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찾아 가는 길

파주 용미리 석불 입상

難勝 2011. 6. 24. 04:43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

 

거의 찾아보기 힘든 남녀 한 쌍의 석불 

고려시대냐, 조선시대냐 제작 시기 두고 논란 계속… 문화재청 보물 93호로 지정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 남쪽 자락에는 높이 17.4m의 거대한 두 구의 불상이 있다.

'용미리 석불입상'이다.

 

산기슭에 있는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몸통을 조각하고 그 위에 목·머리·갓 등을 따로 만들어서 얹어 놓은 이 한 쌍의 석불은,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남상과 여상이 함께 조각된 특이한 양식이다.

 

이 불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고려시대설은 불상의 모습과 전설에서 비롯됐다.

 

두 석불 가운데 왼쪽의 불상은 둥근 갓을 썼고 오른쪽의 불상은 네모난 갓을 쓰고 있는데, 서로 손 모양만 다를 뿐 옷의 주름이나 매듭, 얼굴의 이목구비가 비슷한 느낌과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는 게 고려시대 제작된 불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전설도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고려 13대 왕 선종(1049~1094)은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를 맞이했으나 여전히 왕자를 낳지 못했다. 이를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인데 매우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하고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깨어난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선종에게 고하자 선종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냈다. 한참 후 장지산에 다녀온 사람이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고 전했다. 이에 선종은 즉시 이 바위에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다. 그러자 그 해에 왕자가 태어났다.

 

하지만 이와 다른 주장도 있다. 불상의 앞면에는 조선시대 초기 세조와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로 미루어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불상이라는 것이다.

 

용미리 석불입상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남아있지만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1963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보물 93호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