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송에 나타난 네 가지 특징
1. 들어가는 말
“선의 핵심은 깨달음에 있다. 시의 핵심 역시 깨달음에 있다. 오직 깨달음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기 자신일 수 있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직관파 시론가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엄우창랑(嚴羽滄浪)의 묘오론(妙悟論)이다. 엄우는 시를 지나치게 선적으로 해석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선시의 백미는 역시 깨달음을 전하는 오도송에 있다 할 때 엄우의 이 말은 공감의 폭을 넓힌다.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게송들은 (중략) 세속 시인들의 음풍농월이나 아무런 아픔도 없이 괜스레 신음하는, 진솔하지 못한 작품과 견주어 볼 때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만일 타고르가 이와 같은 게송을 읽었다면, 그로서는 미칠 수 없는 뛰어난 경지와 감각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선시에 대한 정의와 해석은 그간 관련학자들에 의해 적지 않게 내려졌다. 그 가운데 오도송(悟道頌)에 접근하고 감상하는 데 있어서 엄우와 두씨의 이같은 말처럼 함축적으로 표현된 예는 드물다. 실제로 선종의 특색이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에 있었던 만큼 선시도 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의 선시든 엄우가 말한 “이로(理路)에 관계되지 않고 언전(言詮)에 떨어지지 않는 것(不涉理路 不落言詮)”을 최상의 경지로 삼는 게 관행이 됐다.
물론 이 말 자체도 선시의 지위를 낮게 평가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언어의 설명적인 기능을 최대한 억제시킨 비언어적인 언어’로서의 시를 만들어내는 데 선시가 크게 기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선시는 선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오도적 체험을 시화(詩化)한 종교적 시를 말한다. 특히 오도송은 이러한 정의와 부합된다고 할 때 선시의 출현과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됨을 엿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불립문자를 표방하는 선종이지만 깨달음을 표현하거나 제3자에게 전달하려면 그것이 언어가 됐든 몸짓이 됐든 어떠한 표현방식을 빌어와야 했다. 임제의현 선사가 제자들의 물음에 큰 소리로 깨침을 전한 것이나(臨濟喝), 덕산 선사가 몽둥이를 쓴 것(德山棒) 등이 그 실례다. 하지만 깨침을 전하는 데 있어서 그 섬세함마저 괴벽에 의존할 수는 없다. 자칫 본질이 감춰지고 오히려 깨달음이 관념의 유희에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이런 연유로 깨달음을 전하는 아주 적합한 방법이었다.
그러면 선사들의 오도송은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가. 오도송은 저마다 깊은 선리(禪理)를 드러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오도송으로는 역시 영가현각(永嘉玄覺:675?∼713)의 〈증도가〉다. 깨달음의 충만과 희열을 참지 못해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지는 〈증도가〉는 각 장면마다 깨침을 열기 위한 선지(禪旨)가 그윽하다. 이후 전해지는 오도송들도 저마다 독특한 현지(玄旨)를 함축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선시로서 갖는 공통점에 불과하다.
선리와 선지의 함축은 선시가 갖는 공통적 특질이기 때문이다. 오도송만이 갖는 공통점은 대략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선사들의 깨침은 한결같이 돈오적(頓悟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박에 깨침을 열면서도 미진함을 남겨두지 않는다. 이같은 선사들의 깨침은 그대로 오도송에 투영되고 있다.
둘째로 그들의 깨침은 자연과의 합일에서 온다는 점이다. 깨침이 특정한 자연물로 인해 취득되고 나아가 그 깨침은 자연, 온 우주와 합일되면서 상즉불리(相卽不離)의 관계로 확대 발전한다. 비록 자연물을 매개로 하지 않고 깨침을 전하는 오도송이라 하더라도 법계(法界, 곧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지는 같다.
