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원칙이 통하는 사회

難勝 2010. 7. 23. 05:44

 

 

원칙이 통하는 사회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란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뜻한다.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전쟁이 나면 평민보다 먼저 전쟁터에 나가 싸웠고, 전쟁 비용 충당을 위해 귀족 출신 원로원 의원들이 더 많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였으며, 전쟁 포로로 잡혔을 때도 비굴하지 않았고, 일신상의 안위 보다 품격을 지켜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지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가 있다. 부불삼대(富不三代)란 말이 있지만 9대에 걸쳐 진사, 12대 동안 매 번 만석을 한 경주 최부자집은 약 300년 동안 부를 누린 집안이다. 그렇지만 재산 축적 과정이 도덕적이고 정당성이 있었기에 돈이 있되 사람들에게 존경 받으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본보기가 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최부자집의 가훈을 한 번 살펴 보자.

최부자집의 가훈은 첫째, 절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둘째, 재산은 1년에 1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 셋째,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매입하지 말라. 그리고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것이 최부자집의 가훈 중 중심이 되는 내용이다.


 진사 벼슬이 양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기 때문에 진사 이상의 벼슬을 못 하도록 한 것이고, 당시의 소작료대로 받게 되면 만석을 초과하므로 소작인들의 소작료를 낮춰주기 위해 만 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고 한 것이며, 흉년에는 논 한 마지기를 쌀 한 말만 주어도 살 수 있었으니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을 생각하고 재산을 잃은 백성들의 원한을 사지 않기 위해 이런 가훈을 정해 놓고 실천하였다고 한다.


 로마인이나 최부자 집 사람들이나 공통점은 그들에게는 절제된 생활과 원칙이 있었으며, 신분에 걸맞는 처신을 하고, 신분상의 권리를 누린 만큼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도덕적 책무나 의무 같은 것을 보여 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통념이나 가치기준은 어떤가? 규정이나 원칙을 앞장 서 지켜야 할 사람들이 규정이나 원칙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고지식한 사람’,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매도하고 평가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이들은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면서 자기 편이냐 아니냐를 먼저 따지고, 자기 편 사람들이 유리하도록 암암리에 규정이나 원칙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규정이나 원칙을 지키려는 사람을 고지식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경원시하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 요컨대, 사회 지도층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리 저리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며 융통성을 부리는 사람보다 원칙을 지키는 ‘고지식한 사람’이 우대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간디도 망국론(亡國論)에서 으뜸 죄악은 ‘원칙 없는 정치’라고 했다. 정치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칙이 통하지 않는 정치,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원칙이 통하지 않으면 부정과 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청렴과 사회정의를 천만 번 외쳐도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공사를 구별 못하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면서 원칙보다 학연, 지연, 혈연 중심의 사고와 판단을 하는 고질적인 악폐가 있는 이상 그 사회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부패의 고리를 끊고,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시급히 청산해야 할 과제는 원칙 없는 사회이다. 원칙 없는 사회를 추방하는 것이 지도층의 의무이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각기 품격을 갖추고, 원칙이 통하는 사회, 원칙에 충실한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광양중학교 교장 조철규 (광양신문 목요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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