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立冬)과 치계미(雉鷄米)
치계미(雉鷄米).
옛날 향약(鄕約을 보면 춘추(春秋)로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가 보편화돼 있었다. 비단 논 한 뙈기 밭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년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응분의 출연(出捐)을 했다.
겨울 문턱에 들어서는 매년 입동(立冬)날이면 동네마다 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베풀고,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은 양식이며 의복가지 등을 이날 노인들과 고아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이게 치계미다. 논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집이나 머슴까지도 이날만큼은 출연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조선시대 판 ‘구세군 냄비’였던 셈이다.
다른 치계미도 있다.
흥부가 관가의 문지기에게 건넬 인정(人情), 즉 뇌물이 없어 매 맞는 품조차 남에게 빼앗기는데, 이 인정이란 이름의 뇌물 가운데 사또 밥상에 오를 찬값이란 명목으로 뜯어내는 준조세가 치계미였다.
앞의 치계미가 아름다운 인정 풍습이라면 뒤의 것은 백성을 쥐어짜는 악세(惡稅)다. 이름은 같아도 쓰임이 다르니 그 의미는 하늘 끝 땅 끝 차이다.
의미야 그렇다쳐도,
'꿩 치(雉)와 닭 계(鷄)'란 말대로 꿩이나 닭이나 그게 그거이듯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도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것을 동정 받는 자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치계미'라 불렀지 싶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다.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조의 재평가 (0) | 2010.11.06 |
---|---|
복을 부르는 풍수 (0) | 2010.11.06 |
입동(立冬)과 세시풍속 (0) | 2010.11.04 |
양지의 孝와 양구체의 孝 (0) | 2010.11.01 |
골프 이야기 (0) | 2010.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