셋째는 이미지(image)의 사용기법이 비슷하다. 문학적 용어로 좀더 세밀하게 표현하면 이미저리(imagery)다. 신체적 자각이나 기억, 상상, 꿈, 열병 등에 의하여 마음 속에 생산된 것이 이미지고 언어에 의하여 마음 속에 생산된 경우 이미저리가 된다. 또한 시가 여러 개의 이미지로 구성돼 있듯 이미저리는 한 개의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군(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요약해서 말하면 ‘언어에 의해 마음 속에 생산된 이미지군’이 이미저리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두 용어는 혼용되고 있다.4) 대부분의 선사들은 자연물에서 혹은 심상에서 깨침을 얻는 이미지를 비슷하게 인용해 사용하고 있다.
넷째는 그들의 오도적 체험이 단순하게 어떠한 논리나 철학에서 연유되는 것이 아니고 철저히 몸으로 부딪친 수행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들의 오도송은 육화(肉化)의 향기가 물씬 배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하게 된다.
오도송에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네 가지 특징은 여타의 선시와는 다른 격조와 품위를 맛보게 한다. 이들 특징을 차례차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오도송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영가의 〈증도가〉를 먼저 감상해보자. 〈증도가〉는 무엇보다 돈오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대표적인 선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깨달은 이는 어떠한 사람인지도 이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단 이 글에서의 선시의 해석은 석지현의 《선시감상사전》과 이원섭의 《선시》를 참조했음을 밝혀둔다.
2. 대표적인 오도송 〈증도가〉
그대여 보지 못했는가
더 이상 배울 게 없어 한가로운 이 사람은
번뇌를 거부하지도 않고 불멸을 갈구하지도 않나니
번뇌는 불성이요, 덧없는 이 육신이 그대로 불멸의 몸인 것을.
君不見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때는 서기 705년. 중국선종사의 신화 같은 인물로 당대 선객들의 추앙을 한몸에 받고 있던 육조혜능이 조계산에서 상당법문을 하고 있었다. 단하엔 수많은 운수납자가 운집해 조용히 대선사의 사자후에 귀기울였다. 조계산 넓은 자락에 혜능의 육성법음만이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고 있는데 한 사문이 갑자기 나타나 절도 하지 않고 법상을 세 번 돌고는 석장(錫杖)을 짚고 선사 앞에 우뚝 섰다.
“대저 사문은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을 갖춰 행동이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 대덕은 어디에서 왔기에 도도히 아만을 부리는가?”
혜능의 준엄한 나무람이 내려졌다. 그러자 사문이 대답했다.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이 빠릅니다.”
“어찌하여 남(生)이 없음을 체험해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
“체험하면 남이 없고 터득하면 본래 빠름이 없습니다.”
혜능이 말한다.
“그렇다. 네 말과 같다.” 하고 인가하니 대중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그때에야 사문이 비로소 위의를 갖추고 혜능 선사에게 정중히 예배했다.5)
이 사문이 바로 영가현각이다. 그는 ‘일숙각(一宿覺)’으로도 불렸는데 스승 혜능과의 남다른 만남에 기인한다. 혜능을 일상견(一相見)한 영가가 스승에게 하직인사를 드리자 법거량을 하면서 하룻밤만 묵고 가도록 한 데서 별칭이 주어진 것이다. 즉 영가는 ‘일상견 일숙’으로 육조혜능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그런 영가가 육조의 득법 이후 확철대오한 경계를 읊은 것이 오도의 경지가 잘 드러나 있는 〈증도가〉다. 물론 〈증도가〉가 영가현각의 저술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학계의 이견이 많다.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이는 1927년 중국의 호적(胡適) 박사다. 최근 연세대 신규탁 교수도 〈불조통기〉 〈영가집〉 등의 내용과 비교하면서 〈증도가〉는 혜능의 선사상을 선양하기 위한 작품이지, 영가의 저술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선학계가 아직까지는 영가의 진작(眞作)이라는 쪽에 기울고 있고 이에 대한 문헌학적 고증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영가의 작으로 보고 〈증도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증도가〉는 전부 1천8백58자 2백67구로 구성돼 있는 전형적인 당시조 형식의 고시(古詩)다. 고시이기 때문에 전부가 7자구가 아니고 6자구도 51구나 섞여 있다. 6자구가 먼저 나오고 그 뒤에 7자구가 세 번 연결되므로 6.7.7.7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증도가〉의 ‘증’은 구경각인 증오(證悟)를 말하는 것이니 증오로써 근본을 삼고 있음을 표명하고 있다.
