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백로(白露), 포도의 계절 이야기

難勝 2010. 9. 6. 05:23

 

 

       하얀 이슬 산들바람 가을을 보내주자

       발 밖의 물과 하늘 창망한 가을일레

       앞산에 잎새 지고 매미소리 멀어져

       막대 끌고 나와보니 곳마다 가을일레


       - 이덕무 (李德懋.1741~1793) '사계시(四季詩)' 중


백로는 인생의 나이로 치면 오십이다.

처서가 인생나이 40으로보면 찬이슬이 맺는다는 백로는 인생의 나이 50에 해당된다.

24절기의 하나로 열 다섯 번 째. 음력으로는 8월경, 양력으로는 9월 7~8일께이다. 처서(處暑) 다음, 추분(秋分) 앞의 절기로, 태양 황경이 165도 때이다.


이 시기에는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지며 대기 중의 수증기는 엉겨서 이슬이 된다. 흰 이슬이 내리며 가을 분위기가 완연해진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석 무렵으로 만곡이 무르익는 시기이다. 옛 사람들은 이 시기를 5일씩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날아오고, ② 제비가 돌아가며, ③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 즈음에는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海溢)을 일으켜 피해를 주는 수가 있다.


백로가 음력 7월 중에 드는 수도 있는데 제주도와 전라남도지방에서는 그러한 해에는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 지방에서는 백로에 날씨가 잔잔하지 않으면 오이가 다 썩는다고 믿는다. 경상남도의 섬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十里) 천석(千石)을 늘인다.’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고된 여름 농사를 다 짓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이므로 가까운 친척을 방문하기도 하고, 선산에 벌초(伐草)도 이때부터 시작이 된다,     


흰 이슬 -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을 새벽에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한다.


백로와 포도 - 참외는 중복(中伏)까지 맛있고 수박은 말복(末伏)까지 맛있다. 처서(處署) 복숭아, 백로(白露) 포도 하듯이 철따라 과실의 시식(時食)이 정해져 있어 과실 맛으로 절기를 느끼곤 했던 것이다. 옛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바로 백로에서 추석까지 시절을 포도순절이라 했다. 지금이 바로 그 포도의 계절이다.

 

다산(多産)의 상징 - 그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민속이 있었다. 주렁주렁 포도알로서 다산(多産)을 유감(類感)시키기 위한 기자주술(祈子呪術)이었을 것이다. 조선 백자(朝鮮 白磁)에 포도 문양의 백자가 많은데 이 역시 다산을 유감시키고자 내방(內房)에 두는 주술 단지였다. 지금도 연만한 분들은 처녀가 공개적으로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치는데 포도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전통적 이미지가 도사려 있기 때문이다.


포도지정 -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했는데,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물림으로 먹여주던 그 정을 일컫는다.


허수아비 - 만곡이 익어가니 백로(白鷺)아닌 새들이 한창이고 이를 쫓으려는 허수아비의 수고로움도 향수(鄕愁)처럼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