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해설사 자료실

부론면 서원마을과 느티나무

難勝 2010. 10. 12. 06:23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원촌마을.

 

일명 서원마을이라 불리는 이 곳 느티나무 아래 서원이란 비석이 있다.

옛 법천사지에 들어선 이 마을을 서원말(마을, 또는 원촌)이라 하는 이유는 절이 없어진 뒤에 서원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원촌(院村)보다는 서원이라는 지명이 많이 불리고 있다하는데 법천사에서 글을 가르쳤던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을 사모하여 법천사 자리에다 경현사(景顯祠)를 세우고 춘추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조선 후기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을 제향하던 도동서원(道東書院) 터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광국사현묘탑비가 있는 법천사지의 입구에 있으니 절터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현재는 법천사지의 발굴 복원과 서원의 발굴복원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

 

어쨌든 잠시 쉬어가는 김에 모처럼 생 쑈~

 

느티나무 둥치는 세월의 풍상을 이야기하는데...

 

철없는 나그네는 그 아픔 속을 드나든다.

 

 

밑둥 안에서 본 하늘.

 

부론면 손곡리의 이름을 있게 한 손곡 이달 선생의 詩碑.

 

<손곡 이달의 생애>
손곡(蓀谷) 이달은 조선 선조대에서 광해조때 살았던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생몰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양경우의 <제호시화(霽湖詩話)>에 언급된 내용에 따라 이달의 생년을 1539년 전후로 보고 있으며 이수광이 <서담집발(西潭集跋)>에 밝힌 내용에 따라 1612년 전후를 그의 졸년에 가까운 연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달의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 서담(西潭)· 동리(東里) 등이 있다. 원주 손곡에 묻혀 살았기에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제자 허균이 그의 전기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으면서 이달의 자는 익지(益之)이니, 쌍매당 이첨(李詹)의 후손이다. 라고 밝혀 신평 이씨(新平李氏)인 것이 확인되었지만, 서얼이어서 더 이상의 가계는 확실하지 않다.

일찍 벼슬을 떠나 산수에 방랑하면서 청신염려한 시를 삼백삼십 여 수를 남겨 동방의 시성이란 일컬음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허균, 허날설헌 남매를 훌륭한 문인으로 키워낸 위대한 스승이기도 하다.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따르면 그의 모친은 홍주 출신의 기녀로 밝혀져 있다. 이달은 서자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문과에 응시할 생각을 포기하였지만, 다른 서얼들처럼 잡과(雜科)에 응시하여 기술직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도 않았고, 온 나라 안을 떠돌아 다니면서 시를 지었는데 이달이 시작(詩作)에 몰두하게 된 것은 미천한 신분으로서 그 당시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시작(詩作)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당대의 명가(名家)인 정사룡, 杜甫에게 사사하고, 명문 許氏일가 및 퇴계 율곡 등과도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은, 그의 시적인 재능이 신분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 당시의 지식층들에게 문화적· 정신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상당한 대우까지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는 서자(庶孼)로 태어나서 불우한 삶을 살았으나 정신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情恨詩


◇ 悼亡 (도망)
粧奩虫網鏡生塵 화장갑에는 거미줄 치고 거울엔 먼지 껴 있고
門掩桃花寂寞春 문 닫힌 복숭아 핀 뜨락에는 봄이 적막하네.
依舊小樓明月在 옛날 그대로 작은 누대에는 밝은 달리 있건만,
不知誰是捲簾人 이제 주렴 걷어줄 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라.


도망시(悼亡詩)는 죽은 사람을 애도(哀悼)하는 시를 일컫는 말이다.

 이 시 역시 손곡이 상처하고 쓴 시이다. 화장갑과 거울과 같이 아내를 상징하고 떠오르게 하는 사물에 먼지가 끼어 있다.

즉 아내가 죽은지 시간이 꽤 오래 지난 것이다. 계절적으로는 봄이고 복숭아꽃은 문을 다 뒤덮을 정도로 화려하게 만발했다. 그러나 손곡에게는 적막한 봄일 뿐인 것이다.

옷도 갈아입지 않아 낡고 남루하다. 아내가 죽은 지 오래 되었으나 여전히 아내를 잊지 못하고 폐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달은 예전 그대로 떠올랐건만, 그 밤 함께 발을 걷어올리다 탄성을 발하던 이가 곁에 없다. 오히려 밝은 달이 손곡에게는 함께 볼 이가 없다는 상실감을 환기시키고 있다.

 낭만적인 기질을 가진 손곡이 어떠한 낭만이나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없을 만큼 큰 상실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아내가 곁에 없는 지금 봄이 온들 무엇하며 꽃이 피고 달이 뜬들 무엇하겠냐는 것이다. 대지가 새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봄이 왔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아련한 옛 기억을 무참하게 일깨워 줄뿐인 것이다.

 장렴, 도화, 명월과 같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소재들이 손곡의 상실감과 대비되어 상실감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손곡 시의 화려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2구의 닫아건 문은 바깥일에 흥미를 잃은 실의한 마음이 드러나 있다.

 

바로 옆의 임경업장군 추모비.

인근 긴경산(경경산이라고도 함)에 임경업 장군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관계로 장군의 출생지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