즉 선가에서 ‘깨쳤다’함은 바로 증오를 나타낸 것이다. 증오의 기쁨은 얼마나 큰 것일까. 〈증도가〉는 영가가 깨달음의 희열을 노래한 장편시로서 깨달음의 기쁨을 참지 못하고 단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다. 깨달은 사람, 즉 증오한 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증도가〉는 첫 구절에 깨달은 이를 ‘모든 것을 다 배워서 더 배울 것이 없고 더 닦을 것이 없는’, 그래서 아무런 할 일이 없는 한가한 이(絶學無爲閑道人)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하릴없는 이’란 도가적 목가풍 분위기와는 상반된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고 순간과 영원이 분별되는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망상과 참됨도 굳이 버리거나 추구할(不除妄想不求眞) 필요가 없다.
영가가 말하는 ‘한도인’에게 나타나는 경계는 “강에 달 비치고 소나무에 바람 부니 긴긴 밤 밝은 하늘 무슨 하릴 있을 건가.”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계의 깨달은 이에게는 불성계주가 곧 마음이요, 이슬과 구름 안개가 옷이 된다(佛性戒珠心地印 霧露雲霞體上衣). 〈증도가〉에 나타나는 사상 중 가장 눈길을 끌었고 훗날 선객들에게 애송되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돈오’에 있다. 다음의 글을 눈여겨 보자.
오르다 오르다 힘빠지면 화살은 떨어지나니다
음 생에는 내 뜻 같지 않음만 불러오네
하염없는 이 실상문에서 여래의 경지로
단박 들어감과 어찌 같으리.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일초직입여래지’는 선문의 관용구처럼 쓰이게 되는데 돈오적 사상이 얼마나 크게 확대되었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오늘날도 출재가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베풂을 즐겨한다. 남에게 어떤 물건이나 즐거움 등을 베풀고 천상에 태어나 복의 극치를 누리기를 바란다.
이를 영가는 화살에 비유하고 있다. 아무리 힘센 화살도 그 힘이 다하면 꺾여져 땅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주상보시든 무주상보시든 베풂의 단계는 화살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베풂의 즐거움과 복덕이 작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즐겁고 그 복덕이 기대 이상이라 할지라도 깨달음을 이루는 것에 비교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일초직입여래지’로서 돈오를 주장하는 입장은 영가에게 있어서 ‘무생(無生)’과 연결된다. 즉 ‘몰록 깨쳐 남이 없음을 요달하고(頓悟了無生)’부터는 모든 영욕에 기뻐하거나 근심하는 법이 없다. 창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독약을 마셔도 한가롭고 한가로운 자태다.
이처럼 영가에게 있어서 돈오는 증오인 동시에 무생이다. 처음에 영가는 천태지관을 닦았다. 주지하다시피 천태의 지관이란 선에서 말하는 돈오적 방법과는 큰 차이가 있는 수행법이다. 또한 당시 상황이 혜능의 돈오선과 신수의 점수선이 크게 대립하고 있는 터에 영가가 천태의 지관을 닦아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면서도 그것을 버리고 혜능을 찾아가 돈오의 인가를 받았다는 것은 선종사의 한 흐름의 변화를 가져온 대목이다. 〈증도가〉 끝에 나오는 다음의 시는 이러한 영가의 사상과 정신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여준다.
차가운 햇빛이여, 달빛 쨍쨍 무더위여
악마의 무리도 이 말만은 못 꺾나니
코끼리 등에 높이 앉아 여유롭게 가나니
버마재비 저따위가 어찌 길을 막겠는가
코끼리는 토끼 다니는 샛길을 가지 않고
큰 깨달음은 작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네
그대 그 비좁은 소견으로 함부로 비난하지 말지니
깨닫지 못한 그대 위하여 내 이제껏 지껄였네.
