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누나와 나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힘겹게 거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누나는 서른이 넘도록 내 공부 뒷바라지를 하느라 시집도 가지 못했습니다.
학력이라곤 중학교 중퇴가 고작인 누나는 택시 기사로 일해서 번 돈으로 나를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워냈습니다.
누나는 승차 거부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차에서 내린 곳이 어두운 길이면 꼭 헤드라이트로 앞길을 밝혀줍니다. 누나는 빠듯한 형편에도 고아원에다 매달 후원비를 보냅니다.
누나는 파스칼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남 모르게 한 선행이 가장 영예롭다’는 파스칼의 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 누나가 중앙선을 넘어온 음주 운전 덤프 트럭과 충돌해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불행이었습니다.
여자 쪽 집안에서는 내가 누나와 같이 산다면 파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도 그런 결혼생활은 자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누나와 자신 중에 한 사람을 택하라는 그녀의 최후 통첩은 차라리 안 들은 것만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생각했던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날 때쯤,
어느 늦은 오후에 누나가 후원하는 고아원을 방문하기 위해서 누나와 나는 외출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길에 나가 한 시간을 넘게 택시를 잡으려 해도 휠체어에 앉은 누나를 보고는 그대로 도망치듯 지나쳐 갔습니다.
도로에 어둠이 짙게 깔리도록 우리는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누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택시가 한 대 우리 앞에 멈추더니 갑자기 차 뒤편의 트렁크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운전사 자리에서 기사가 내리는데, 놀랍게도 여자였습니다. 내가 누나를 택시에 안아 태우는 동안 여기사는 휠체어를 트렁크에 넣었습니다.
고아원에 도착하자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휠체어를 밀고 어두운 길을 가는 동안, 여기사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길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두 여자와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 여자 택시 기사와 결혼해 누나와 함께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여의주』(1998년 12월호)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부처님의 생애 (0) | 2010.11.26 |
---|---|
철수와 영희는 어디를 갔나 (0) | 2010.11.25 |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 (0) | 2010.11.24 |
일벌백계(一罰百戒) (0) | 2010.11.23 |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0) | 2010.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