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사찰의 상징 - 가릉빈가

難勝 2011. 5. 12. 19:49

 

 

가릉빈가

범음내는 ‘상상의 새’…부처님의 또다른 화현

 

 

부처님을 모신 수미단, 고승대덕의 부도 또는 와당 등에서 머리는 사람 형태이고 하반신은 날개, 발, 꼬리를 가진 물상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가릉빈가(迦陵頻伽)라고 하는 상상의 새다. 가릉빈가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년 전, 부처님이 왕사성 기원정사에서 사리불, 마하가섭 등 사부대중에게 설한 〈아미타경〉에 처음 등장한다. 부처님이 아미타 극락정토의 모습은 설하되, 그곳에는 흰 고니와 공작과 앵무와 사리조(舍利鳥)와 가릉빈가와 공명조(共命鳥, 한 몸뚱이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새)와 같은 여러 새들이 밤낮으로 여섯 번에 걸쳐 아름답고 온화한 소리를 내는데, 이 새들은 모두 아미타불이 법음을 널리 펴기 위해 화현(化現)한 것이라 했다. 또한 그 국토의 중생들이 가릉빈가의 소리를 듣고 모두 부처님과 가르침을 생각하고, 스님들을 생각한다고 했다. 〈묘법연화경〉에는 부처님 음성을 가릉빈가 음성에 비유해 말했고, 후세 사람들은 가릉빈가를 미화하여 선조(仙鳥).호성조(好聲鳥).묘음조(妙音鳥).미음조(美音鳥).옥조(玉鳥)라고 불렀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사람들은 가릉빈가를 음악신 또는 음악의 창시자로 믿고 있는데, 인도 음악의 기원 전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도 고대 전설에 의하면, 설산(雪山, 히말라야산)에 신기한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무시카(Musikar)라고 불리는 악기를 연주하는데, 일곱 개 구멍 마다 각기 다른 소리가 나며, 계절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소리의 높낮이와 곡조의 조화가 미묘하여 환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릉빈가는 천년을 사는데, 수명을 다해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불을 피워 놓고 주위를 돌며 각종 악곡을 연주하며 열락의 춤을 춘다. 그러다 불 속에 뛰어 들어 타죽는다. 그러나 곧 따뜻한 재에서 한 개의 알이 생겨나 부화하여 과거의 환상적 생활을 계속하다가 또 불 속에 뛰어들어 타죽는다. 이렇게 하면서 생사의 순환을 계속한다. 환상적인 가릉빈가에 대한 전설은 대대로 전해져 지금도 인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가릉빈가가 갖추고 있는 인수조신(人首鳥身) 형태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인도 기원설, 그리스 기원설, 그리고 한대(漢代) 화상석에 보이는 우인(羽人. 날개가 있는 신선의 일종)기원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릉빈가의 형태에 관한 한 다원발생적인 측면보다는 ‘동서문화의 교류와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서기 전 4세기 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東征) 길을 따라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파급된 그리스 문명은 현지 문명과 융합하여 제3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다라 미술이고 간다라 불상이다. ‘동서문화의 교류와 융합’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가릉빈가도 고대 인도신화 전설의 기초 위에,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천사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제3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가릉빈가는 서역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오늘날 사찰 곳곳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인도신화서 유래…머리는 사람 몸은 새 