깨달음을 얻게 되면 모든 것은 순리에 따른다. 결코 형식이나 절차에 구애받지 않는다. 물이 흐르듯 여유롭고 거침없으며 막힘 없는 경계, 그것이 깨달은 이의 모습이다. 코끼리가 토끼 다니는 샛길을 가지 않듯 큰 깨달음은 작은 절개 또는 형식에 구속되지 않는다. 돈오적 닦음과 깨달음의 대미를 장식하는 말이다. 한 생각만 뛰어넘으면 그대로 들어가는 돈오적 방법, 깨달음의 노래 〈증도가〉는 마지막으로 ‘깨닫지 못한 이들의 깨달음을 당부’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영가 선사가 오도 후 학인 제접과 교화에 매진한 기간은 8년으로 너무 짧아 큰 아쉬움을 던져준다. 그러나 〈증도가〉는 불후에 빛나는 명언집으로 선가에 널리 애송되었다. 조선시대 함허득통은 《영가집》 서설에서 ‘멀리 가고 높이 초월함을 스님께 배웠으니 가고 오는 모든 행동에도 반드시 규범이 있다.’고 적고 있고, 얼마 전 ‘살아있는 부처’로 세간의 존경을 받았던 성철 선사도 “이 글을 읽고 캄캄한 밤중에 횃불을 만난 것 같았다.”며 〈증도가〉를 《신심명》과 함께 생활의 등대로 여기고 있음을 밝힌 것을 보면 한국선에 미친 〈증도가〉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의 오도송은 〈증도가〉와 마찬가지의 돈오적 방법과 동일한 이미지의 표현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3. 특징별 분류 및 감상
1) 돈오적 입장
선시는 문학 일반의 정서와 상상을 거스른다. 상식을 파괴하고 논리를 초월한다.
문학적 안목으로 오도송을 이해하기란 그래서 쉽지 않다. 분명한 건 깨침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장전돼 있다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도송은 선시일여(禪詩一如)를 그대로 투영한다.
지극히 압축된 언어와 비약적이고 비유적이며 고도로 상징화된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선시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오도적 체험, 법열적 경지는 분명히 직관적 돈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특징을 보이고 있다. 향엄지한(香嚴智閑:?∼898)의 오도송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한 번의 딱소리에 알려던 것 다 잊으니
수행의 힘 빌릴 일이 아니었도다
안색 움직여서도 고도를 선양하여
끝내 실의에는 아니 떨어지나니
가는 곳 어디에건 자취는 없어
성색의 그밖에서 이뤄지는 행위로다
그러기에 온갖 곳 도인들 나타나서
모두 다 이르데나 최상의 근기라고.
一擊忘所知 更不假修冶
動容揚古路 不墮?然機
處處無?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일격(一擊)’은 돌멩이가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말한다. 향엄은 그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그래서 시제(詩題)가 ‘대에 부딪치는 소리’다. ‘딱’하는 소리는 향엄의 분별심이 끊어지는 순간이다.6) 분별이 끊어진 상황을 무심이라 한다면 무심이 되는 순간 즉, ‘딱’하는 순간에 진여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수행을 빌릴 일이 아니었다.”는 말로 이전의 분별없는 구도심을 탓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완성된 수행의 경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하게 시사해준다. 진여와 하나가 되는 깨달음은 대나무에 돌멩이가 부딪치는 ‘딱’하는 소리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듯 털끝만큼의 미진함마저 남지 않는 무심에 있다. 때문에 “끝내는 실의에 아니 떨어지나니”로 이를 대변한다.
그것은 또한 ‘최상의 근기’로 연결된다. 최상이란 ‘상대적 최고’의 뜻이 아니라 재주·지식·능력 등 모든 분별심을 여읜 진여의 상태를 말한다. 이같은 돈오의 입장에서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 또 다른 선사가 당나라때의 영운지근(靈雲志勤:?∼820?)이다. 그의오도송을 보자.
