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행의 20가지 어려움
1. 가난하면 보시하기 어렵고,
가난하다는 생각에 끄달려서 "나" 부터 살려고 하다보니 베푸는 자비의 마음이 없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결국 전생에도 베풀지 못해서 받는 과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속에 업장의 과보일 경우, 더 애착심이 강합니다.
애착이 강하는 것이 업입니다. 그래서 피할 수가 없어요.
2. 존귀하면 수행 하기 어려우며,
"나"라는 존재가 부와 명예가 갖춰져서 대우 받을 때 수행해야하는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또한 공부하는 수행자의 경우 "아상"이 생겨 대우받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서 수행의 장애가 생기게 됩니다. 부처님은 항상 지극하게 겸손하셔서 스스로 존귀하시지만, 존귀하다는 "상"이 없습니다.
내가 존귀하는 것은 "상" 에 끄달린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3. 일부러 자기 생명을 버리기 어렵고,
내 목숨을 부처님전에 올릴만큼 항상 용맹정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용맹정진 속에서도 항상 내 안위를 걱정하는 번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4. 부처님 법을 만나기 어려우며,
우리가 제일 먼저 감사해야 할 이유 중의 하나가 불법을 만난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세요.
5. 부처님 시대에 태어나기 어렵고,
석가모니부처님 생전에 우리는 없었지만,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항상 여여하게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을 믿고 의지할 때 "나무상주시방불" 입니다.
6. 이성에 대한 욕심을 참기 어려우며,
우리는 전생 업의 작용 중에 아주 강력한 애욕심은 비워내기 어려습니다.
애욕심(愛慾心) 때문에 우리가 윤회합니다.
7. 좋은것을 보고 탐하지 않기 어렵고,
좋은 것이라는 것은 각자 마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거의 좋은 것을 보는 눈은 같습니다. 물질욕(物質)은 이 세계가 물질세계라서 더 비우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8. 수모를 당하고 나서 성내지 않기 어려우며,
"수모"라 함은 나를 업신 여기며 얕보는 것입니다. 무시당하고 바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이 어쩌면 재가수행입니다. 물질계의 욕심을 비우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여자를 봐도 비워내고, 중생들이 좋아하고 아끼고 탐내는 모든 것을 비워내니 중생이 보기엔 재가수행자는 바보천지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비울 수 있는 힘은 내 마음안에 있는 "자비심" 때문입니다.
내 마음 안에도 부처님과 같은 자비심이 있기 때문에 비워낼 수 있습니다.
원각스승님께서는 수행의 원천은 자비심이라고 법문하십니다.
9. 권력을 가진 자가 탄압하지 않기 어렵고,
권력을 갖고 있다면 나와 닿는 모든 것을 내 뜻에 맞추려는 생각에 끄달리기 쉽습니다.
내 뜻과 틀리다면 권력이란 것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이 없는 사람을 탄압하기 쉽습니다.
생활속에서 우리도 나와 닿는 인연들에게 내 뜻을 따르기를 바라는 욕심때문에 권력을 행사합니다.
권력이란 것은 꼭!!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안에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모든 마음이 권력을 행사하게 하여 내 귀한 인연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업을 짓게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은 자비심이 부족해서, 살생하기 쉬우며 "무자비"할 수 있습니다.
"무자비(無慈悲)"한 마음은 절대 성불할 수 없습니다.
10. 사건에 대해 당황하지 않기 어려우며,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사건이란 것은 우리가 전생에 지은 업장이 닿은 것입니다.
그러니 놀라게 되고 놀라니 당황하게 되어 더 큰 손해를 보거나 해가 됩니다.
때로는 옆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지극하게 기도 올린 가피로 화현하신 관세음보살님 이시고 성중님이십니다. 바로 가피를 받아 업장을 비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감사한 일이고 행복한 일이며, 기도중에 깨달을 때 환희롭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건을 경험할 때 무조건 감사한 마음이면 부처님의 가피로 화현하신 불보살님의 도움을 받거나 우리 스스로 비킬 수 있는 지혜가피를 받습니다.
11. 널리 배우고 연구하기 어렵고,
널리 배운다는 것은 걸림없이 모든 것을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우리 생활속에 살아 존재하기 때문에 생활과 수행이 따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가 배움에는 어떤 분별과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와 닿는 모든 일과 인연과 내 안에 모든 느낌, 알아차림, 분별, 등등은 우리가 성불하는 과정일 뿐이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연구하기 어렵다는 것은 수행자가 참구하는 화두에 대해 끝까지 용맹정진심이 부족하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12. 아만심을 일으키지 않기 어려우며,
수행자는 모든 생활속에서 "나"를 비우며 수행하지만, 깨달아 알아차려서 아는 만큼 "아만심"도 커질 수 있습니다. "아만심"도 전생에 수행하면서 생긴 업장입니다.
아만[我慢]은 사만(四慢)의 하나로써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입니다.
전생에 수행의 장애이니 비워내기 힘들지만, 항상 자신을 놓치지 말고 "아만심"이 솟을 때마다 비워내야 합니다.
스승님이신 원각스님께서는 번개가 치는 찰나에도 자신을 놓치지 말라고 법문하십니다.
