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나는 누구인가

難勝 2011. 2. 15. 21:59

 

 

 

진짜 나는 누구인가?

 

우리들이  '나' 라고 알고 있는 것의 실상은 물질과 느낌 그리고 지각과 의지작용으로 대상을 아는 마음일 뿐,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나'는 없습니다. 

 

이 오온은 조건에 의해 생긴 그 순간만의 작용이지, 이 오온안에 내가 있다거나 , 나의 자아(영혼)가 있다거나, 이 오온이 나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오직 일어날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가 사라질 조건에 의해 사라짐으로, 어떤 변하지 않는 실체(나를 포함한)가 없는 공(空. 無我)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창 밖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현상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한 번 오온으로 통찰해 봅니다.

 

눈(眼)이 있고 밖에 눈(雪)이오는 현상이 있고 - 色蘊.

눈(雪)내리는 것을 보는 안식(眼識)이 있고 - 識薀

눈이 오니 겨울 기분이 나서 좋다는 느낌이 있고  - 受蘊

과거에 이렇게 눈이 오는 날  친구와 눈을 밟던 기억이 떠올라 -  想蘊

그 친구가 그리워지고 보고 싶다. 전화를 해야지  - 行蘊 

 

지금 눈에 대해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그 친구가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전화를 하려는 행위를 아는 마음 - 식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가스 불에 올려놓은 찌게가 끓어 넘치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아는 마음이 일어나고,  큰일났네 하고 뛰어가는  행동을 하는 이 순간의 새로운 오온이 있습니다. 

 

눈을 감상하던 직전의 오온은 새로운 조건에 의해 사라지고 새로운 조건에 걸맞는 새로운 오온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이런 행동을 하도록 시키는 어떤 실체는 없습니다.  

 

원인에 의한 결과만 있을 뿐입니다.

 

이렇듯 오온은 감각기관(六根)이 밖의 대상(六境)를 만나면 즉시 수온, 상온, 행온이 작용하여 오온을 이끌고 가는 식온(識薀)이 일어나서 새로운 오온(五蘊)을 만듭니다.

 

만일 그 때 창 밖을 보지 않았으면 눈(雪)에 대해 감상을 일으키는 오온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 순간의 조건에 의해 눈을 감상하는 마음이 있었을 뿐 내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눈을 감상하는 오온은 그 순간 일어났다.

 

찌개 끓어 넘치는 소리에 의해 사라지고 다시 찌게에 대응하는 오온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 즉시 이 마음도 사라지고 눈을 감상하느라  찌게를 태워먹었다고 후회하는 마음이 조건에 의해 그 다음 오온으로 일어납니다.

 

이렇게 오온 12처 18계는 매 순간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질 뿐 어떤 실체(나, 창조주, 신, 부처님)가 있어서, 조정을 하거나  일어나게도 하고 사라지게도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체 없음이며 공하다는 이유입니다.

 

5온 12처 18계는  현재 이 순간의 물질과 정신을 표현하는 다른 말들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몸과 마음이라고 알고 있는 것의 이 순간의 실재입니다. 

 

 이 순간을 궁극적 진리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통찰하면 이들은 모두 조건에 의해 생멸할 뿐 실체가 없는 ,  찰나의 생명을 가지고 다음 찰나의 원인이 되면서 준비시키고 사라지는 무상한 것이고, 괴로움 이며, 실체가 없는 무아(공)입니다.

 

실체가 없어서 공한 것이지 이런 현상들은  찰나 생멸하면서 흐르고 있는 실재(paramattha. 빠라마타, 궁극적 진리)입니다.

 

초기 불교의 입장에서 본  마음(心)의 특성입니다.

 

1. 마음은 무상(無常)하다.

2. 마음은 찰나생 찰나멸한다.

3. 마음은 생멸의 연속으로 끊임없이 흐른다.

4. 마음은 대상(法)이 있어야 일어난다.

5. 마음은 조건에 의한 발생일 뿐이다. (緣而生)

6. 고정 불변하는 마음은 없다.

7. 마음은 갈애와 무명이 있는 한 지속적으로 생성 소멸한다.

 

죄는 본성이없어 마음따라 짓는것 만약 마음에 없으면 죄도없나니 죄와 마음함께 비우면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집니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是罪亦忘 罪忘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 천수경

 

결론은 이 몸과 마음(五蘊)이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하는 것은 관념(빤냐띠)일 뿐이며, 실제로 이 몸과 마음의 성품(실재. 빠라마타)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라는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이것이 나다, 나의 것이다, 나의 자아(自我)다 라고 집착할 만한 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강경 전체에 흐르는 뜻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은 나라는 상(我相)을 비롯하여 모든 관념(相, 모양, 빤냐띠)을  버리고,  궁극적 진리인 성품(실재, 빠라마타)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라는 말씀이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궁극적 진리인 성품을 통찰하면 삼법인(無常, 苦, 無我)의 진리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실재(實在)를 통찰하므로서 그 어디에도 머물지 말라는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라는 말씀이 있고,  "과거심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이라는 말씀으로 잡을 것이 없음을 실재(성품, 궁극적 진리, 빠라마타)를 통찰해본 지혜의 입장에서 설하신 것입니다. 

 

이상은 초기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인 사성제 중에서 도성제인  8정도 수행(위빠사나 수행)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