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의 종류
발원의 의미
1. 서원 (誓願)
부처님께 말하는 맹세로써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결심을 나타내 보임과 동시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포함하는 자발적 행위이다.
* 총원 (總願)
총서원이라고도 하며 사홍서원을 말한다.
이는 모든 보살과 삼보를 믿는 불제자는 누구나 가져야 하는 원이다.
* 별원 (別願)
별서원이라고도 하며,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과거 수행시절에 모든 중생을 구원하고자 나름대로 세운 원이다.
- 아미타불 48원, 약사여래 12대원, 승만부인 10대수 등 있다.
2. 기원 (祈願)
기원은 기도발원의 준말로써 무한한 불보살님의 힘을 믿고 그 힘이 자신에게 미치도록 간절한 믿음으로 소원하는 것이다.
작게는 복을 구하고, 크게는 중생 제도와 성불의 보살도 수행을 모두 포함한다.
3. 축원 (祝願)
성직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신도나 대중을 대신하여 불보살님께 참회하고 원을 아뢰어 은혜와 가피를 비는 것이다.
※ 기복(祈福)
복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것.
기복신앙의 대상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 지장보살님, 관세음보살님, 하늘님, 단군성제님, 옥황상제님, 북두칠성, 바다, 나무 등등
※ 가피(加被)
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주는 것
발원문의 이해
1. 발원문의 구성
찬탄 - 참회 - 발원 - 회향
2. 발원문의 응용
대중 발원문, 참배 발원, 일상 발원, 특별 발원
참고자료 1. 발원(發願)
원(願)은 서원(誓願)이라고 하며,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기어코 달성하겠다고 하는 서약적인 결의를 말한다.
발원은 어리석고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처럼 크고 넓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불자의 바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자에게는 누구나 원이 있다.
원은 우리의 삶에 목표를 두고 중심을 이루며, 지혜와 용기가 나오는 것이다. 먼저 불자가 갖는 대표적인 근본 원이 4가지 있다. 그것은 "첫째, 가엾은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둘째, 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셋째,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넷째,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라고 하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이 그것이다. 불자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언제나 이 원을 여의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는 온갖 어리석음 속에서 한없이 어려운 괴로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올바른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맑고 밝은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 서원력으로 인하여 모든 불자는 번뇌에서 벗어나며 악도를 벗어나고 중생을 제도하며 불국 정토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원은 자신의 이익만을 얻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려는 생활 태도다. 원(願)은 곧 희망(希望)이며 이상이다.
사람이란 참된 희망과 영원한 이상을 지님으로써 전진이 있고 향상이 있게 된다. 참된 보리 열반의 불과(佛果)를 성취하려는 불자로서 어찌 넓고 큰 희망과 이상을 지니지 않겠는가. 그 이상과 희망이 크면 클수록 그 활동과 노력도 큰 것이요, 그 노력이 클수록 그 결과도 클 것이니 불자로서 넓고 큰 서원을 세워 굳게 그 원을 닦아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행이라고 하겠다.
우리 불자들은 이 땅에 태어난 다행스러움과 부처님 법문을 만난 경사스러움에 큰 감사와 용기를 일으켜 발원을 하고 그것을 실천할 것을 굳게 맹세하여야겠다.
원을 세우기는 쉽지만 지속하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십년, 이십 년은 자기가 세운 원대로 행할 수 있는 각오가 서 있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세운 원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때 그 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참고자료 2. 가피력(加被力)
가피력이란 타인에게 주는 힘을 말하는 것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는 누구나 온 우주의 일부로서 나름대로의 영향을 모두 미치고 있다. 누구는 마이너스 에너지 파장을 미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누구는 플러스 에너지 파장을 미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미치는 영향력이 강한 이도 있고 약한 이도 있다. 그 정도에 따라 자비에너지의 정도가 틀리게 되는데 가피력이란 바로 그 자비에너지의 드러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다
온 우주에 미치고 있고 그 속에서 서로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도를 닦는다는 것도 바로 그 자비에너지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으로도 나타날 수 있고 영향을 줄 수 있다. 물이 필요한 이에게는 물로, 독이 필요한 이에게는 독으로, 병을 치료하고자 하면 치병으로, 소원을 원하면 소원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모두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비에너지를 깎아먹고 있는 자신의 업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현실에 직접적으로 나타날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뿐이지 이루어지는 힘은 발휘되고 있다.
