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내 지역은 구석기~초기 철기시대의 유적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고분 등 많은 유적, 유물이 발견되어 수만년 전부터 인류가 생활하였던 유서 깊은 역사의 고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둔내면이라는 지명은 둔창(屯倉)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둔창이란 둔전(屯田)에서 수확되는 곡식을 저장하는 곳으로 둔내면 둔방내리에 둔 창이 있었다. 언제 설치되었는지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둔전(屯田)은 고려 후기에 설치되어 조선시대에 성행하였으므로 둔방내리의 둔전도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둔내면 둔방내리 둔창에서는 주민에게 매년 양곡 300섬 씩을 대여하 였데 그 규모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둔창이 있는 곳이라 하여 둔창내(屯倉內)라 부르다가 발음상의 편리를 위 해 창(倉)자를 빼고 둔내(屯內)라 부르게 된 것이 그대로 굳어져 면명을 둔내면이 라 칭하게 되었다. |
- 1906년 법률 제20호 발표에 의거 행정 명칭을 『둔내면』이라 칭함
- 1910년 정식 면장 임명, 면사무소를 현천리에 둠
- 1912년 둔내면을 11개리로 둠(종전 군곡리가 없어지고 두원리가 신설됨)
- 1917년 - 1927년 면사무소를 자포리에 둠
- 1958년 11개리 124개반으로 편성
- 1973년 11개리에서 13개리로 증가 (영랑리 일부를 안흥면에 편입, 안흥면 궁종리와 갑천면 신대리 일부 를 둔내면에 편입)
- 1979년 태기리를 삽교3리에 편입(법정리는 종전대로 존재)
- 2001년 현재 둔내면은 행정25개리, 법정13개리 102개반으로 편성되어 있음 |
둔내면은 횡성군 동부 산간지대에 위치한 면으로 북위 37°30′30′, 동경128°12′33′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북쪽으로 평창군,서쪽으로는 갑천면,남쪽으로는 안흥면, 북쪽으로는 홍천군 내면과 접하고 있다. 동서남북으로 태기산(1,261m),청태산(1,200m),수리봉(896m),덕고산(705m) 등 많은 산들이 위치해 있다. 주천강은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대체로 둔내의 중앙부를 흐르며 그 좌우에 크고작은 들판을 형성, 옥토를 이루어 둔내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기후는 기온차가 심한 대륙성기후이고, 지형적인 영향으로 강수량이 다른 곳보다 비교적 많으며, 평균기온이 낮아 식물생육기간이 짧은 고랭지기후를 나타내어 고랭지 채소 및 양채류와 화훼 재배에 적합하다. |
ㅇ 행정구역 : 법정리 13개리, 행정리 25개, 자연부락 102개반
ㅇ 총면적 : 128,063 ㎢ (횡성군의 12.8%) ㅇ 전 : 21.446 ㎢
ㅇ 답 : 7.465 ㎢
ㅇ 가구수 : 2,170세대
ㅇ 인구수 : 5,403명 (남 2,821명, 여 2,85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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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천리 玄川里 |
일명 '가무내'라고도함.비가 자주오지않으면 강물이 잘마른다는 뜻 현천리의 유래는 강의 모양이 검을 현(玄)자모양으로 여러 굽이로 꺾어 흐른다는 이유로 붙여짐. 윗가무내,아랫가무내 등이 있음 |
둔방내리屯坊內里 |
이 지역 안에 있던 둔창(屯倉)에서 유래. 안창말,너믄골,샘골,절터로 이루어짐 |
영랑리 永浪里 |
한때 영호리라고 불림. 이마을 앞을 흐르는 주천강이 길고 맑게 흐른다고 하여 영호리가 같은 의미인 영랑리로 부르게 됨. 가래골,중산,점말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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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리 鳥項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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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상으로 새의 모습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 양지말,바일,동박골 등의 부락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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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용리 右用里 |
지형이 우렁이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우렁이가 우용리로 변함. 당중산,문탄,숲새터,광탄 등이 있음 |
두원리 斗元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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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태(斗太)가 잘 되어 두원리라 하였다는 설이 있음. 미악골,산막골,곧은골,옹장골,구석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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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리 自浦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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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자포곡리(自浦谷里). 개울물이 많아 상선이 많이 드나들어 배가 닿는 포구가 있어 자포곡이라 했던 것으로 보여짐. 알가지,바람부리,산제당,시장터,옹장골,자래골 등의 부락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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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리 石門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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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는 깎아지른 듯한 돌이 있는데 그 형상이 돌문과 같다 하여 유래된 이름. 꽃버루,판관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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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리 橋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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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의 유래는 전해지는 것은 없고, 18세기 중반 삽교 안석경이 은거하면서부터 불러진 것으로 알고 있다. 매당덕,바디장골,옻밭골,대바위골,골말,선바위,골말,국적동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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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암리 馬岩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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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마여미리(馬余味里)라고 부름. 마을앞산 중턱에 말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여기서 유래됨. 화랑골, 솔경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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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동리 禾洞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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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왕이 피난을 와서 식량이 부족했는데 화동 골짜기에서 볍씨가 나와 농사를 짓게 된 것이 유래. 또는 괴화나무가 있어서 괴화골이라 했다가 고야골,화동이 되었다고 함. 방가곡,정문거리,무사골,버덩마을, 고시곡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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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종리 弓宗里 |
이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활같이 생긴 꼬불꼬불하게 생긴곳을 지나간다는 이유와 태기왕이 군사들을 훈련하던 활터로 사용한데서 연유됨 | |
225-832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장터길 19(자포곡리 402번지) ☎ 340-26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