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없음이 오히려 할 일이거늘
사립문을 밀치고 졸다가 보니
그윽이 새들은 나의 고독함을 알아차리고
창 앞에 그림자 되어 어른대며 스쳐가네
경허 스님이 천장암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어느 여름날 밤, 제자 만공이 등불을 켜들고 큰방으로 들어가니 경허 스님께서 누워 계셨다. 그런데 불빛에 비춰보니 경허 스님의 배 위에 시커먼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게 아닌가.
제자 만공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스님, 스님 배위에 독사가 앉아 있습니다요 스님!”
그러나 경허 스님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으신 채 담담히 대답했다.
“실컷 놀다가 가게 그냥 내버려두어라.”
만공은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고 있었는데 이윽고 독사가 스스로 또아리를 풀고 슬슬 배위에서 내려와 뒷문으로 사라졌다.
나중에 경허 스님께서 만공에게 이르셨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적어도 마음에 조금도 동요됨이 없어야 공부가 되느니라.”
세상일을 맞닥뜨림에도 저리 초연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실컷 놀다 가게 그냥 내버려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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