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으로 떠나는 맛있는 여행
6000km 험난한 바닷길 여정을 이겨낸 ‘풍천장어의 힘'
예로부터 고창 지역에서 잡히는 장어를 가리켜 ‘풍천장어(風川長魚)’라 했다. 풍천은 고창의 젖줄 인천강 민물이 짠물과 섞이는 하구를 가리키는 말. 곰소만과 만나는 인천강은 바다와 민물이 섞이는 구간이 무려 10km가 넘기 때문에 산란기의 장어가 짠물에 적응하는데 매우 훌륭한 환경을 갖추었다. 이 풍천에서 잡히는 장어는 약재로 쓰일 만큼 영양가가 높고 맛도 훌륭하다. 고창에서는 때마침 복분자를 테마로 한 푸드&와인 페스티벌도 개최할 예정이다. 풍천장어의 고향 고창으로 맛있는 여행을 떠난다.
전북 고창은 시인 서정주가 태어난 고향이다. 미당의 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하는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일대에는 서정주의 문학적 토양의 근간이 되었던 소재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최근 ‘질마재 신화’의 배경이 되었던 질마재길이 열렸고, 매년 가을이 오면 미당이 그리운 누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집필했던 ‘국화 옆에서’의 국화밭도 펼쳐진다.
이제는 세상과 등진 노시인을 생각하며 미당서정주시문학관 앞마당을 거닐어 본다. 따가운 봄의 햇살 아래서 잠시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어디선가 짭짤한 갯내음을 머금은 해풍이 불어와 살포시 머리를 쓸어 넘긴다. 곰소만으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이다. 이 바람이 미당을 시적 감수성을 키웠던 그 ‘8할의 바람’은 아닐까. 문학관 건물 전망대에 오르자 인천강이 고창의 기름진 옥토를 적시며 흘러와 바다와 몸을 섞는 광경이 펼쳐진다. 바로 저곳,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가 6000km 바닷길 여행을 이겨내는 장어의 고향 풍천(風川)이다.
▲ (좌) 고창 청보리밭 (우) 고창이 낳은 대시인 미당 서정주 선생의 생가에서는 그의 문학 세계와 일생을 알아볼 수 있다.
풍천(風川), 바다를 꿈꾸는 민물장어가 숨을 고르는 물길
민물에서 살던 장어는 산란기가 되면 먼 바다로 나아가 알을 낳는다. 이때 곧장 바다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짠물과 민물이 섞이는 기수역, 즉 강의 하구에서 서서히 바닷물에 적응하게 된다. 보통 밀물일 때 바닷바람도 함께 육지 쪽으로 불기 때문에 인천강 하구언을 풍천(風川)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곳에서 잡히는 장어를 풍천장어(風川長魚)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나가려다가 겨울을 맞으면 하구의 갯벌에서 월동을 하게 되는데 이 장어의 맛이 가장 좋다는 것이 고창군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풍천장어는 육질과 맛이 좋고 소고기에 비해 비타민 A를 월등히 많이 함유하고 있다. 게다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할 뿐 아니라 불포화지방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양식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요즘은 자연산 장어의 개체수가 줄어 거의 잡히지 않기 때문에 풍천장어의 의미가 다소 퇴색했지만 여행께나 다녔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풍천장어를 맛보지 않으면 고창으로 여행 온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늦가을에 풍천에서 잡은 장어를 약재로도 썼다고 하니 풍천장어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양식이라고는 하지만 고창의 장어에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매우 특별한 경쟁력이 있다. 장어 양식의 마지막 과정인 ‘축양(畜養)’에 그 비법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축양이란 장어의 노폐물을 빼는 과정으로 민물에서 양식한 장어를 보름간 바닷물에 풀었다가 다시 잡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장어는 바닷물에 적응하기 위해 금식을 하면서 몸 안의 노폐물을 모두 뱉어내게 되는 것이다. 금식을 하면 장어의 무게가 줄지만 육질을 위해 이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풍천장어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다.
▲ 1 무장읍을 지키려고 조선 태종 때 축조한 무장읍성.
2 인근 산지의 물길이 모이는 인천강 하구는 물살이 빠른 탓에‘풍천’이라 불리고 이곳에서 잡히는 장어를 풍천장어라 부른다.
3 고창 복분자와 함께 대표적인 별미인 풍천장어.
홍콩의 미식가도 반한 바로 그 맛
보통 장어구이 하면 양념장을 발라 구운 것을 떠올리지만 고창에서는 소금으로 밑간만 한 채 구워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어 본연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만끽하기에는 소금구이가 가장 이상적인 조리법이기 때문이다. 상추나 깻잎 같은 쌈채소에 장어를 한 점 얹고 부추와 생강, 마늘 등을 함께 넣어 먹는다면 금상첨화. 물론 부탁하면 양념장은 따로 내오므로 기호에 따라 양념장을 찍어 먹어도 된다.
