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해남 두륜산(頭輪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이 곳 대흥사는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西山)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고, 한국불교의 종가집으로 그 역할을 다해 온 도량이다.
암울했던 조선시대의 불교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존재는 한국불교의 오늘이 있게 한 최대 원동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頭崙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현재 해남ㆍ목포ㆍ영암ㆍ무안ㆍ신안ㆍ진도ㆍ강진ㆍ광주 등 8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ㆍ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萬年不毁之基)”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토록 한 도량이기도 하다.
이후 대흥사는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도량으로 변모하였다. 즉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 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조선중기 이후 수많은 선승(禪僧)과 교학승(敎學僧)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한 대흥사는 대표적인 호국도량의 위상도 간직하고 있다.
현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표충사(表忠祠)는 서산대사의 구국정신을 기려 국가에서 건립한 호국도량의 한 표상인 것이다.
그리고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완호(玩虎) 대사는 초의선사의 스승이었는데, 1813년(순조 13)에 천불전을 중건한 뒤 경주의 옥석(玉石)으로 천불을 조각하게 했다. 열 명의 조각사가 6년에 걸쳐 천불을 완성하자, 모두 3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울산과 부산 앞바다를 지나 해남 대흥사를 향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 척의 배가 울산진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 장기현(長岐縣)까지 밀려가게 되었다.
바닷가에서 배를 발견한 일본인들은 그 속에서 300여 개의 옥불(玉佛)을 발견하고, 서둘러 이를 봉안할 절을 짓기로 의논하였다. 그러나 어느날 밤 이 불상들이 그들의 꿈에 나타나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둔사로 가는 중이니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고 현몽하자, 하는 수 없이 해남으로 돌려보내면서 불상 밑바닥에 모두 ‘日’자를 새겨 보냈다고 한다.
천불전에 봉안된 옥불상은 근래에도 그 영험함을 보인 바 있다. 인근지역 신도들이 꿈속에 불상들이 나타나 “가사를 입혀 달라”는 현몽을 여럿이서 꾸게 되었는데, 그 뒤부터 4년마다 한번씩 가사를 갈아입히고 있다. 따라서 이때 갈아입은 헌 가사를 지니고 있으면 근심과 걱정이 없어진다는 속설도 함께 전하고 있다.
넓은 산간분지에 위치한 대흥사는 크게 남원과 북원의 2구역으로 나뉘어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ㆍ응진전ㆍ산신각ㆍ침계루ㆍ백설당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ㆍ봉향각ㆍ가허루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사명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산을 오르면 좌측 계류(溪流) 위에 놓인 운주교(雲柱橋)를 건너게 되고 그 앞쪽으로 해탈문(解脫門)이 나타난다. 이 문을 통과하여 곧장 지나면 심진교 건너에 침계루가 있으며, 북원의 중심전각인 대웅보전이 넓은 경내의 중앙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대웅보전 좌측에는 명부전이, 우측에는 응진당ㆍ범종각이 각각 자리하고 있으며, 침계루 옆에는 요사인 백설당이 있다.
해탈문을 지나 오른쪽 길로 오르면 남원 구역의 가허루가 보이는데, 그 안쪽 중앙에 천불전이 자리하고 있다. 천불전의 전면 양측으로는 용화당과 봉향각이 있어 가허루와 함께 전체적으로 口자형의 중정을 형성하고 있다.
남원의 담장을 끼고 무염지 옆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표충사 구역이다. 표충사 구역에는 의중당과 표충사ㆍ조사전ㆍ표충비각 등이 있으며, 그 앞에 사명대사의 유품을 전시한 유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표충사 뒤편으로 200m 가량 더 들어간 곳에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광명전 구역이 자리한다.
'절 찾아 가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일암(佛日庵)의 법정스님 (0) | 2011.07.13 |
---|---|
의정부 회룡사 석굴암 (0) | 2011.07.05 |
파주 용미리 석불 입상 (0) | 2011.06.24 |
포항 운제산 오어사(吾魚寺) (0) | 2011.06.15 |
서산마애불과 태안마애불의 엇갈린 운명 (0) | 2011.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