拈華茶室

꽃 꺾어 수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 상춘곡(賞春曲)

難勝 2011. 5. 4. 05:01

 

상춘곡(賞春曲)

 

세상에 묻혀사는 분들이여 이 나의 생활이 어떠한가,

옛 사람들의 운치있는 생활을 내가 미칠까 못미칠까?

 

세상에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써 나만한 사람이 많건마는

왜 그들은 자연에 묻혀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 것인가?

 

몇 간쯤 되는 초가집을 맑은 시냇물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구나.

 

엊그제 겨울지나 새 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저녁 햇빛 속에 피어있고,

푸른 버들과 아름다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

조물주의 신비스러운 솜씨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수풀에 우는 새는 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하여 소리마다 아양을 떠는 모습이로다.

자연과 내가 한 몸이거니 흥겨움이야 다르겠는가?

 

사립문 주변을 걷기도 하고 정자의 앉아 보기도 하니

천천히 거닐어 나직히 시를 읊조려 산 속의 하루가 적적한데

한가로운 가운데 참된 즐거움을 아는 사람 없이 혼자로다.

 

여보게 이웃 사람들이여, 산수 구경을 가자꾸나

산책은 오늘 하고, 냇물에서 목욕하는 것은 내일하세.

 

아침에 산나물을 캐고, 저녁에 낚시질 하세.

 

이제 막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를 꺾어놓고 잔 수를 세면서 먹으리라.

 

화창한 바람이 문득 불어서 푸른 시냇물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술 잔에 가득하고 붉은 꽃잎은 옷위에 떨어진다.

 

술동이 안이 비었으면 나에게 아뢰어라,

사동을 시켜서 술집에서 술을 사가지고,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나직히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 시냇가에 혼자 앉아,

고운 모래가 비치는 맑은 물에 잔을 씻어 술을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내려 오는 것이 복숭아 꽃이로다.

 

무릉도원이 가까이 있구나. 저들이 바로 그 곳인가?

 

소나무 사이 좁은 길로 진달래 꽃을 손에 들고,

산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수많은 촌락들이 곳곳에 벌려있네.

 

안개와 놀과 빛나는 햇살은 아름다운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엇그제 까지도 거뭇거뭇했던 들판이 이제 봄빛이 넘치는 구나.

 

공명과 부귀가 모두 나를 꺼리니, 아름다운 자연 위에 어떤 벗이 있으리오.

비록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잡스러운 생각은 아니 하네.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상춘곡 (賞春曲) 원문

                    불우헌 정극인 (不憂軒 丁克仁)

 

홍진(紅塵)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生涯) 엇더한고,

옛사람 풍류(風流)를 미칠가 못 미칠가.

 

천지간(天地間) 남자(男子) 몸이 날만한 이 하건마는,

산림(山林)에 뭇쳐 이셔 지락(至樂)을 모를 건가.

 

수간 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알피 두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籬)예 풍월주인(風月主人) 되여셔라.

 

엇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

도화행화(桃李杏花)는 석양리(夕陽裏)에 퓌여 잇고.

녹양 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 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물아 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이 이애 다를소냐,

시비(柴扉)예 거러보고 정자(亭子)애 안자 보니,

소요음영(逍遙吟詠)하야, 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듸,

 

한중 진미(閑中眞味)를 알 니 업시 호재로다.

 

이바 니웃드라 산수(山水) 구경 가쟈스라.

답청(沓靑)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란 내일(來日) 하새,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희 조수(釣水)하새.

 

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듯 부러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

준중(樽中)이 뷔엿거든 날다려 알외여라.

 

소동(小童) 아희다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

얼운은 막대 집고 아희는 술을 메고,

미음 완보(微吟緩步)하야 시냇가의 호자 안자,

명사(明沙) 조흔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를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로다.

 

무릉(武陵)이 갓갑도다, 져 믜이 긴 거인고,

송간 세로(松間細路)에 두견화(杜鵑花)를 부치 들고,

봉두(峯頭)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천촌 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러 잇니,

연하 일휘(煙霞日煇)난 금수(錦繡)를 재폈는 듯,

엇그제 검은 들이 봄빗도 유여(有餘)할샤,

공명(功名)도 날 띄우고, 부귀(富貴)도 날 띄우니,

청풍 명월(淸風明月) 외(外)예 엇던 벗이 잇사올고,

단표 누항(簞瓢陋巷)에 흣튼 혜음 아니 하니,

아모타, 백년 행락(百年行樂)이 이만한들 엇지하리.

 

<不憂軒集 卷二>

 

 

상춘곡(賞春曲)

 

조선 성종 때 정극인(丁克仁:1401~81)이 지은 가사.

총 39행 79구. 〈불우헌집 不憂軒集〉 권2에 실려 있다. 단종이 폐위되자 정언(正言) 벼슬을 사퇴하고 고향인 전라북도 태인(泰仁)에 은거하면서 후진을 교육할 때 지었다. 속세를 떠나 자연에 묻혀, 봄 경치를 완상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작품내용은 서사(序詞)·춘흥(春興)·취락(醉樂)·결사(結詞)의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단락에서는 속세를 떠나 벽계수(碧溪水) 앞에 수간모옥(數間茅屋)을 짓고 자연과 벗하는 풍월주인(風月主人)의 삶을 제시한다. 둘째·셋째 단락에서는 봄 경치를 즐기며 자연에 몰입하는 삶이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의 삶과 비견되어 그려진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이렇게 세속의 명리(名利)를 멀리하고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벗하며 사는 삶에 만족한다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작품에 그려진 전체적인 내용은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 돌아와 은거했던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고 있다.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도 실력을 쌓아 중앙 정계로 진출하려다가 거듭되는 수난을 겪던 조선 전기 사림파의 출처관(出處觀)을 알 수 있다. 조윤제(趙潤濟)가 이 작품을 가사의 효시작(嚆矢作)으로 본 이후, 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적지 않게 있었다. 그 근거로 〈상춘곡〉이 실려 있는 〈불우헌집〉이 정극인 사후(死後) 30년 뒤에 편찬된 점, 임진왜란 전 표기법이나 어휘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 내용이 작자의 생애와 비교할 때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효시작으로 보기에 형식이나 표현이 너무 정돈되어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정극인이 작자가 아니라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일단 정극인의 작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춘곡〉이 가지고 있는 가풍은 이후 송순(宋純)의 〈면앙정가 俛仰亭歌〉로 이어져 강호가도(江湖歌道)라는 시풍을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