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사찰의 美 - 단청(丹靑)

難勝 2011. 5. 11. 04:14

 

단청(丹靑)

음양 오행사상이 뿌리…오방색은 우주원리 상징

 

우리나라는 단청의 나라다. 사찰의 불.보살전, 궁궐의 전각 등은 물론이고 서원.향교.객사.성문.누각에도 단청이 올려져 있다. 왕릉의 정자각(丁字閣).침전.사당.효자각.열녀각, 심지어 작은 정자에도 단청이 있기 때문이다. 살림집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건물에 단청이 올려져 있는 이 같은 현상은 같은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의 목조건물에서 단청다운 단청을 찾기 어려운 것과 크게 대조된다.

 

다양한 건물의 단청 가운데 사찰의 단청은 양과 질적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장식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단청은 예산 수덕사 대웅전(1308년, 고려 충렬왕 34년 건립) 단청인데, 건립 당시에 그렸던 벽화를 비롯해 밝고 화려한 단청의 흔적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1363년 이전), 영주 부석사 조사당(1377. 고려 우왕 3년) 단청은 지금 많이 퇴색됐으나, 조성 당시의 장엄함과 화려함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단청에는 단순하고 간단한 것에서부터 더 복잡하고 정밀한 것에 이르는 몇 가지 양식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가칠단청.긋기단청.모루단청이다. 가칠단청은 초록색.적갈색.백분(白粉).황토 등으로 칠하여 이 칠 자체가 바탕이 되거나 또는 긋기단청, 모루단청 등의 바탕칠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긋기단청은 가칠단청을 한 위에 먹이나 색으로 일정한 폭의 줄을 긋는 것을 말한다. 이 때 먹으로 긋는 것을 먹긋기라고 하는데, 보통 먹줄을 그은 후 백선(白線)을 곁들이게 된다. 이 때 백선을 백실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색줄을 긋는 것을 색 긋기라 하는데, 색 긋기는 단색 혹은 둘 이상의 색으로 긋는다. 긋기단청은 보통 직선이 많다.

 

모루단청은 건축 부재의 끝 부분에 머리초를 하고, 그 다음에 가칠단청이나 긋기단청을 하는 것을 말한다. 머리초는 처마 아래 기둥과 기둥사이에 걸쳐 있는 평방.창방.도리 등 부재의 양끝 모서리에 주로 그려 넣는 문양을 말한다. 머리초 문양은 시대와 건물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녹화(綠花).연화.주화(朱花).장고머리.병머리문양들을 배열한 다음 휘(暉. 몇 가지 색대를 나누어 채색한 것)문양을 붙이는 것이 기본형식이다. 금(錦)단청은 가지가지의 빛깔로 비단처럼 현란한 무늬를 첨가한 화려한 단청이다. 비단문양에는 크고 작은 원형, 삼각형, 육각형 등 기하학적인 곡선과 직선 형태들을 서로 꿰고 묶어서 그것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형식의 문양과 진귀한 물체들을 조화시켜 도안화한 능화(綾花)문양 형식의 문양 등 두 가지가 있다. 무늬가 반복적이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형상이 연속해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최대의 길상을 나타낸다.

 

 

금단청의 무늬가 더욱 가지각색으로 복잡해진 것을 ‘갖은금단청’이라고 한다. 금단청이나 갖은금단청은 대웅전, 비로전, 극락전 등 사찰에서 가장 권위 있는 건물인 금당(金堂)에 많이 사용되며, 보살전이나 신중전 등에는 금모루 단청, 모루.모루긋기단청 등이 올려진다.

 

불자들은 일부 단청 문양에 대하여 불교적인 해석을 가하기도 한다.

예컨대 휘(暉)는 불력으로 보방광명(普放光明. 광명을 널리 발산함)한다는 뜻이라 하고, 원문(圓紋)은 중생의 윤회함이 원의 연속됨과 같으므로 무상발심하면 불타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반원이 연결되는 소의 코에 끼는 군지를 표상하는 쇠코문양은 목우(牧牛).심우(尋牛) 등의 비유로, 불성(佛性) 찾기에 뜻을 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세모꼴이 연속되어 있는 기둥머리의 철갑금문(鐵甲錦紋)은 철갑의 철편처럼 임전무퇴하는 용기로서 수도하면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얻는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밖에 도리.서까래.부연.추녀 등에 쓰이는 문양과 관련된 불교적인 해석도 있으나, 고래로 구전되어 온 것인지 후세에 견강부회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화려한 錦단청.갖은금단청 매우 권위있는 金堂에 사용 

수덕사 대웅전 단청 국내最古 자연과 가장 닮은 예술 걸작품 

 

단청의 색상 관념은 오행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태양에서 오는 열기(火)와 지구에 있는 물(水)을 섭취해 땅(土)에서 자라는 것은 식물(木)이다. 또한 식물의 양분과 수분을 섭취하고 광물(金)의 도구와 불을 사용해서 땅에서 생활하는 것은 인간이다. 이런 오행의 원리를 옛 사람들은 청.백.적.흑.황의 다섯 가지 색으로 나타냈다. 오방색은 색상과 채도 등으로 구분해 파악하는 서양의 칼라(color) 개념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시각적 대상으로서의 색이 아니라 우주의 생성과 변전의 원리를 드러내는 일종의 상(相)이요, 표징이다.

