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제일 긴 날로써 이날을 기점으로 차츰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밤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우선 동지의 의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드릴까 합니다.
첫째,
동지는 24절후(節侯) 중 11월의 절후에 해당합니다.
절후란 달의 차고 이지러지는 기간을 기점으로 만든 태음력에 단점을 보완하여, 태양력을 절충한
절충식의 책력입니다.
순수한 태음력만으로는 농경위주의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기에 태양을 기준으로 절기를 정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만들어진 태음양력(太陰陽曆)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동지는 '다음 해가 되는 날' 즉 '설날'이란 뜻을 가진 날입니다.
일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은 하지인데, 사실은 이 날부터 낮의 길이가 차츰 짧아지다가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낮의 길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 날이 새해 첫날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역학(易學)에서는 이 날을 양(陽)이 비로소 생(生)하는 날이라고 봅니다.
음양(陰陽)이 상징하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면 음(陰)은 검은색, 북쪽, 여자, 물, 밤, 귀신, 죽음 등을
상징하며, 양(陽)은 붉은색, 남쪽, 남자, 불, 낮, 태양, 희망 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즉 붉은 색은 태양을 상징하며 어둠을 물리치고 광명을 선사하는 주술(呪術)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아들을 낳으면 빨간 고추를 딸을 낳으면 검정숯을 새끼줄에 끼어 매달아 놓던 풍속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옛 사람들은 귀신이 어두운 밤에만 활동하고, 밝은 곳에서는 꼼짝을 못한다고 믿었으며, 귀신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빛이나 붉은 색을 보면 달아난다고 믿었습니다.
부적을 빨간색으로 쓰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동지날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기에 귀신들이 가장 많이 활동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 귀신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온 집안 구석 구석 뿌리는 풍속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이 병이 드는 것도 귀신의 소행이라 믿었기에 몸 가운데 들어와 있는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다함께
팥죽을 쑤어 나누어 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귀신이란 불교용어로 표현하면 마(魔)입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란 말은 공부가 익어갈수록 마의 방해가 심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수행자에게 다가오는 마의 장애는 그야말로 '닦을거리'일 뿐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내면의 마 뿐만 아니라 주위 환경이 가져오는 갖은 마장들 또한
수행자라면 겁내고 근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자이기에 탁한 마장들이 닦여 지고자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수행자는 잠시 잠깐도 마음단속을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마음에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어김없이 마가 쳐들어오게 마련입니다.
마음을 단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별 것 아닌 것들도 수행자에겐 그 마음의 작은 틈이 크게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닦지 않는 이들은 꽃을 꺾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수행자는 지나치며 꽃향기를 그냥 맡기만 해도
도둑이 되어 큰 잘못이 된다 하지 않던가요.
매번 도둑질을 하는 도둑에게 작은 것 훔치는 것이야 별 것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작은 절도
또한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수행자에게 마음에 틈이 생기는 이유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심(三毒心) 때문입니다.
탐냄과 성냄 어리석음이란 세 가지 독심(三毒)을 마음 가운데서 청안히 비우고 맑고 향기로움이
충만하도록 마음을 닦았을 때 그 어떤 마장도 수행자를 뒤흔들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다음 해가 되는 날'인 새해 첫 날인 동지날에는 지난 한 해의 잘못을 반성하며 되돌아 보고,
다가올 한 해 우리의 삶과 수행에 삿된 마장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밝은 서원을 세울 수 있는 그런 참회와
발원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새해 모든 마(魔)로부터 나와 내 가정, 그리고 직장과 나아가 이 나라, 이 법계의 청안(淸安)을
빌며 쉬임없이 마음을 단속하고 기도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정진의 시작이 바로 동지기도인 것입니다.
동지에 얽힌 불교 설화
<선덕여왕과 지귀>
선덕여왕은 신라 제 27대 임금으로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아주 돈독하여 국사를 돌보는 바쁜 중에서도 매일 조석으로
황룡사에 가서 예불 올리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합니다.
어느날 저녁 여왕이 예불을 드리러 가는 도중에 난데없이 어떤 남자가 여왕의 행차에 뛰어들어 소란을 피우기에 여왕은 시종을 시켜 그 남자에게 연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소란을 피운 남자가 말하기를,
"소인은 지귀(志鬼)라고 하는데 평소부터 여왕님을 남몰래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여왕님의 예불 행차를 몰래 지켜보기 여러날이었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왕이 재차 묻기를,
"행차를 늘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냐?" 하니
지귀가,
"예,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여왕마마께 제 연모하는 마음을 하소연하려고 행차에 뛰어든 것입니다."
원래 자비로운 품성의 소유자인 선덕여왕은 그를 참으로 가엽게 생각하여 황룡사까지 동행하게 하였습니다.
이윽고 황룡사에 도착하여 절문 앞의 9층탑 곁에 이르자 여왕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지귀에게 말하기를.
"내가 부처님께 예불을 마치고 그대를 궁으로 데리고 갈 것이니 이곳에서 잠깐만 기다리거라"
그러나 밖에 남게 된 지귀는 일각이 여삼추라 예불 시간도 채 기다리지 못하고,마음에 심화(心火)가 끊어올라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참, 지귀란 양반 성미도 급하지.
그 후에 죽은 지귀는 그야말로 사랑에 한을 품고 죽은 몽달귀신이 되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니 신라의 방방 곡곡에는
이 지귀의 행패가 심하여 많은 사람이 해를 입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에 이 지귀 귀신의 달래주기 위한 방편으로 해마다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끓여 집집마다 대문에 뿌리고 길에도
뿌렸더니 귀신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중국 형초세시기>
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다분히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로 팥죽의 축귀(逐鬼) 기능에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동지팥죽이 절식이고, 팥은 붉은 색 깔을 띠고 있어서 축사(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疫鬼)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데 이용되어 왔다.
조선시대 민속을 정리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동짓날을 아세 (亞歲)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데, 팥죽을
쑬 때 찹쌀로 새알모양으로 빚은 속에 꿀을 타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또한 팥죽은 제사상에도 오르며,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액운을 제거하기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흔히 말세라고 한다.
그것은 오탁악세의 업력이 난무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탁이란 다섯가지 더러움이라는 뜻이다.
첫째 겁탁(劫濁)으로.
시대의 더러움, 즉 이 시대에 생기는 기근·질병·전쟁·천재 등 사회악을 말한다.
오늘날 세계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한 곳에서는 물자가 풍부한데, 한 곳에서는 굶어 죽는 기아현상이 생기며, 예전엔 이름도 모르던 무서운 병이 나타나고, 화산이 폭발하거나 지진이 일어나는 현상이 겁탁이다.
둘째는 견탁(見濁)으로,
사악한 견해가 범람하는 시대를 말한다.
음란서적이 태연히 청소년 사이에서 나돌고, 남녀 구별없이 참된 인간성을 버리는가 하면, 어떤 악행도 돈을 위해선 마다 않는 것 등이다.
셋째 번뇌탁(煩惱濁)으로,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으로 나와 남을 끝없이 고통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다.
넷째 중생탁(衆生濁)
즉 몸과 마음의 자질이 옛날보다 천박해지고, 스스로 천박한 업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째 명탁(命濁)으로,
중생의 목숨이 점점 짧아지고 불의의 사고와 천재지변에 의한 죽음이 많아지는 시대다.
우리는 바로 이런 오탁악세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이 모두가 우리의 잘못된 마음과 업력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우리불자는 이 모든 고통과 번뇌가 다름 아닌 마음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을 깊이 반성하여, 스스로 이 오탁악세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 동지기도 회향법회 칠곡 정암사 주지스님 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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