삼십 년이나 칼을 찾은 나그네여
몇 번이나 잎이 지고 가지가 돋아났던가
그러나 복사꽃 한 번 본 뒤론
지금에 이르도록 다시 의혹 않나니.
향엄지한이 대나무에 돌멩이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진여의 세계에 들어갔다면 영운지근은 복사꽃을 보고 일격에 깨달음을 얻었다. 복사꽃에서 무심을 본 것이다. 30년 구도의 허송세월을 영운은 《여씨춘추》의 고사에서 인용하고 있다.
어느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 검을 강물에 빠뜨리고는 손칼로 뱃전을 파서 훗날 이를 근거로 칼을 찾으려 했다는 몽매함이 자신의 구도과정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절망감에서 몸을 빼 문득 눈을 들어 본 것이 복사꽃이다. 한 번 봄(一見)으로써 다시 의혹의 덩어리가 남지 않는 개안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복사꽃이란 무슨 특별한 복사꽃이 아니다. 영운도 무수히 봐왔을 평범한 복사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복사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니 그 내용은 무엇인가. 그는 분별심이 없는, 의심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은 경계일 터이다. 영운이 본 복사꽃은 다른 꽃과 나무와 하늘 등 온갖 현상이 하나인, 구별이 끊어진 복사꽃이었고 보는 주체와 대상도, 또 시간과 공간마저 뛰어넘은 본래면목을 보여주는 ‘깨침의 순간’으로 바로 진여 실상 그 자체였다. 영운은 향엄과 마찬가지로 ‘일견’ ‘일격’으로 미진함이 터럭도 남지 않는 돈오의 세계를 열었다.
아예 타자에게 구하지 말지니
멀고 멀어 나하고 떨어지리라
나는 이제 홀로 가면서 어디서건 그와 만나나니
그는 이제 바로 나여도 나는 이제 그가 아니로다
응당 이러히 깨달아야 바야흐로 진여와 하나 되리라.
조동종을 창시한 동산양개(洞山良价:807∼869)의 오도송이다. 먼저 그의 깨달음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배경부터 살펴보자. 동산은 일찍이 ‘무안이비설신의’라는 구절에 큰 의심을 냈다. 또한 효성이 지극했던 그로선 무정설법(無情說法)에 관한 참구를 계속하던 중 위산영우의 소개로 운암 선사를 만나게 된다.
동산은 스승에게 물었다. “스님이 돌아가신 후 어떤 사람이 스님의 초상화를 그려보라 요구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운암 선사의 진면목을 물으면 무어라 답해야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다시 말해 도는 무엇이냐고 우회적으로 질문한 것이다. 이에 운암 선사가 말했다. “그 사람에게 말해주려무나. 오직 이것이 이것(這箇是)이라고.” ‘이것이 이것’이라니 동산은 결코 쉽지 않은 이 말을 듣고서 완전히 의심을 풀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말은 며칠을 두고 동산의 머리 속을 맴돌았다. 어느 날 그는 물을 건너다 문득 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대오했다. 스승의 말뜻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육근이 없다는 것에 의심이 걸려 참구하다가 마침내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무정설법의 경지를 크게 깨우친 것이다. 그리하여 지은 것이 이 시다. 물을 건너다 지었다 하여 ‘과수게(過水偈)’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것’이란 무엇인가. ‘아예 타자에게 구하지 말지니 멀고 멀어 나하고 떨어지리라’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그가 제자들을 교화할 때 언급한 만리무촌초(萬里無寸草)와 직결된다. 동산이 만 리를 가도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라고 제자들에게 법문했다고 하자 석상경제(石霜慶諸:805∼881) 선사가 ‘문만 나서면 바로 풀’이라 했고 이에 동산이 그를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
‘만리무촌초’는 사량분별이 완전히 끊어진 진공무상(眞空無相)의 경계로 나를 의식해 분별하면 진여와 나는 별개의 것이 되지만 내가 분별을 끊어 버릴 때에는 나 자신이 진여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여와 하나인 내가 곧 나의 본래면목이다. 본래면목을 찾았기 때문에 ‘그는 나여도 나는 그가 아니다’라는 종교적 체험의 소식을 전할 수 있다.
