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 5일장 여행
할머니 보따리엔 고사리·개망초·죽순이 가득…
인심 한 움큼에 추억이 살아나네
과거로의 여행 '기차마을' 꽃향에 취한다 '장미공원'
▲ 먼 옛날 장터를 돌아다니던 장돌뱅이 등짐을 풀었을 때도 이런 광경이었을까?
곡성 오일장은 섬진강을 젖줄로 알찬 속살과 향을 키운 산나물과 농산물이 모두 모인다. 전통시장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에는 주말이면 전국에서 4000~5000명의 인파가 몰린다. 전라남도 곡성(谷城). 골짜기(谷)와 고개(城)라는 뜻이다. 통일신라 때부터 땅 생김새를 지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고려시대 보부상들은 이 동네를 곡성(哭城)으로 적었다. 굽이굽이 고개를 오르내리면 너무 힘들었다. 장돌뱅이 입에서 절로 곡(哭) 소리가 났다. 그래도 보부상들은 걷고 또 걸었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흐르고 그 주위로 동악산·통명산·곤방산·검장산이 솟아 있어 풍성한 농산물을 만날 수 있었다. 쌀부터 나물까지 종류별로 사고팔다 보면 이문이 남았다. 그래서 장날은 잔칫날이었다. 장돌뱅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장에 나온 사람들도 덩달아 신났다. 그렇게 곡성 오일장이 생겼고, 지금도 3일과 8일로 끝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열린다. 옛 장터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흔히 않은 전통장터다.
지난 13일 섬진강 새벽 안개가 걷히자 곡성장터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곡성읍내 시장 뒤편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멈추면 보따리를 든 할머니들이 내린다. 한 할머니가 풀어놓은 보따리엔 뒷산에서 따서 말린 고사리·지칭개·개망초·죽순·취나물·민들레·뽕잎이 한가득하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는 경운기를 몰고 시장 한가운데까지 들어온다. 상추·쑥·미나리를 담은 바구니와 함께 할머니를 내려준다. 일흔이 넘은 부부는 신혼부부처럼 다정하다.
▲ 1960년대식으로 꾸민 증기기관차. 증기는 내뿜지만 주 동력은 디젤 엔진이다.
곡성 오일장에 유독 농민들이 좌판을 많이 벌이는 것은 자릿세 때문이다. 농사짓는 할머니들이 내는 하루 자릿값은 200원. 나물 한 움큼만 팔아도 본전은 뽑는다. 덕분에 곡성 오일장은 인심이 넉넉하다. "이거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담배상추지. 담뱃잎처럼 생기지 않았소. 씹으면 우렁생이 맛이 난당께"라는 친절한 설명이 돌아온다. 얼굴에 함박웃음을 담고 "할머니, 많이 담아주세요"라고 말하면 "못 살겄네~"하면서도 한 움큼 더 얹어준다.
오일장이 어른들에게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시간여행의 장소라면, 아이들에게는 산과 들에서 나는 각종 나물과 농산물을 익힐 수 있는 배움터다. 흑콩·서리태·팥 등의 이름표가 바구니마다 붙어 있다. 작고 붉은 보리수 열매를 한 움큼 입에 넣으니 떱떨 새콤한 맛이 난다. 보리와 겉보리가 담긴 바구니 앞에서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해보라고 하자. 아이들의 관찰력과 감수성은 장터에서 쑥쑥 자란다.
▲ 곡성 오일장의 명물인 피순대국밥.
주로 농산물을 파는 좌판 140개 주위에 장옥(長屋)이라 불리는 상점 60여곳이 자리 잡고 있다. 젓갈 가게, 곡물 가게부터 개고기집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정육점에서는 옷 벗은 닭을 볼 수 있고, 전통 대장간에선 50년 넘게 풀무질을 해온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을 만날 수 있다. 어디선가 ‘윙’하는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두 손으로 귀를 막아야 한다. 이곳 뻥튀기 가게에서 “뻥이요!”라고 외치는 대신 확성기를 들고 사이렌을 울린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배가 고프면 장터 음식을 맛보자. 시장 안쪽에서는 순대, 찐 옥수수, 찐빵 등을 맛볼 수 있다. 그중 빼놓지 말아야 할 게 3000원짜리 팥칼국수다. 곡성에서 난 팥을 푹 끓인 죽에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칼국수를 넣어 만든다. 기호에 따라 설탕을 뿌리기도 하지만 알싸한 겉절이김치과 함께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시장 입구 국밥집에 가면 독특한 피순대국밥(5000원)을 만날 수 있다. 당면을 넣어 만드는 일반 순대와 달리, 이곳 전통순대는 선지로만 채워져 있다. 아침마다 식당에서 직접 대창에 선지를 채워 쪄낸다. “피순대는 어디서 떼어 올 수도 없다”는 게 주인의 설명이다. 사골국물에 각종 내장과 함께 넣고 푹 끓인 피순대국밥은 의외로 깔끔한 맛을 낸다.
