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설명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의 탑비이다.
지광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 법천사에서 입적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현묘탑과 함께 세운 것이다. 고려 선종 2년(1085)에 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비문에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귀부) 위에 몸돌(탑신)을 세우고 머릿돌(이수)을 올린 모습으로, 용의 얼굴을 한 거북은 목을 세우고 앞을 보고 있다. 몸돌의 양쪽에는 두 마리의 용을 화려하고 정교하게 음각하였고, 네 귀퉁이가 들려진 머릿돌에는 귀꽃을 달았다.
“지광국사”
지광국사는 984년에 출생하여 법천사 관웅과 준광 밑에서 수도하였다. 1010년 법천사로 돌아가는 길에 진조를 만나 역산법을 배웠고, 현종 5년이던 1014년에 대사가 되었다. 1021년 개경 중흥사에서 설법하였는데, 논리·문장력·음운학의 실력이 뛰어났다. 1021∼1030년 사이에 중대사가 되었고, 덕종 연간(1031∼1034)에 삼중대사 수좌가 되어 묘법연화경을 강의하였으며 왕으로부터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 정종 11년이던 1045년에 승통이 되었고, 문종이 즉위하자 궁궐로 초빙되어 불법을 강의하였다. 1054년에는 법상종의 총본산이었던 현화사로 옮겨 보수공사를 지휘하였으며 경전도 판각하였다. 1056년 왕사가 된 이듬해에는 국사가 되었고, 1059년 백고좌회의 제일설법주가 되었다. 1067년에 법천사로 돌아온 다음 얼마 안 있어 입적하자 명봉산 법천사 동쪽에서 다비하였는데, 문종이 깊이 애도하여 지광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상세설명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70)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현묘탑은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고려 선종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새로운 것이 특징이다. 비앞면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한 치밀함이 돋보여 형태와 조각이 잘 어울리는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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