기복신앙은 그것의 낮은 쓰임이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서원이나 발원은 그것보다 훨씬 원대하고 크다고 할 수 있다.
지옥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지 않고서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크나큰 서원을 세우시고 공부를 하신 분이 바로 지장보살님이다.
중생의 모든 병을 낳게 하겠다는 서원으로 공부를 하신 분은 물론 약사여래불이시고......
그래서 그 분들을 향해 기도를 하거나 그러면 그 분들의 그러한 파장을 받아 그 은덕을 입게 된다. 물론 그 정도는 기도의 정성에 따라 지닌 업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기복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해도 당연히 나타난다.
단, 그 자비에너지가 크지 않으면 나타나는 힘이 작으니 안되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 기도는 자신보다 자비에너지가 큰 존재에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기복신앙도 분명히 불교의 한 부분이다.
그 다음은 물론 스스로의 자비에너지를 높여 온 우주에 기여하고자 하는 고급 영혼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수많은 부처님들 보살님들이 그러한 분들이다. 그리고 도를 공부하는 수 많은 분들 중에서도 또한 그러한 분들이 많이 계신다.
그리고 깨달음만이 최선의 가치는 아니지 않은가 싶다.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항상 다가온다. 그리고 누구나가 똑같은 깨달음으로 오지도 않는다.
생활속에서 오는 조그마한 깨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것도 소중한 깨달음 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은 후 뒤돌아서서 누군가에게 '아! 내가 너무 심하게 대했구나' 라든가 '왜 좀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라든가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라고 하는 등등의 일들은 사실 누구에나 오지만 절대로 똑같은 깨달음으로 가치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것도 깨달음이다.
꼭 무상의 위 없는 깨달음만이 있지는 않다.
수많은 깨달음을 거쳐서 결국 무상의 위없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만으로 그치게 된다면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의 완전한 들어남이 있을 때 자비에너지 곧 법력의 증득이 있게 된다.
자, 그럼 님께서는 평소 어느 정도의 마음, 자비에너지를 쓰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님의 품고 있는 자비에너지의 정도라고 할 수 있고 근기라고 할 수 있다. 님께서 불교를 공부하던지 교회를 다니던지 무신론자이던지 그것과는 물론 상관이 없는 일이다.
부디 무상의 법연을 맺어 부처로서 부처의 삶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길 기원드린다.
참고자료 3. 발원과 탐심
발원이나 탐심이나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은 같지만 그 방향이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1. 일반적 대중의 입장에서 볼 때 발원은 건전한 노력을 전제로 하며, 마음으로 다잡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는 제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성적을 받고자 합니다."
반면 탐심은 그에 합당한 마음으로 바꾸지 않고 까닭없이 남의 좋은 성적을 탐내고 비정상적인 방법을 써서 좋은 성적을 받고자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아껴 쓰겠다고 한다면 이는 발원이지만, 남의 돈을 탐내며, 노력도 없이 나보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시기 질투한다면 탐심이다. 보통 분수를 모른다고 한다.
2. 수행자나 종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탐심은 무명에서 비롯한 탐진치에 근거하며, 허황된 것을 좇는 것이다.
"나"를 비롯해 모든 것은 일정한 모습이 없으며 실체가 아니다. 그런데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이롭게 하는 것이 허황된 돈이나 물질이라고 생각하며 좇는다. 그러면서 그러한 것이 쌓여 갈수록 또 다시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번뇌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탐심은 번뇌의 원인이 된다.
발원은 그 반대로 위와 같은 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루어나가다 보면 차츰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대표적인 서원이나 발원이 사홍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차츰 나라는 것이 실상이 아님을 깨닫고 집착하지 않으며, 나아가 허망한 아상에 사로잡혀 있는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하려고 한다.
그런데 중생들이 발원을 하기 위해서는 스승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중생들이 자기 나름대로는 번뇌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원을 내지만 결과적으로 또 다른 번뇌 속에서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줄로 안다.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열애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행복할 줄로 안다. 그러므로 번뇌에 싸이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역시 탐심의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왜나하면 그것이 무명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근기를 갖춘 사람이 아니면 참다운 발원을 하기 어려우며, 그러므로 경전이 있고 이를 전하는 스승들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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