◆섬진강기차마을과 도림사 계곡
배를 든든히 채웠다면 섬진강기차마을에 가보자. 읍내삼거리를 거쳐 산책하듯 15분만 걸으면 옛 곡성역에 닿는다.
▲ 도림사 계곡
1933년 전라선 개통 때 만들어졌지만 1999년 전라선 복선(複線)화 사업으로 문을 닫았다. 2000년 이곳을 다시 살린 것은 1960년대 모습 그대로 운행하는 증기기관차. ‘부웅~’하는 기적소리를 내면서 느릿느릿 달리는 시꺼먼 철마(鐵馬)에 몸을 담으면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섬진강을 따라 침곡역을 거쳐 가정역까지 13.2㎞를 달리는 기관차의 속도는 시속 25~30㎞. 섬진강변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17번 국도를 달리는 자동차보다도 느리다.
기차 안에서 파는 주전부리도 옛 모습 그대로다.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더 맛있다는 불량식품 ‘쫀드기’부터 구운 계란·사이다 조합까지 군것질을 하다 보면 부모·자식 간 세대의 경계가 사라진다. 열차 내부는 현대식으로 꾸몄지만 차창 밖 섬진강은 옛 모습 그대로다. 강폭이 넓어지는 곡성은 강줄기와 산줄기가 순하게 어우러진다. 강변에는 낚싯줄을 던지는 강태공 모습도 눈에 띈다.
▲ 섬진강변의 레일바이크. S자로 휘어진 철길을 따라 온 가족이 섬진강과 함께 달린다.
섬진강의 풍경을 기차 안에서만 바라보는 게 아쉽다면 레일바이크를 타보는 것도 좋다.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선로 위에서 자전거처럼 페달로 움직이는 레일바이크는 침곡역부터 가정역까지 5.1㎞ 구간에서 운행된다.
곡성역 인근에는 장미공원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꽃향기가 코를 찌른다. 4만㎡ 규모에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1000여종의 장미꽃 300만 송이가 피어 있다. 초여름 햇볕이 뜨거우면 장미공원 옆 섬진강 천적곤충관에서 잠시 쉬어가자. 섬진강에 사는 곤충들을 보며 섬진강의 자연생태를 파악할 수 있다.
곡성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계곡 산책이다. 곡성읍내에서 곡성IC 방향으로 10분 정도 차를 몰고 가면 도림사(道林寺) 계곡이 나온다. 원효대사가 창건해 도선국사,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도인(道人)들이 숲같이 많이 모여들어 도림(道林)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계곡의 풍광도 유명하다.
주차장에서 수풀이 우거진 계곡까지 걸어서 15분 거리다. 계곡은 1곡(谷)부터 9곡까지 하나하나 이름이 붙어 있다. 입구부터 도림사까지가 1~5곡이고, 도림사 위쪽에 6~9곡이 있다. 계곡 하나하나마다 바위에 한시(漢詩) 구절이 새겨져 있다. 계곡을 오르던 한 곡성 주민은 “구한말 곡성 선비들이 의병활동을 하며 자신들의 기개를 새겨놓은 것”이라고 했다.
곡성읍에서 곡성IC 쪽으로 가는 대신 남원 방향으로 가면 청계동 계곡을 만날 수 있다. 동악산이 거세게 달려오다 강줄기를 만나 멈춘 곳, 청계동 계곡은 청정한 산골짜기와 맑은 강줄기가 어우러져 빚어낸 작품이다. 10분 정도 올라가니 너른바위가 있는 계곡 명소가 나온다. 계곡 양쪽으로 소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계곡물 소리와 솔향기로 코와 귀를 씻다 보니 어느새 계곡과 하나가 되었다.
◆ 볼거리
섬진강 문화학교: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카메라에 담아 온 김종권 사진작가가 폐교(廢校)를 개조해 만든 사진전시관. 남도의 자연 풍광을 섬세하게 담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곡성군 죽곡면 동계리 269. (061)362-0313
태안사(泰安寺): 신라시대 불교의 선문 아홉 가지 중 하나인 동리산파의 본산지로 좁은 계곡 위에 세워진 능파각이 이채롭다. 계곡물과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의미하는 ‘능파(凌波)’라 부른다.
◆ 먹을거리
참게탕·은어 요리: 섬진강 일대에서 잡은 참게와 은어가 별미다. 오곡면의 별천지가든(061-362-8746)은 시래기를 듬뿍 넣은 참게탕 국물이 고소하면서도 시원하다. 3만~5만원. 압록유원지 입구의 용궁산장(061-362-8346)은 석쇠에 구운 은어를 왕소금에 찍어 먹는 은어구이가 유명하다. 한 접시 2만~3만원.
◆ 곡성군청 관광개발과 (061)363-6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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