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해우소 편지 - 어느 주부의 편지입니다

難勝 2010. 7. 26. 05:41

 

 

해우소 


쏴아~ 철썩~ 요란스럽게 밀려왔다 소리 없이 밀려가며 끊임없이 제 존재를 확인 시키는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바다는 쉼 없이 밀려가고 밀려온다.


출근하여 일하다 말고 불쑥 ‘휴가 좀 달라’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은 이유도 묻지 않고 ‘다녀오라’고 말한다.

다시 ‘안 돼!’ 라고 말할까봐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놓았다.

바다를 향해 간다는 생각만으로 몸과 마음이 점점 가벼워진다.

몸은 5킬로그램 마음은 20킬로그램이 가벼워 졌다. 고속버스에 체중계가 없는 것이 유감이다.

그렇게 모처럼의 휴가를 받았다.


남들은 하기 좋게 말 한다.

‘부부가 종일 같이 있어서 좋겠네요.’

그러나 24시간을 같이 지내다보면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 해도 견디기 힘들어 지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다.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사소한 습관이나 버릇들이 상대방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살아가는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해도 결코 그냥 지나치거나 무시 할 수는 없는 부분들이다.

그러다보니 때론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언덕을 이루어 서로를 가로막기도 했고 티눈으로 박혀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딘가에 하소연이 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다.


이제는 서로에게 익숙할 때도 되었으련만 아직도 작은 일에 섭섭하고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긴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에서.

예를 들면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는다거나 몸이 아플 때 모른 척 한다거나.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고 보니 조금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다.

이런 것도 있다. 치약을 중간에서 뭉텅 눌러서 짜는 버릇이 너무 싫어서 잔소리를 해 대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이불을 깔고 자는 버릇이 너무 싫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어느 날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서 돌아보니 별 것 아닌 일이지 않은가하는 생각도 든다.

치약을 중간에서 짜서 쓰던 끝에서부터 짜서 쓰던 양치질만 잘 한다면 되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덮고 자는 이불을 깔고 잔다한들 어차피 이불이니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자다가 추우면 덮고 자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 일로 내가 힘들어 했다니 참 싱겁게 되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내가 이렇게 떠나온 이유가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아니고 즉흥적으로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뭔가가 더 있을 것 같다.

 

맞다, 이제 생각이 났다.

요즘 들어 친구들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진 남편. 새벽 서 너 시가 되면 어느 광활한 사막에 영혼을 집어던지고 온 허수아비 하나 ‘털썩’ 들어와 눕는다.

식구 수에 비해 턱없이 넓은 집이라서 각자의 방이 따로 있으니 옆에 누워 확인 할 수는 없으나 이제는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 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 정도로 오래 산 부부가 아닌가.

5년만 젊었어도 잠을 안 재우고 따져 물었겠지만 이젠 ‘에구...술팅이’하며 돌아눕고 만다. 그리곤 아침이면 시원한 콩나물국을 끓여서 속 풀라고 대령한다. 나도 이제 철이 다 들었다. 언제까지나 철들지 않는 어설픈 아내로 머물러 있을 줄 알았으니. 그러나 아내이기 전에 나도 ‘여자’이지 않는가. 잔소리를 좀 해야겠는데 그게 영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이 지금 나름대로 힘겨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자에게도 갱년기라는 것이 있다지 않은가.

지금 나의 남편은 갱년기를 지나는 중이다.

남자 나이 50이면 나름대로의 회한이 왜 없겠는가. 아무리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경제적인 부를 축적 했다하더라도 인간적인 갈등과 후회는 누구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럴듯한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부러울 만한 경제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잠시 방황한다고 해서 그 정도도 참아주지 않는다면 참다운 부인의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완전한 현모양처가 아니라서인지 알게 모르게 불만이 되었나보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떠나 왔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런 남편을 이해해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나의 불만은 스스로 해결 되었다.

나의 이런저런 모든 이야기들이 바다 물에 녹아들었으니 누군가 나와 같은 이유로 이곳에 앉아 있기만 하여도 저절로 마음이 상쾌해 질 것이다. 혹시 내가 이렇게 쉽게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도 실은 누군가 나 이전에 같은 고민을 하였던 것은 아닐까.

이제 나는 모처럼의 휴가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하면서 지내야하나.


새로운 고민이 시작 되었다.

이래저래 인생은 고민이 없으면 심심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