분별을 뛰어넘은 그 경계가 ‘이것이 이것’이며 진여의 세계인 것이다. 영운, 향엄, 동산은 이처럼 돈오의 확고한 입장에 서 있다. 다른 선사들의 오도송을 살펴봐도 돈오를 취하고 있는 자세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그런데 특기할 점은 그들의 돈오적 선시가 대부분 자연물과의 합일과 동일한 이미지 구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깨달음이 모방되거나 복사된 것은 아니다.
2) 자연과의 합일
자연은 시인의 심상(心象)과 연결된다. 역대 선사들의 선시에서 보여지는 불교적 심상들은 그것이 얼마나 맑고 깊고 대담하며 높은 정신적 경지인지를 보여준다. 이들의 정신세계 자체는 논리적 설명을 초극해 있기 때문에 그 심상 자체가 발하는 빛은 직관적으로 감지해야 한다.
가령 마조도일 선사가 제자 대매(大梅) 선사의 경지를 시험한 이후 대중들에게 ‘매실이 아주 잘 익었다’는 말로 그를 인가한 것은 선종 특유의 표현법에 해당한다. 선사들의 오도송 역시 자연을 통해 깨친 이의 심상을 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연과 합일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학림옥로(鶴林玉露)》에 기재된 무명의 어떤 비구니의 오도송을 보면 그것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맸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닳도록 산 위의 구름만 밟고 다녔네
뜰앞에 돌아와 웃음짓고 매화향기 맡으니
봄은 매화가지에 이미 무르익어 있던 것을.
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遍쾱頭雲
歸來笑拈梅花臭 春在枝頭已十分
당대(唐代)에 살았던 이름모를 비구니의 오도송으로만 전해지고 있는 이 시의 내용은 깨달음을 찾아 헤매다 결국 매화향기를 맡는 순간 깨달음이 와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내용이 영운지근 선사의 오도송과 너무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오도송은 연연한 시정이 읽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자연의 정취와 시인의 심상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내가 깨달았는지 자연이 깨달았는지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깨달음이 자연 속에 잘 농익어 있다. 특히 봄(깨달음)이 와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이십분(已十分)’은 절묘하다. 이 오도송은 유엔평화센터 건립 조인식이 있던 지난해 4월 말 중국 길림성 행사장에서 세계 각국의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성신여대 최민자 교수가 낭독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산자락 한마지기 노는 밭이여
두 손을 모으고 어르신께 묻나이다
몇 번이나 되팔았다 다시 사곤 했는지요
솔바람 댓잎소리 못내 그리워.
임제종 문하 양기파의 3대 법손 오조법연(五祖法演:?∼1104)의 오도송이다. 그의 깨달음 역시 ‘댓잎’에 연결된다. 여기에서 ‘노는 밭(閑田)’은 우리의 본성을 의미한다. 우리는 온갖 현상과 환상에 취해 본성을 저버리기 일쑤다. ‘몇 번이나 되팔았다 사곤’하는 행위가 우리 범부들의 일상 행위다.
법연 역시 의단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언어나 개념으로 풀거나 파악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이 시를 통해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솔바람 댓잎 소리’는 바로 우리 일상의 자연이고 생활이지만 늘 우리가 그리워하고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본성이자 본성을 바로 깨쳐 아는 깨달음의 세계다.