 

옛 사람들은 단청에 오방색을 활용함으로써 벽사진경과 제액을 기원했다. 오방색은 배치에 따라 상생관계를 이룰 수도 있고 상극관계를 이룰 수도 있다. 수생목,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의 원리에 따라 흑생청, 청생적, 적생황, 황생백, 백생흑의 상생관계를 이루면 우주적 원소의 화합이 이루어지고, 우주적 화합이 이루어지면 서기(瑞氣)가 충만하여 악귀가 근접하지 못한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다. 이와 관련된 것이 단청 말고도 색동저고리, 오방장두루마기, 금줄 등이 있다. 옛 사람들은 악귀를 쫓거나 예방하는 데 붉은색과 푸른 색을 가장 많이 사용했고, 흰색과 검정색은 흉례에 많이 사용했다. 남방의 붉은색과 동방의 푸른색은 양에 해당하는 생명의 생기와 신성함의 의미로 인식되었기에 음에 해당하는 악귀를 쫓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런데 건물에 단청을 올릴 경우에는 오행의 상생관계도 중요하지만, 미적인 것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오방색의 정색만 사용하지 않고 간색을 섞어 이행을 부드럽게 했다. 녹색.청색.자색.적색.감색.황색.밤색.백색.회색.흑색 등의 순서를 원칙으로 했고, 색의 선호에 따라 동일 계통을 가미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도리나 대들보에 그려진 머리초와 머리초 사이의 공백, 또는 벽체나 포벽(包壁) 등에 회화적 수법으로 그려 넣은 장식화를 특별히 별지화(別枝畵)라 부른다. 별지화는 궁궐 단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사찰 단청만이 가지는 특징적 요소이다. 별지화 내용은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며, 하나하나는 나름대로 고유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으면서도 불전 장엄, 나아가서는 불국토 장엄이라는 큰 뜻에 통섭되어 있다.

 

별지화의 내용을 보면 불.보살 등 불교의 신앙체계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 불법을 외호하는 동물을 그린 것, 상서로운 동.식물, 그리고 불법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들이 있다. 별지화의 소재를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계의 경치와 불.보살, 용.봉황 등 상상의 동물, 귀면 등 신령계(神靈界)를 구상화한 것, 보상화.태평화.당초.기하학문 등 길상 상징물, 그리고 역대 위인이나 시성(詩聖) 등을 그린 고사(故事)인물화 등이 있다. 식물은 화초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자주 등장하는 꽃은 연꽃.모란.사군자 등이며, 석류도 간혹 눈에 띈다. 학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새, 사슴, 물고기, 산야.물결.암석, 자연계의 경치와 자연 현상인 구름.번개 등도 등장한다. 극락조.가릉빈가.용.봉황.기린.산예 등 신격화한 상상의 동물들도 많이 그려진다. 우아한 형태미와 화려한 색채미, 그리고 비상하는 경쾌미를 지닌 나비도 별지화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길상 상징물로는 태극문, 원에 가까운 타원형, 장형 등이 있으며, 길복과 장수영락의 기원을 담은 팔보문.칠보문 등이 있다. 드문 예이지만 파주 보광사 대웅전 공포의 쇠서 부리의 경우처럼 수(壽).복(福) 등의 길상 문자도 나타난다. 고사인물도 그려지는데, 예를 들면 삼국지의 주인공들, 이백(李白)이나 맹호연(孟浩然)과 같은 시인, 한산(寒山), 습득(拾得) 또는 임포(林浦)와 같은 은일처사, 하우(夏禹)와 같은 전설상의 인물 등이 있다.

 

우아하고 매력적인 그림과 문양들로 채워진 한국의 단청은 전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음양오행사상을 바탕으로 한 단청의 오채(五彩)는 강하고 화려한 원색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주변의 자연과 극적인 조화를 이뤄낸다. 울창한 송림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 사찰 기둥의 붉은 색은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송의 등걸 색과 같고, 도리.창방 등 처마 밑의 기조색(基調色) 또한 소나무 잎의 녹색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사찰의 단청은 자연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자연과의 조화를 삶의 근본으로 삼아온 우리 민족의 밝고 맑은 성정과 자연주의 심성이 만들어 낸 것이 단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