고창에서 장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주로 선운사와 고창읍내에 자리한다. 고창군청에 문의해 축양의 과정을 거쳐 기른 양식장어를 상에 낸다는 집을 찾아가 보았다. 알록달록한 철쭉으로 단장해 봄기운으로 가득한 식당 앞마당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어느덧 장어가 다 구워졌다. 쌈채소나 양념장 없이 장어 한 점을 맛보았다. 노릇하게 익은 장어의 속살에는 기름이 듬뿍 배어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장어를 다 먹고 난 뒤 후식으로 맛보는 끓인 누룽지도 별미. 장어는 1kg을 주문하면 둘이 먹어도 남을 만큼 양이 충분하다. 가격은 1kg을 기준으로 식당에서 먹으면 5만~6만원, 포장해 갈 경우 4만~5만원 선이다.
풍천장어의 뛰어난 맛은 국제적으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지난해 11월‘식신(食神)’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홍콩 최고의 미식가이자 음식 칼럼니스트 차이란 씨가 남도 식도락 기행을 하는 도중 고창에 찾아와 장어를 맛보았다고 한다. 그가 ‘하오(좋아)’ ‘하오’를 연발하며 장어를 먹는 모습은 홍콩 현지의 유명한 음식 관련 잡지에 사진과 함께 게재되기도 했다. 차이란 씨는 그 맛을 잊지 못해 12월에 다시 선운사 부근의 어느 식당을 방문해 자신의 팬들과 함께 또 한 번 풍천장어를 맛보았다.
▲ 조선 단종 때 축조한 고창읍성은 가볍게 트래킹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절 선운사와 전설 같은 성벽을 거닐다
풍천장어 전문식당이 모여 있는 선운산도립공원과 고창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관광지는 꽃절 선운사와 고창읍성이다. 사실 ‘고창’ 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은 풍천장어보다 선운사일 것이다. 미당의 시에도 송창식의 노래 가사에서도, 선운사는 동백꽃이 피는 꽃절로 등장한다. 그러나 선운사가 단지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꽃들이 피고 또 지는 절집이었다면 그 가치는 덜했을지 모른다. 선운사는 국보급 유물을 다수 보유한 고찰이자 도솔암을 거쳐 천마봉까지 이어지는 걸출한 등산 코스를 품고 있다는 점이 고창으로 떠나는 맛기행을 더욱 부추긴다.
그러나 동백도 벚꽃도 모두 진 이 계절에는 선운사보다 고창읍성이 더 아름답다. 고창읍성은 조선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조선시대 초기의 석성으로 둘레가 약 1.6km에 달하고 평균 높이는 3.6m가량 된다. 얼룩덜룩 검푸른 때가 잔뜩 낀 수백 년 역사의 성벽을 연둣빛 담쟁이넝쿨이 휘감아 마치 전설 속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현재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북루를 통해 성안으로 들어서면 동헌과 객사, 죄수를 가두던 감옥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성벽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산책로가 여럿 나 있다. 고창에서는 예로부터 머리에 돌을 이고 성벽을 밟으며 돌면 무병장수한다는 얘기가 전해지는데 이는 성벽을 더 단단하게 다지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에서 비롯됐다.
<Travel Information>
추천 여행지
공음면 학원농장에 조성된 100만㎡ 규모의 청보리밭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고창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는 선운사와 고창읍성이지만 봄에는 학원농장을 찾는 인파가 압도적으로 많다. 청보리밭축제는 5월 초에 끝나지만 청보리는 수확이 끝나는 6월 초까지 구경할 수 있다. 보리가 무르익는 6월이면 누렇게 익어가는 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일으키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공음면에서 고창읍내로 가는 무장면 성내리에는 옛 무장읍을 지키던 읍성인 무장읍성이 있다. 조선 태종 때 축조한 것으로 알려진 무장읍성은 고창읍성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오래된 유적 특유의 고색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무장읍성은 현재 성의 남문인 진무루와 객사, 동헌 등이 남아 있지만 성벽은 대부분 유실되었다. 고창군은 세계문화유산의 고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고인돌 밀집지역이다. 그중에서도 고창 죽림리 일대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밀집도가 높을 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공존한다. 고창읍 도산리에 조성된 고창고인돌박물관(063-560-2576, gcdolmen.go.kr)에 가면 바로 이 고인돌과 선사인들의 생활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별미 음식
고창공설운동장 진입로변에 위치한 우리풍천장어(063-563-8882, 8869)는 최근 건물을 새로 지어 시설이 매우 깔끔하다. 고창읍내에 있는 우진갯벌장어(063-564-0101)와 선운사도립공원 입구에 있는 아산가든(063-564-3200) 등의 식당도 장어구이에 일가견에 있다고 한다. 선운사 도립공원 입구에 장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몰려 있다. 고창읍내에는 건물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도한정식 전문점 조양관(063-564-2026)이 있다. 이곳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며 식사를 하는 것은 어떨까. 조양관 건물은 본래 일제시대에 여관으로 지어졌던 일본식 가옥으로 1층에 부엌과 방이 있고 방 앞에는 쪽마루가 있다. 일부 변형된 곳도 있지만 목재 비늘 판벽과 골조 그리고 내부 공간이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고창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 IC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선운산 도립공원과 고창읍내에 전문식당가가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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