향엄이 돌이 대에 부딪치는 소리로 깨달음을 선언했듯 법연은 솔바람이 댓잎을 건드리는 것으로 오입(悟入)의 경지를 설파하고 있다. 이처럼 선사들은 깨침의 순간을 맞는 데 있어서 영운의 ‘복사꽃’, 향엄의 ‘대나무’, 동산의 ‘물속의 그림자’, 그리고 앞의 비구니의 ‘매화’ 등 자연물과 합일된다. 마치 조주 선사가 ‘뜰 앞의 잣나무’로 심법을 전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3) 이미지의 사용기법
시인은 전달하고 싶은 관념이나 메시지, 실제 경험 또는 상상적 체험들을 미학적으로 그리고 호소력 있는 형태로 형상화시킬 수단을 찾는다. 그 수단이 이미지다.7) 시의 이미지는 시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앞의 글 ‘들어가는 말’에서도 언급했듯 이미지의 정의 속에서 암시했지만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해석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장치다.
영운지근의 오도송에서의 ‘칼’은 자성(깨달음)이다. 분별심을 일시에 단도해버리고 자성의 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무명의 비구니가 쓴 오도송의 ‘봄’ 역시 수행자가 누구나 갈구하고 성취하고 싶어 하는 ‘깨달음’의 상징적 표현이다. 오조법연의 오도송에 나오는 ‘솔바람 댓잎 소리’ 역시 의단을 타파하고 자성의 본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작자의 이미지어(語)다. 천동정각(天童正覺:1091∼1157) 선사의 오도송에서도 이미지의 사용은 매우 정교하게 나타난다.
그는 깨침을 얻은 자신을 일종의 ‘강태공’으로 등장시키는 대신 무명에 가리워 법연을 마다하는 중생을 ‘추위에 놀란 고기 미끼도 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미지의 사용은 곧 비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묘사적 양식으로만 이미지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떠한 비교에 의해서 관념들을 진술하고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 비교가 소위 비유적 언어, 즉 비유다. 본래 선시가 난해해진 배경은 선사상의 발전과 무관치 않다.
달마와 혜가 사이에 있었던 선문답은 ‘안심(安心)’에 있었고 나아가 홍인과 혜능에 이르러 본래면목을 탐구하고 그것을 비유하고 상징화했는가 하면 역설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혜능으로부터 견성이 중요시되었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마음을 ‘일물(一物)’로 비유하다가 마조 선사에 이르러 다시 즉심즉불로 표현하였고 비심비불로 부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종의 부정정신은 임제에 이르러 살불살조란 부정의 미학을 낳기도 했다. 이후부터 불성과 심지, 혹은 본래면목을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8) 오도송은 이러한 이미지와 비유의 사용으로 관념시가 되거나 때로는 서정시가 되기도 하고 혹은 깊은 선지를 담고 있는 선리시가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오도송은 임종게와 다른 뚜렷한 특색을 지니게 된다.
대부분의 임종게는 적멸을 앞둔 상황에서 치장되거나 화려한 언사를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오도송의 그것처럼 비유와 이미지를 도입해 사용하는 일이 거의 드물다. 열반 자체가 깨달음을 회향하며 자성의 본향인 적정의 세계로 돌아가는 회귀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도송은 직관적 선수행을 통해 ‘일초직입’의 진여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문이기 때문에 그 희열과 소회가 남다를 것이고 이를 자연을 빌어 이미지화하고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전하게 된다.
4) 육화된 경지의 구축
동산양개가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향엄지한이 돌멩이가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一擊), 영운지근이 복사꽃을 보고(一見), 모녀니(某女尼)가 매화향기를 맡고(一臭) 깨달음을 구한 것처럼 이 같은 소식은 이밖에도 수없이 열거된다. 그러나 이들의 깨달음은 일격, 일견, 일취로 어느 순간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피나는 정진과 처절한 수행의 몸부림이 일구어낸 육화의 체험이다.
이 가운데 ‘과수게’로 일컬어지는 동산의 오도송을 분석해보면 그의 시는 육화의 체험이 절정을 이루어 빚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몸으로써 구도의 개체를, 그림자로써 ‘자성’을 비유하여 참선인의 깨달음은 바깥에서 구할 필요가 없으며 ‘자성’은 본래 구족하여 생각과 헤아림으로써 얻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육화의 절정으로 빚어진 시는 혼성(渾成)으로서 새기거나 쪼갠 흔적이 없다.
