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불은 가비라성의 왕족으로 출생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 했고 45년간 수많은 중생 들을 교화하였다.
범어로는 사캬무니(Sakyamuni)이며 '석가족의 성자' 라는 뜻이다.
대체로 석가모니불이라 발음한다. 능인(能仁,能忍). 적묵(寂默)이라 번역하며 의역보다는 음역으로 많이 불린다.
불교의 교조로 석가. 석존 등으로 약칭한다. 기원전 623년 중인도 가비라국 성주 정반왕의 아들로 룸비니 동산 무우수 아래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석가모니불 자신의 위대함과 아울러 모든 생명이 지니고 있는 본질인 진아(眞我)에 대한 절대 가치를 주장한 것이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마야부인이 죽자 이모인 마하파사파제의 손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릴 때 이름은 싯달타이며 과학. 문학. 4베다 등 온갖 학문을 다 배우고 무예를 연마하여 전륜성왕의 도리를 익혔다. 19세에 선각왕의 딸 야소다라를 맞아 결혼하여 라훌라를 낳았다.
그러나 성문 밖 나들이에서 생(生).노(老).병(病).사(死)의 괴로움을 보고 출가를 결시, 동쪽의 람마성 밖 숲속에서 속복을 벗어 버리고 출가했다.
그 뒤 남쪽으로 내려가 비야리, 마갈타에서 발가파, 울다라 등의 선인(仙人)을 만나 배움을 얻고 6년간 고행하였다.
그러나 금욕만으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 앉아 깊은 사색에 잠긴지 7일 만에 드디어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님 부처님이 되니 그의 나이 35세였다.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다섯 비구를 위해 첫 법륜(法輪)을 굴리신 이후 가섭 3형제. 사리불. 목건련 등을 교화하여 교단을 조직하고 깨달음의 내용을 전하였다.
그리고 가비라국으로 돌아와 부왕을 비롯하여 친족들을 제도하는 한편 빔비사라. 바사익. 아사세 등 여러 나라의 왕들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기원전 544년 2월 15일 북방의 쿠시나가라성 밖의 발제하 강변 사라쌍수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편 후 조용히 열반에 들었다.
세수(世壽) 80세이고 십대 제자를 비롯하여 1,250여 명의 많은 제자를 두었으며 그의 가르침의 내용은 열반에 든 뒤 수차례에 걸쳐 편찬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선종에서 심인(心印)을 전한 과거 7불의 맥을 표시하는데 나열되기도 한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맥은 칠불이 차례로 계승하여 내려오던 것을 받은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선종 사찰에서는 이 과거 칠불도를 많이 묘사하고 그 옆에 각각의 오도송(悟道頌)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 과거 불에 대하여 칠불통게계(七佛通偈戒)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는 과거 비바시 부처님으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에 이르기까지의 일곱 부처님이 모두 전송 하여온 함축된 계이다. 즉 '모든 나쁜 짓 하지 말고 온갖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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