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설명
고려시대 객사의 정문으로 강릉부의 객사로 쓰인 임영관과 그 부속건물로 이루어진 관청건물의 일부이다. ‘객사’란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마다 사신이나 관료들을 대접하고 묵게하는 숙소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했다. 전체 객사는 1929년 강릉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헐리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대문에 해당하는 객사문 뿐이다.
삼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주심포 방식의 배흘림기둥이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며, 세부건축재에서 보이는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조각은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후사를 빌기 위해 동해안 낙산사를 찾은 공민왕(재위 1351∼1374)이 열흘간 강릉에 머물면서 친필로 임영관 현판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 의식, 망궐례”
고려·조선시대 때 지방관리들이 임금이 있는 궁궐 쪽을 향해서 배례하는 의식으로 임금에 대한 충성과 공경을 나타냈다. 망궐례는 객사 안에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인데, 주로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객사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이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했다.
상세설명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다.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현재는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다. 남산의 오성정·금산의 월화정·경포의 방해정은 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다. 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앞면 3칸에는 커다란 널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형태이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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