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방하착(放下着) 이야기

難勝 2010. 12. 27. 05:10

 

 

 

방하착(放下着)

 

어떤 사람이 스님에게 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놓아 버려라.』

『아무것도 짊어지거나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대로 짊어지고 가거라.』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20년을 두고 그 놓지도 못하고 짊어지지도 못하는 말을 놓고 짊어지고 다니다가 마침내 한 소식을 얻었다.

 

이러한 일은 비단 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인천에서 양조장을 크게 하던 김 은복이 친구들과 함께 산놀이를 갔었다. 푸른 산 맑은 물가에서 한 식경을 즐겨 놀다가 그 산마루 깊은 골짜기에 무심도인(無心道人)이 산다는 말을 들었다.

 

『자, 우리 먹을 것도 먹고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절에 올라가 그 무심도인이나 한번 만나보고 가세.』

『좋네, 다 같이 가세.』

 

약 20여명의 중 장년 노인들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제길헐, 숨이 턱에 차서 올라갈 수 있는가.』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다 그냥 갈수야 있는가.』

『어서 가세―』

 

이렇게 주고받으며 갈지자(之) 길을 八자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다가 한 사람이 말했다.

『도인, 도인하면 흰 수염에 도포자락이 구름위에 나부끼는 그런 도인이겠지?』

『역시 그런 도인이라면 법장으로 우리의 길을 한번쯤 잘 인도해 주실걸세.』

『너무 기대가 크면 낙망이 큰 법이니 잔소리 말고 어서 걸음이나 바로 걷게―』

 

얼마쯤 가다보니 조그마한 오두막 옆에 티머리를 질끈한 남루한 노인 한 분이 장작을 패고 있었다.

『여기 절이 어디 있습니까?』

『중도 없는 절 찾아서 무얼하나.』

하고 톡 쏘아본다.

『이 곳에 도인이 산다던데요.』

『도인, 도인 좋아한다. 그런 도인이 어찌하여 이런 골짜기에서 살겠나, 쓸데없는 수작말아, 날이 저물기 전에 어서 길을 내려가게. 반란군이 나올런지도 몰라―』

하고 노인은 계속해서 장작만 했다.

 

집안을 다 돌아보았으나 도인이 살 것 같지가 않았다.

『이게 무슨 절인가!』

『가세―』

하고 사람들은 옹기종기 삐쭉삐쭉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그냥 길을 내려왔다.

 

아랫마을에 내려와서 그 도인 이야기를 해준 사람에게,

『에끼, 이 사람아. 장난도 유분수지, 사람들을 그렇게 놀려 주는 수가 있는가.』

『놀리기는 뭘 내가 놀리나.』

『도인은 무슨 도인이야. 티머리를 질끈한 머슴영감 한 사람만이 장작을 패고 있던데』

『바로 그 사람이야, 바로 그분이 도인일세, 도안이 갖추어져야 도인을 알아보는 건데, 모두 개눈깔만 박혀 있으니 도인을 알아볼 수 있겠나―』

『에라이 무지렁이야, 술이나 한잔 내라.술이나 한잔 더 먹고 가자.』

 

이렇게 술타령을 하는 바람에 날이 벌써 어슴푸레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취해 비틀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가기에 바빴다. 은복이 혼자 생각해 보았다.

『2km 왕복 10리의 길을 헛걸음을 쳤다. 허기야 보았으면 그만이지― 이왕 보았으면 문의나 한번 해보고 올 일인데―』

 

이렇게 투덜거리자 옆에 있던 친구,

『뭐 벌 나비가 꽃이나 본 듯한가?』

『아니야, 보았으면 꿀을 따야지―』

『그렇다면 한 번 더 가세.』

이렇게 하여 세 사람이 한 패거리가 되어서 작약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 스님은 이미 저녁 공양을 드시고 선좌(禪座)에 앉아 졸고 계신 듯했다.

『스님 또 왔습니다.』

『스님은 무슨 놈의 스님이여.』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하고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자, 그 스님 한다는 말씀이 걸작이었다.

『이 미친놈들아. 놓아버려.」하고 눈을 번쩍 드신다.

