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조실(祖室) 무산스님

難勝 2011. 8. 18. 19:31

 

 

 

조실(祖室)

 

"가만 놔둬라. 제 안의 불도 못 끄는 것들이 무슨 절간 불을 끈다고 난리고."

어느 봄날 강원도 양양의 천년사찰 낙산사가 산불에 휩쓸리고 너도나도 불길을 잡겠다고 허둥대자 회주였던 무산(霧山) 스님이 '마음의 불'부터 끄라고 일갈했다.

 

이틀 전부터 인근 솔숲을 삼키고 있던 화마를 막으려고 신도들까지 소화기를 들고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누구보다 애가 닳았을 무산 스님은 연기에 갇힌 부처님으로부터 '네 마음의 불길을 먼저 잡으라'는 꾸지람을 들었던 걸까.

 

▶'설악'이라는 필명을 쓰는 시인이자, 신흥사·백담사·낙산사 세 사찰을 아우르는 회주 무산 스님이 엊그제 신흥사 조실(祖室)에 추대됐다.

속세 계급처럼 따져본다면, 절의 행정책임자 주지보다 높은 어른 자리가 회주(會主)이고, 절 문중의 고승 중에 경륜 높은 선사이면서 최고 스승으로 받들어지는 자리가 조실이다. 강원도에선 월정사와 신흥사가 큰 절인데, 두 곳 다 조실 자리가 오래 비어 있었다.

 

▶해인사나 통도사처럼 선원·강원·율원·염불원까지 두루 갖춘 일종의 종합대학을 총림(叢林)이라 한다.

그곳 총장 겸 이사장 격인 어른 스님이 방장(方丈)이다.

 

우리나라엔 5대 총림이 있고 방장도 다섯 분이다. 총림의 규모를 못 갖춘 사찰에선 조실이 그와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조실은 종헌·종법상 위계를 따질 자리도 아니지만, 그래서 더 명예스럽고 존경받는 종신직이다.

 

▶요즘 '남 진제 북 송담'이라는 말은 한국 불교의 선지식을 대표하는 대구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과 인천 용화선원 선원장 송담 스님을 일컫는다.

수행력(修行歷)의 위상과 권위를 인정받는 고승들이다.

 

송담 스님은 조실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내 스승 전강 스님을 영원한 조실로 모시겠다"며 사양하고 있다. 서른셋에 통도사 보광선원의 조실이 됐던 전강 스님은 생전에 "남의 등불 부러워 말고 내 안의 등불을 켜라"고 가르쳤다던가.

 

▶화계사 숭산 스님, 쌍계사 고산 스님도 '조실' 하면 떠오르는 분들이다.

그러나 앞으로 조실 자리에 모실 만한 스님은 많지 않다.

 

속명을 따서 오현 스님이라고도 불리는 무산 스님에 대해선 "마땅히 모실 수 있는 분" "겸양 끝에 수락하신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도 나온다.

 

비단 산중(山中) 조실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공부와 연륜을 쌓은 '조실'들이 어른의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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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조실(祖室)로 추대된 무산스님

 

“느닷없이 당한 일이라. 미리 알았으면 안 갔을낀데…. 하안거 해제 법회에 갔다가 여러 사람이 갑자기 조실 추대한다고 해서 당황했어요. 중은 벼슬 자랑, 이력서 자랑 하는 기 아닌데….”

 

‘설악산 큰스님’으로 잘 알려진 설악(雪嶽) 무산(霧山·79) 스님이 지난 13일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설악산 신흥사에서 열린 하안거 해제 법회에서 신흥사 조실(祖室)로 공식 추대됐다. 이날 신흥사·백담사 선원에서 하안거(음력 4월 보름부터 석달간 수행승들이 바깥 출입을 삼가고 참선하는 집중수행 기간) 수행 정진한 스님 200여명이 스님을 조실로 모시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무산 스님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무산 스님은 법호(法號)가 설악, 법명(法名)이 무산, 속명(俗名)은 조오현(曺五鉉)으로, 흔히 친근하게 ‘오현 스님’이라 부르는 이가 많다.

 

사찰에서 ‘주지’가 법회를 포함해 일상적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직분이라면, ‘조실’은 선승(禪僧)들의 수행을 지도하는 최고의 정신적 스승을 이르는 말이다. 무산 스님 조실 추대가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 불교계에서 차지하는 뚜렷한 위치에도 스스로 “낙승(落僧·떨어진 중)”, 즉 ‘자격 없는 스님’을 자처하며 조실 추대를 극구 사양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언행에서도 거침없는 파격도 서슴지 않는다. 2007년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스님은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부처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도 다 내다 버려야 할 놈이 이 나이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상(賞) 받고 신문에 나니, 몸에 털 나고 머리에 뿔 돋은 짐승이 된 듯한 ‘피모대각(披毛戴角)’의 느낌”이라며 “산에서 중노릇이면 됐지 다 부끄럽고 필요없는 짓거리”라고도 했었다.

 

하지만 불교계에서는 그의 조실 추대에 대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한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7세 때인 1939년 출가, 밀양 성천사에서 사미계를,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받은 무산 스님은 젊은 시절부터 설악산에 몸담아온 설악산의 터줏대감이다. 신흥사 주지·회주 등을 역임하며 신라 헌덕왕 때 도의(道義)국사가 창건해 한국 선종(禪宗)을 연 강원도 양양 진전사(陳田寺)를 복원했으며 선원이 없던 신흥사, 백담사에 각각 각각 향성선원, 무금선원을 열고 지원해왔다.

 

각종 기행(奇行)과 ‘걸레스님’이란 별칭으로 잘 알려졌던 중광 스님이 말년에 백담사에 머물도록 주선해 준 것도 무산 스님이었다. ‘심우도’ ‘절간 이야기’ 등 작품집을 펴낸 시조시인이기도 한 그는 승가와 문단의 스승인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이끌며 만해의 생애와 사상을 널리 알리는 데에도 힘쓰는 등 불교계 안팎으로 두루 신망이 높다.

 

이번 조실 추대도 인각(조계종 기본선원 운영위원장) 지환(조계종 기본선원장) 신룡(전 무금선원장) 스님 등 중진 선승들이 앞장섰다는 후문이다. 무산 스님은 15일 본지와 통화에서 “조실 된다고 달라지는 거 하나도 없어요. 밥 먹고 자고 일어날 뿐, 하나도 없어요”라며 말을 아꼈다.

 

무산 스님은 이날 추대식 뒤 참석자 200여명을 향해 “여러분도 모두 정진해서 각자의 마음 밭 조실이 되라”며 “지금 남쪽에만 수해가 나서 어려움 겪는 이가 많으니 만행(卍行·안거 후 선승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일)때 그 발걸음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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