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해설사 자료실

상원사는 원주에도 있지요 - 바람난 주지스님과 용마바위

難勝 2011. 1. 1. 07:14

 

 

용마바위

 

 

치악산 남대봉(南大峰)기슭에 있는 상원사(上原寺)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절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해발 천미터나 되는 곳에 자리 잡아서 삼복(三伏)에도 세 번 문 열어 놓고 잠을 자면 그 해는 더운 해라고 할만큼 시원한 곳이기도 하다.

 

절은 백여 평 남짓한 암석위에 자리 잡았고 석함 속에서 솟는 샘물은 이절을 이곳에 세우게 한 것이 바로 샘물이라고 생각하리만큼 물맛이 좋다.

 

법당 앞 암석위에 커다란 계수나무가 있는데 계수나무 앞은 바로 40미터나 되는 벼랑이다.

계수나무가 서있는 바위 끝에는 말발자국 형태로 패어진 자리와 사람의 손가락자국같이 패어진 곳이 있으며 그 밑으로는 갈색의 흔적이 있다.

이러한 말발자국과 손 자리 그리고 갈색의 흔적이 있어서 바위 이름을 용마(龍馬)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직선거리로는 12키로 가량인데 소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제천 땅의 백년사주지가 상원사주지를 겸하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백년사에 본부인을 두고 있었으나 상원사 주지를 겸하자 소실을 얻어 상원사에 숨겨두고는 부인 앞에서는 시치미를 띠고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지스님에게는 하늘을 날르듯 민첩한 용마(龍馬)가 있었는데, 스님이 말 잔등에 오르기 무섭게 용마는 백년사서 상원사의 용마 바위에 성큼 뛰어오르곤 했다다.

이렇듯 험한 산길 사십 리를 한달음에 뛰어넘었기 때문에 두 절의 주지도 겸할 수 있었으나 두 절에 나뉘어 살던 본처와 소실까지도 주지의 행실을 모르고 지냈단다. 그러나 결국은 큰 부인이 눈치 채고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하다가 마침내는 스님의 자백을 얻기에 이르렀다.

큰 부인에게 시새움이 없을 리 없었으나 남자가 하는 일이라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스님의 마음은 항상 소실에게 쏠려있어서 자연 큰집을 비우고 상원사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

본부인은 스님을 좋은 말로 달래어 보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시새움을 더 참을 수 없었던 큰 부인은 오히려 용마가 더 얄미운 생각이 들어 저 놈의 용마만 없었던들 스님이 소실 집을 저토록 드나들지는 못 할 것이라 생각 하고, 용마에게 하루저녁은 말죽을 보통 때의 반 밖에 쑤어 먹이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용마의 힘이 빠져서 지금처럼 뛰어 넘어 다니지 못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밤이 되자 그날도 슬슬 부인의 눈치를 살피던 스님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구간으로 쏜살같이 본부인의 눈을 피해  말 잔등에 올라앉아서 상원사 용마 바위를 향해 뛰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말죽을 적게 먹어서 시장기를 참고 있었던 용마는 여느 때와 같은 힘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뛴다고 뛴 것이 힘이 모자라서 앞발만 상원사 바위에 걸쳤다가 떨어지고 주지스님은 말이 바위에서 떨어지는 순간에 바위 끝에 손을 짚고 뛰어 오를 수 있어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는 이것이 본부인의 소행임을 알고는 상원사에서 여생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