 

그런데 그 두 눈에서 마치 호랑이 불이라도 쏟아지듯 밝은 빛이 천지를 조요(照曜)했다. 사람들은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내려왔다. 모든 사람들이 한때의 몽중사(夢中事)이거니 잃어버렸으나 오직 김은복만이 잊지 못했다.

『놓아버려, 놓아버려, 무엇을 놓아버리라는 말인가?』

 

밤낮없이 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의심이 철저하니 분심(忿心)이 생기고 분심이 철저하니 의심 또한 철저하여 나중에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도가 되었으니 가히 놓아버리라고 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밤낮없이 석 달을 찾고 찾다가 마침내 한 도리를 얻었다.

 

 

『놓아버려― 아, 바로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야, 놓아버려야지, 놓아버려야만 살지. 이놈의 세상 살아도 산 것이 아니야―』

하고 깔깔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6·25사변 당시 두 아들과 부인이 함께 피난을 가다가 폭격을 만나 두 아들과 아내가 한 자리에서 박살이나 쓰러져 간 것을 잊지 못하고 놓아버리지 못하여 애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애타는 마음 때문에 김 은복은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그 망상이 머리에 떠올라 마치 몽유병 환자가 대낮에 환영을 더듬으며 미쳐 나가듯 날뛴 생활을 해왔다.

『놓아버려야지, 아니 그 놓아버려야겠다 생각하는 그 마음까지 놓아버려야지-』

 

이렇게 생각을 가다듬고 그 스승을 찾아 작약산에 올라갔으나 스님은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텅 빈 집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 같은 환영에 사로잡혀 산다. 자기의 명예·재산·권력·지식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그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밤마다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산다.

눈으로 본 색상의 그림자, 귀로 들은 소리의 그림자, 코로 맡은 냄새의 그림자, 입으로 말한 말씀의 그림자, 몸으로 대본 감촉의 그림자, 생각으로 헤아려 보는 온갖 지난날의 선악과 시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설계, 희망 때문에 생사람을 말려죽이고 있다.

 

스님은 바로 이것을 놓아버리라 한 것이다.

 

방하방하 방하착(放下放下放下着)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여하방하 방하착(如何放下放下着)      무엇을 어떻게 놓아버리라는 말인가

 

주의사상 방하착(主義思想放下着)      주의 사상을 다 놓아버리고

인간세상 방하착(人間世上放下着)      인간 세상도 다 놓아버리고

천당극락 방하착(天堂極樂放下着)      천당 극락도 다 놓아버리고

일심천하 방하착(一心天下放下着)      일심 천하도 다 놓아버리고

 

산고수장 방하착(山高水長放下着)      산은 높고 물은 깊다는 생각도 놓아버리고

전후좌우 방하착(前後左右放下着)      앞뒤 좌우도 놓아버리고

춘하추동 방하착(春夏秋冬放下着)      춘하 추동도 놓아버리고

동서남북 방하착(東西南剡次下着)      동서 남북도 놓아버리고

흑백염정 방하착(黑自染淨放下着)      흑백 염정도 놓아버리고

진망불이 방하착(眞妄不異放下着)      진짜 가짜도 놓아버리고

고락성쇠 방하착(苦樂盛衰放下着)      고락 성쇠도 놓아버리고

 

빈부귀천 방하착(貧富貴踐放下着)      빈부 귀천도 놓아버리고

복혜화앙 방하착(福慧禍殃放下着)      복혜 화앙도 놓아버리고

착착무착 방하착(着着無着放下着)      놓고 놓다가 놓을 것 없는 것까지도 놓아버리면

도화춘풍 만사령(這花春風萬事寧)      도의 꽃이 필 때 봄바람이 진짜 불어 만사가 평안해

행주좌와 어묵정(行住坐臥語默靜)      행주 좌와 어묵 동정에

입입개소 진주처(立立皆所眞住處)      서 있는 자리가 모두 다 진주처가 되리라

 

진이방하 여시착(眞而放下如是着)      진짜 이렇게 방하착하여야

우순풍조 민안락(雨順風調民安樂)      비바람은 고루내려 백성들은 안락하고

천하태평 법륜전(天下太平法輪轉)      천하가 태평하여 법륜이 항상 구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