극락정토살며 ‘선조’ ‘묘음조’로도 불려 

국내 最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 

통일신라의 부도.와당에서 볼수 있어

인수조신(人首鳥身) 형식의 문양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덕흥리고분, 안악1호분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덕흥리 고분 천장에 그려져 있는 인수조신 형태의 새. 이 새 바로 옆에 ‘만세지상(萬歲之像)’이라고 쓴 명문이 보이는데, 이 내용은 인도 전설에서 가릉빈가가 천년을 산다고 한 것과 뜻을 같이 한다. 모양 또한 인수조신 형태로 묘사되어 있어 이 새가 가릉빈가임이 틀림없다. 같은 벽면에 신비로운 짐승들인 비어(飛魚),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청양), 불을 밟고 가는 불새도 그려져 있다. 이 가운데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가 〈아미타경〉에 나오는 공명조(共命鳥)가 아닌가 생각되고, ‘양광지조리화이행(陽光之鳥履火而行. 빛의 새, 불을 밟고 가다)’이라는 명문이 붙어 있는 새는 불사조인 것으로 보인다. 천계(天界)의 상징인 천장에 이처럼 신조(神鳥)와 천인과 함께 가릉빈가, 공명조 등 극락정토에 사는 새들을 그린 것은 무덤을 극락정토로 조성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통일신라시대 경우에는 부도나 와당에서 가릉빈가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문양이 아름다운 것으로는 경주 반월성 터를 비롯해서 황룡사지, 창림사지 보문사지, 안압지 등에서 발견된 와당이 있다. 부도의 경우에는 쌍봉사철감선사탑과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의 가릉빈가가 유명하다.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의 가릉빈가문을 살펴보면, 상단 괴임대 8면에 각각 날개를 펼친 가릉빈가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다리와 날개의 표현이 섬세하고, 자세는 유연하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의 경우는 상대석 위에 있는 8면의 안상(眼象)을 가진 탑신괴임대 면에 주악상과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서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금방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도식적인 느낌이 강하나 그것이 오히려 부도의 분위기를 정숙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조선시대 가릉빈가 조각상으로 주목되는 것은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의 서운사(棲雲寺) 대웅전 가릉빈가상이다. 내부 모서리 두공에 봉황과 함께 가릉빈가를 장식해 놓았는데, 가릉빈가의 도상적 특징이 매우 사실적이다. 목각 가릉빈가상을 법당 내부의 모서리 두공에 장식한 예를 중국 복건성 천주(泉州)의 개원사 대웅보전에서도 볼 수 있으나 한반도 남쪽의 절에서는 찾을 수 없다.

 

 

 

불단에 장식된 가릉빈가로는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의 것이 유명하다. 수미단은 전면과 좌우 측면에 각양각색의 신비스러운 문양들로 가득 차 있는데, 쌍을 이룬 물고기를 제외하면 모두 상상의 동물들이다. 당초(唐草)를 입에 물고 있는 귀면, 모란꽃 사이를 나는 봉황, 박쥐 날개를 단 익룡, 인두어신(人頭魚身)의 물고기, 자라껍질을 등에 진 괴인 등 기이하고 초현실적인 동물이 어울려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중에 가릉빈가가 포함되어 있는데, 띠매듭을 맨 천의를 입고 박대(博帶)를 어깨 위로 휘날리며 연꽃 봉오리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릉빈가는 악곡연주, 춤, 노래로서 부처님을 공양하거나 설법 장소를 상서롭고 아름답게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가릉빈가의 출현은 곧 경사스러운 전조(前兆)의 의미로 해석됐다.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날마다 가릉빈가가 내려와 춤을 출 때, 묘음천(妙音天)이 가릉빈무(迦陵頻舞)라 일컫는 춤곡을 연주했다고 한 경의 내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성자가 출현하거나 성군이 덕치(德治)를 펼쳐 천하가 태평할 때 봉황이 나타난다고 하는 동양 고래의 상서(祥瑞) 관념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능엄경〉, 〈정법연경〉, 〈대지도론〉 등에 나오는 가릉빈가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러하다. 가릉빈가는 그 소리가 시방세계에 두루 미치는데, 그 소리가 지극히 신묘하여 하늘과 사람과 음악신인 긴나라까지도 흉내 낼 수 없으며,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염증을 느끼지 않는다. 가릉빈가는 알 속에서 나오기 전에도 울음소리를 내는데, 그 울음소리는 여타 다른 새들의 어느 것보다 미묘하고 뛰어나다. 부처님의 음성은 마치 대범천왕의 것과 같고, 가릉빈가의 울음소리와 같이 아름답고 곱기 때문에 범음상이라고 한다.

 

가릉빈가의 불교적 의미는 형태가 아니라 이처럼 소리에 집중되어 있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이 청정 미묘한 범음으로 무상의 정법을 연출하니 듣는 사람들이 기뻐하여 맑고 오묘한 도리를 얻는다고 했다. 범음이란 대범천왕이 내는 음성으로, 음이 정직하고 조화롭고 우아하며, 음이 맑고 투철하고 깊고 풍족하며, 음이 두루 미처 멀리 들린다. 범음을 내는 가릉빈가는 부처님의 또 다른 화현(化現)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