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우는 원님
옛날에 한 선비가 대과에 급제는 하지 못하였지만 벼슬길에 올라 몇해만에 겨우 현감 자리에 승진이 되어 관속을 거느리고 부임길에 올랐다. 이 현감은 장안에서 대가집에서 태어나 아까운 소년 시절과 젊은 청춘을 오직 글과 싸우다가 꽃놀이 단풍놀이 한번 하지 못하고 벽지의 현감으로 오게 된 것을 무척 서글프게 생각하여 부임길 승교만 재촉하여 왔건만 사면팔방을 둘러보아도 높은 산과 거친 들판뿐이라 더구나 이제 함안은 몇 십리 안 남았다는데 가도 가도 첩첩산중이요 첩첩산중을 헤치고 지나가면 또 험악한 산중이라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곳에 전답은 어느 구석에 있으며 객사는 또한 어떠할 것이며 동헌과 육방관속은 어떠하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나오는 것이 한숨이요. 탄식뿐이었다. 제 아무리 대장부로 자처하고 왕명을 받은 몸임을 생각하지만 눈물이 아니 날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부임지에 도착한 현감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충후한 성품과 부지런히 평화롭게 살아가는 백성들, 높은 산,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탁 트인 넓은 들, 그 땅에서 가을이면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함포고복(含哺鼓腹) 할 수 있으니......
사흘을 굶으면 도적질 않는 사람이 없다던가, 이러한 풍요로운 고을의 주인으로서 정사(政事)도 순조롭고 매사가 뜻대로 되어가니 울며왔던 천리길도 잊은 채 오직 보람만 느낄 뿐이다.
또한 명승지가 많은 고을이라 봄이면 꽃속에서 묻혀 지내며 춘색을 노래하고 여름이면 남강에 발을 담가 더위를 씻으면서 여항산에 걸린 흰 구름을 바라보며 학 같은 마음으로 시름을 잊고 가을이면 이수정 연못에 낚시를 드리우고 명경지수(明鏡之水)같은 마음으로 인생을 관조(觀照)하고, 비봉산 단풍잎이 동헌 뜰에 나부낄 때 국화주 한 잔 술로 풍년을 기뻐하며 육방관속과 정사를 논하였다.
세월은 유수같이 임기가 완료되어 타지로 떠나게 되었으니 엊그제 온 것 같은 이 고을, 따스한 인정이 넘쳐흐르는 이 고장을, 풍요로운 정든 고장을 떠나게 되었으니 어디가면 이같은 고을을 다시 찾을 수 있으랴. 백면서생으로 돌아가 이 고을 백성으로 늙어 정든 산천에 묻혔으면 싶으리만큼 떠나는 발길이 무거워, 뒤돌아보니 엎드려 배웅하는 백성들의 몸짓에 아쉬운 인정이 스며있어 철판같은 장부의 심금을 울리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 옷깃을 적신다. 이리하여 「울고 왔다가 울고 가는 함안원님」이란 말이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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