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가르침을 펴다 -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難勝 2011. 1. 11. 08:31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 진리를 설하시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한동안 보리수 아래 머물며 삼매에 들어 있었다.

삼매에 든 부처님은 깨달음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셨다.

이 때 최고의 신인 범천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다고 한다.

당시 부처님의 심정은 이렇게 전해진다.

"고생 끝에 겨우 얻은 이것을
또 남들에게 어떻게 설해야 하는가?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상응부경전》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에게 진리를 깨우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을 지혜의 길로 이끌기 위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로 한다.

범천의 간청에 따라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하고 이렇게 알린다.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전도를 결심한 부처님은 깨달음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때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아시고, 전에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를 찾아 녹야원으로 갔다.

다섯 수행자는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자 타락한 사문이라 비난한 이들이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들을 깨달음을 전하는 첫 대상으로 삼으셨다. 사슴동산에 있던 다섯 수행자는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타락한 고타마에게 아는 체도 하지 않기도 하였으나, 부처님께서 다가오자 그 위엄과 자비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자리를 권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첫 설법을 시작하셨다.

"수행자들아,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느니라. 그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맡기는 쾌락의 길이고, 또 하나는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괴롭히는 고행의 길이다. 수행자는 이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배워야 한다. 나는 바로 중도를 깨달았으며, 중도에 의하여 생로병사의 온갖 괴로움을 버리고 평화로운 해탈의 기쁨을 얻었느니라."

첫 설법은 이렇게 중도와 사성제 등을 설하여 연기의 이치를 가르치셨다.

이것을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한다.

설법과 대화, 토론을 통해 다섯 수행자 가운데 교진여가 맨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고 곧 나머지 수행자 모두 그 가르침을 이해하여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이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로 비구(比丘)의 시초이다.

사슴동산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장자(長者)의 아들 '야사'라는 청년과 그 친구들이 출가하여 부처님을 따랐다. 또 그 아들을 찾으러 왔던 야사의 부모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재가의 신도로서 부처님께 귀의(歸依)하여 우바새·우바이가 되었다.

이로써 교주이신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僧寶) 즉, 불·법·승의 삼보(三寶)를 갖춘 불교 교단이 비로소 성립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섯 비구와 야사와 야사의 친구 55명 등 60명의 수행자를 제자로 삼아 진리를 가르쳐 깨달음을 얻게 하고, 여러 지방으로 가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 가르침을 전할 것을 이렇게 권유하였다.

"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고 안락을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을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
<잡아함경>

이것을 전도(傳道)선언이라 한다.
그 뒤 부처님께서는 우루벨라로 가서 당시 가장 이름 있는 종교가였던 가섭 삼형제를 교화하여 그들과 제자 1000여명을 함께 받아들였다. 왕사성의 종교가를 모두 교화한 이 사건은 국왕과 백성을 놀라게 하였고, 국왕인 빔비사라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다. 특히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서 우기(雨期)동안 머무시며 가르침을 펴실 수 있는 사원을 기증했으니 바로 불교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10대 제자의 한 분인 사리불과 목련이 제자 250인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과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왕사성의 죽림정사는 사위성의 기원정사(祇園精舍)와 함께 전도의 양대 거점이 되었다.

부처님은 성도하신 지 몇 년 후에 고향인 가필라국에 가서 부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교화하고 역시 10대 제자가 된 아난과 라훌라, 아나율, 우팔리 등의 제자를 출가시켰다.

십대제자란 《유마경》에 언급되는 말로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수승한 능력을 가진 열분의 제자를 말하는데 지혜제일 사리불(舍利弗), 신통제일 목건련(目 連), 두타제일 마하가섭(摩訶迦葉), 천안제일 아나율(阿那律), 해공제일 수보리(須菩提), 설법제일 부루나(富樓那), 논의제일 가전연(迦 延), 지계제일 우팔리(優婆離), 밀행제일 라훌라(羅 羅), 다문제일 아난다(阿難陀)등의 열 분의 제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 열 분의 제자들은 불법의 홍포와 전수는 물론 교단의 유지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분들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깨달으신 뒤부터 입멸할 때까지 45년 동안 중인도 지방을 유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했다. 또한 불교는 당시 많은 제자들에 의하여 널리 전파되었다.

부처님 재세시에 이미 불교의 가르침은, 동쪽은 갠지스강 하류까지 전해졌으며, 서쪽은 아라비아해 연안에까지 전파되었다.

부처님은 수행자와 재가자, 귀족과 평민, 노예를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셨다.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깨달음에는 빈부귀천이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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