13. 무식한 이를 업신여기지 않기 어렵고,
아만심이 솟아서 "나" 스스로를 내가 높여서 잘난 체하다보니 모두가 다 무식해 보이고 지혜롭지 못해 보이는 마음으로 업을 짓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무식한 사람이나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나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내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그랭야 나의 부족한 부분을 찰나찰나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부족한 인연을 만난 것은 부처님께서 수행자에게 주신 가피입니다.
"무식한 이" 라고 하지만, 나와 닿는 인연중에 부족해 보이는 모든 부분을 대표해서 부처님께서 법문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닿는 인연에게 나보다 부족해 보이는 모든 부분을 "내" 부족함으로 보는 참회의 마음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14. 마음 가짐이 평등하기 어려우며,
나와 닿는 인연을 만날 때 우리는 "나"만을 위하는 마음, 이기적인 마음으로 분별심을 내어 봅니다.
바로 "업식"으로 보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모두가 불성을 가진 부처임을 모르고 보이는대로 대하게 됩니다.
싫어하는 마음이 들면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면 미워하고, 속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속여버리고, 좋아하는 마음이 들면 좋아해 버립니다. 전생의 인연대로 업일 뿐인 것을 끄달린 것이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라고 설명합니다.
힘든 일도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눈물나는 인연의 고통속에서 이만하니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내 살과 피가 말라버리고 찢기는 고통속에서도 이만하니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마음먹는대로 업장을 짓는 것이니 이왕 먹는 마음 모든 일을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을 먹는 것이 일체유심조 입니다.
나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은 내가 전생에 지은 업장이기 때문에 모든일의 결과에 부처님 이만하면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항상, 언제나 모든일에 평등(여여)하기가 어렵다는 법문 같습니다.
부처님전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다보면, 그 마음으로 불퇴전 하다보면, 존경하는 부처님의 마음처럼 모두와 평등하게 겸손하고 하심하는 자비심으로 상대방이 나와 인연이 된 이상 행복하길 부처님께 발원하고 그 인연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15. 시비에 말려들지 않기 어렵고,
시비에 말려든다는 것이란..... 내 마음안에 옳고 그름으로 분별하는 마음으로 생겨난 업으로 간섭하고 참견하고 비판하고....나와 닿는 인연들에게 내 뜻이 맞으니 "내말 들어",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내 생각은 네가 틀렸어", "잘못된 것은 비판받아야 돼 그것이 옳은 일이야" 등 내가 남의 업을 참견해서 내 업으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남의 업 때문에 시비가 난 것을 "아만심"이 솟아서 참여한 업으로 한번은 크게 혼나서 깨닫는 날이 오겠죠.
경험하지 않고 깨닫는 것이 용맹정진 수행의 과가 아닐까요.
16. 선지식을 만나기 어려우며,
전생에 지극한 마음으로 "성불" 하겠다는 수행이 있어야 선근공덕으로 선지식을 만나 봽겠죠.
금생에 선지식을 만나셨다면,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전생의 공부를 마저하는 것. 즉 "성불"입니다.
또는 만나셨지만, 그 분이 선지식인지 아닌지 모르고 있는 불자님도 계실 것입니다. 저도 스승님 만났을 때, 알아보지 못 했습니다.
17. 공부하여 견성하기 매우 어렵고,
금생에 온 이유가 모두 전생의 업때문에 이 중생계에 왔습니다.
중생심이 솟으니 그 중생심을 떨쳐버리기 어렵고, 중생의 즐거움을 버리고, 비우고, 오직 부처님의 법으로만 살아가기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니 공부하기 어렵죠.
※ 견성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見性 내가 부처님 닮고 싶은 마음으로 "나"의 성품을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이고,
見成 은 부처님 법으로 보는 것을 이뤘다는 뜻으로 견성하면 부처님께서 위신력을 주십니다.
※ 見性 해야 見成을 이룰 수 있습니다. 見成 해야 法性 내 안에서 자랍니다.
18. 중생을 제도하기 어려우며,
공부가 되지 않아 見成을 이루지 못하니, 法性 으로 거듭나지 못해 위신력이 없으므로, 중생을 제도하기란 더 어렵고 힘든 일이며, 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중생제도는 부처님의 法性으로 거듭나야 가능한 일입니다. 함부로 부처님을 대행할 수 없습니다.
19.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기 어렵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내 업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다 해도 어렵습니다.
수행자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자 5계를 지키고 10선을 닦으며, 용맹정진 수행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20. 방편을 잘 사용하기 어렵나니라.
法性으로 거듭나서 나와 닿는 중생의 근기가 보여야 방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法性 으로 거듭나는 것이 成佛입니다.
중생의 근기를 본다는 것은 전생의 잘잘못을 안다는 것입니다. 전생의 잘잘못을 알아야 방편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전생의 잘잘못을 알아서 그 업을 막아주고, 선근공덕[善根功德]닦게 하여 소원성취하고 고통속에서 해탈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부처님께 귀의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일이 成佛 하신 선지식께서 하시는 보살행입니다.
중생을 반야선에 태우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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