“인간의 기교가 극에 이르러 천연의 오묘함이 드러나고, 길은 끊어지고 바람과 구름만이 통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천취(天趣)가 넘쳐 흐름을 느끼게 할 뿐이다.9) 육화의 경지는 나무랄 데 없는 선기로 나타난다. 당대의 보화(普化) 선사가 쓴 오도송도 그 중의하나다.
밝음에서 오면 밝음으로 치고
어둠에서 오면 어둠으로 치고
사방팔면에서 오면 회오리바람 일으켜 치고
허공에서 오면 도리깨로 치고.
明頭來明頭打 暗頭來暗頭打
四方八面來旋風打 虛空來連架打
보화의 날카로운 선기만큼 도리깨로 한방 맞는 기분을 이 시는 안겨준다. 사방팔면에서 혹은 허공에서 오는 것도 가차없이 친다. 보화의 깨침은 미진함이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 어떤 것이 최고의 진리라 해도 ‘가졌다’ ‘얻었다’는 의식이 남아 있는 한, 그 모두를 치는 것이 선수행자가 얻고자 하는 세계다.
보화 자신이 어느 하나에도 의지함 없는 불의일물(不依一物)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두법융(牛頭法融:594∼657)의 오도송 〈흡흡게(恰恰偈)〉에 나오는 ‘적절히 마음을 쓰려 할 때는/ 적절히 무심을 쓰라(중략) 무심을 적절히 쓰면/ 항상 쓴 대로 적절히 무 되리.’란 구절도 체험의 밑바탕 없이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무심법문’이다. 무심은 사심(死心)과는 엄연히 다르다. 진정한 무심이란 분별하되 분별한다는 의식 없이 하며, 그 분별한 내용에 구애받거나 끌려다님이 없는 마음이다.
나아가 무심 자체까지도 까마득히 넘어서는 무심이다. 이러한 무심이기 때문에 ‘적절히 쓰면 쓴 대로 적절히 무가 되는’, 질량의 법칙에 전혀 적용되지 않는 마음법이다. 이러한 경지는 육화의 절차 없이 맛볼 수 없고 이룩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은 이들의 선풍은 진작됐고 그들을 흠모하는 수많은 수선납자들에 의해 육화의 대열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4. 맺는 말
오도송은 선시의 백미다.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선시가 지향하고 있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깨달음을 전하고 있으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서정적 혹은 서사적 시 형태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때로는 논리와 상식을 초극하기도 하지만 정교한 철학적 사유를 동반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의 오도송을 감상하는 데는 적지 않은 당혹감과 난해함이, 그리고 깊은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기도 한다. 때문에 이러한 정서를 짙게 깔고 있는 선사들의 오도송에 대한 연구는 학자들도 그리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선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연구는 있었어도 오도송만을 놓고 그것에 대한 연구 평가를 공개적으로 하기란 왠지 께름칙해왔던 것이다.
불립문자와 언어도단이란 선종의 가풍에서 ‘불락언전’의 시를 내놓은 것인데 이를 언어로 다시 세우고 문자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괜한 시비의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졸고 역시 이런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오도송의 외형만을 표피적으로 접근해봤을 뿐이다.
그런 결과 유추해낼 수 있었던 것이 대부분의 오도송은 직관적 돈오에 입각한 ‘깨달음’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 그 깨달음은 자연(진여의 세계)과의 합일로 돌아가며, 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이미지와 비유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아가 오도송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무색하리만큼, 어떠한 뛰어난 시인들이라 하더라도 빚어낼 수 없는 육화의 경지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하게 됐다. 문학 일반의 정서와 상상을 거스르면서도 선시가 영원히 불멸할 각광받는 문학장르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일 터이다.<끝>
김종만
대전대학교 국문과 졸업.
불교신문 취재편집차장을 거쳐 법보신문 편집부장을 역임했다.현재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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