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인생의 유쾌한 일 - 사쾌(四快)

難勝 2010. 7. 21. 05:35

 

 

사쾌(四快) - 이규보.


오랜 가뭄 뒤 내리는 단비

타향에서 만나는 옛 친구

신혼의 밤 촛불 켜진 신방

과거에 급제하여 나붙은 이름


大旱逢甘雨  대한봉감우

他鄕見故人  타향견고인

洞房花燭夜  동방화촉야

金榜掛長名  금방괘장명


* 金榜: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한 사람의 이름을 써서 붙인 방(科榜)

* 자료에 따라 他鄕遇知己는 他鄕遇故知로, 久旱逢甘雨는 久旱逢甘霖로, 金榜題名時는 金榜掛名時로 나오기도 하지만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


옛 사람들이 간추린 인생사대쾌사(人生四大快事), 줄여서 사쾌(四快)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러저러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 중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쾌한 일도 있고, 두고두고 되새기고 싶은 통쾌한 일도 있다. 


사쾌(四快)라고 했지만 반드시 네 가지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사람마다 살아온 자취가 다르고, 겪은바 내용이 다르니 쾌재를 불렀던 일도 꼭 같을 수 없다. 


사쾌 가운데 金榜題名時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 과거(科擧)를 보던 옛날 얘기로 요즘의 시류와는 거리가 있다. 현대적 분위기에 맞춰본다면 고시(考試)나 취직시험에 합격하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사대불행>

사쾌(四快)를 '사대쾌락'(四大快樂)으로 묶은 뒤 그것을 다시 비틀어 만든 '사대불행'(四大不幸)이라는 것도 있다. 


久旱逢甘霖-不停  他鄕遇知己-借錢

金榜題名時-重名  洞房花燭夜-不擧


오랜 가뭄 끝에 비를 만났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객지에서 옛 벗을 만났는데 돈을 꾸며

금방에 이름이 올랐는데 동명이인(同名異人)이고

동방에 화촉 밝힌 첫날 밤 발기가 잘 안 된다나


* 不擧: 보통 나라에 큰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제왕이 근신하는 차원에서 음식 수를 줄이고 음악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신랑의 음경이 서지 않는 양불거(陽不擧), 즉 발기가 안 되는 현상(勃起不全).


<사대비사>

앞에서 네 가지 불운(不幸)을 꼽았는데, 비슷한 맥락의 네 가지 안타까움(四大悲事)도 있다. 


金榜題名時-誤報  久旱逢甘霖-數滴

洞房花燭夜-石女  他鄕遇故知-債主


금방에 이름이 올랐는데 잘못 전해진 것이요

오랜 가뭄 끝에 비를 만났는데 겨우 몇 방울에 그치며

동방에 화촉을 밝혔는데 합궁이 안 되는 여인이고

객지에서 옛 벗을 만났는데 하필 채권자였다나   


* 석녀(石女)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성관계를 갖지 못하는 여인과,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성이 그것. 여기서는 전자(前者)로 풀었다. 


<인생 삼대쾌사>

인생에 세 가지 통쾌한 일도 있다(人生有三大快事)는데 …

하나는 동방에 화촉 밝힌 밤(洞房花燭夜),

두 번째는 금방에 이름이 올랐을 때(金榜題名時),

세 번째는 난로에 던져진 금서를 보는 것(圍爐看禁書)이라나. 


* 圍爐는 마룻바닥을 사각으로 파서 불을 피우게 만든 난방장치이다. 


<중국인의 사쾌와 사감>

중국인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처럼 오고가는 사쾌(四快)도 있다.

영국 주택에서 살고(住英國房子),

일본인 아내를 맞이하며(娶日本太太),

중국요리를 먹고(吃中國飯菜),

미국 임금을 받는 것(領美國工資)이란다. 


그 반대도 있다. 사감(四憾)이다.

일본 주택에 살면서(住日本房子),

영국 요리를 먹고(吃英國飯菜),

미국인 아내를 맞이하여(娶美國太太),

중국 임금을 받는 것(領中國工資)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0) 2010.07.23
열대야의 의미와 이기는 법  (0) 2010.07.23
폭염 속 여름나기  (0) 2010.07.21
대서(大暑)   (0) 2010.07.21
안동의 별미 - 건진국수, 안동식혜, 간고등어  (0) 2010.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