한국 정신의 가장 두드러진 전통을 세운 것이다.
스님의 저서에는 《진심직설(眞心直說)》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계초심학입문(誡初心學入門)》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염불요문(念佛要門)》 《상당록(上堂錄)》 《법어》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竝入私記)》 등이 있다.
오늘날 지눌스님의 사상은 근래에 범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한다. 스님의 어록이 1983년 하와이 대학에서 영문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Robert Buswell , The Korean Approach to Zen : The Collected Works of Chinul ,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3), 지금까지 외국 대학에서 스님의 사상을 주제로 나온 박사 학위 논문만 해도 수편이 된다. 이처럼 세계는 지눌스님의 창의적 사상에 깊은 관심과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스님과 같은 선인이 이 땅에 계셨었다는 사실에 자랑스럽게 알아야 할 것이다.
지눌의 수선결사는 정혜쌍수와 돈오점수를 주창하여 주로 근기가 높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불교신앙운동이었던데 반해, 요세의 백련결사는 참회멸죄와 정토구생을 내세워 일반 서민까지도 포괄하는 신앙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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