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전쟁도 피해간다는 그 곳, 봉화 큰터마을

難勝 2011. 7. 25. 21:27

 

 

 

봉화 큰터마을

봉화 구마동 큰터마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산 아래 새터마을 옆으로 각화산에서 발원한 계곡이 흐르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험한 계곡이 외부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소나무가 꼭꼭 숨겨 두었네… 전쟁도 피해 간다는 그곳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십승지(十勝地·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땅 열 군데)로 알려진 곳 중 하나인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사이에 있는 고선계곡(옛 구마계곡). 서남쪽으로 각화산, 동북쪽으로 청옥산이 자리 잡아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길도 없다. 들어오는 통로라곤 계곡 따라 올라오는 길뿐이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곳에 사람들은 난(亂)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지금은 적송(赤松)이 숲을 이루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초기만 하더라도 아름드리 춘양목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첩첩산중, 그 산속을 흉년·전염병·전쟁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 하여 십승지에 포함시켰다.

 

외부와 차단되었기 때문에 산림은 다른 어느 곳보다 우거졌다. 그 우거진 산림이 봉화엔 오히려 화(禍)를 불렀다. 일제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를 가만두지 않았다. 심산유곡에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산등성이는 처참하게 벗겨졌다. 그 흔적이 각화산 끝자락 구마계곡 상단 조그만 공터에 비석으로 남아 있다.

 

비석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금강소나무의 눈물이 담긴 조선임업개발주식회사 주재소 터'라고 쓰여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안세기(87)옹이 당시 일제의 벌목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대대적인 벌목이 끝난 후 일제는 떠났고 마을은 다시 옛날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계곡으로 들어왔던 사람들도 떠나갔다. 원래 삼삼오오 모여 살던,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한적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곳이 바로 산길 사이로 꼬불꼬불한 국도 31번 도로에서 계곡 따라 무려 15㎞나 올라가서 만나는 봉화군 구마동 큰터마을이다. 봉화에서 제일 긴 계곡이다.

 

"아버지가 십승지 명당이라 하여 들어온 게 13세 때였으니까 지금부터 74년 전이지. 그때는 일제가 한창 금강송을 남벌해 가고 있었지.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주재소 급사로 들어가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했어. 여기 금강송들은 어른이 두 손으로 감싸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아름드리나무들이었지. 그걸 왜놈들이 다 베어버린 거야. 참 아까운 나무들인데…. 지금 저것들은 1960년대 이후 심은 나무들이야."

 

주변을 한번 죽 둘러봤다. 십승지 중 한 곳이 될 수밖에 없는 지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고, 계곡물은 철철 넘쳐흐른다. 몸을 숨기고 살면서 곡식거리를 부쳐 먹고 살 만한 땅이다.

 

소천면에서 큰터마을 도착 전 4㎞쯤 떨어진 곳에 노루목이란 곳이 있다. 노루의 목같이 급격히 좁아진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물론 노루목도 계곡 옆으로 나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탈출할 만한 통로가 없는 외길이다.

 

폭이 10m는 족히 될 법한 계곡 양쪽 산 사면으로 과거의 영화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적송들이 우거져 있다. 한창 자라고 있는 애송이 적송들이다. 산 사면은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경사진 비탈이다. 이 노부부는 이곳에서 그동안 무얼 먹고 살았을까. 그래도 자식을 9명이나 반듯이 키워 결혼까지 시켰는데.

 

"농사랄 것도 없지. 당귀와 천궁 같은 약초나 옥수수, 고추, 감자를 심어 먹고살았어. 요즘은 농사지을 사람도 없고, 쌀 두 가마면 우리 부부가 1년을 먹을 수 있어. 자식 9명을 키우기 위해 전국으로 장사하러 다녔지. 지금은 다 도시로 나가 살아."

 

큰터마을엔 안옹 부부를 포함해서 3가구가 살고 있다. 각화산 방향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다른 집이 있다. 온종일 있어도 사람 만나는 일이 가물에 콩 나듯 한다. 다행히 큰터마을 1㎞쯤 위, 계곡 발원지가 가까워지는 곳에 새터마을이 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큰터마을 안옹의 집엔 커다란 장독대와 나무지게가 있고 옛날 아궁이엔 무쇠솥이 덩그러니 걸려 있다. 그 옛날 우리 농촌의 정감 있는 모습이다. 그곳에 노부부가 오순도순 자연과 함께 살고 있다.

 

교통

서울 출발 기준으로 중부~영동~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풍기IC에서 빠져나와 931번과 5번·36번 도로를 잇달아 바꾼다. 이어 36번 도로로 계속 달리다 현동삼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고선2리에서도 좌회전하면 이때부터 계곡 따라 외길이 계속된다. 산길로 계속 올라가면 길의 종점 부근에 큰터마을이 나온다. 새터마을은 큰터마을에서 1㎞쯤 더 올라가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끝 지점에 집 한 채와 조그만 절이 있는 곳이다.

 

 

 

 

숙식

(지역번호 054): 현동삼거리 부근에 명산랜드와 온천이 있다.

문의 673-9977(식사), 673-9988(숙박).

민박은 안세기옹(672-7366)의 집에서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