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남원 대복사의 전설 - 대복과 오리정 구렁이

難勝 2011. 11. 16. 05:33

 

 

 

대복과 오리정 구렁이

 

<남원·대복사>

 

지금부터 약 1백50년 전. 춘향이와 이도령 이야기로 유명한 전라도 남원 고을에 대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힙이 세고 매우 용감하게 생긴 이 사람은 맹리 말을 타고 전주 관가에 공문서를 전달하는 일을 했다.

 

어느 날, 전주에 서류를 전하고 오는 길이었다. 하지 무렵이라 해가 한창 긴 때인데 그날따라 흐린 탓인지 여느 때보다 일찍 저물었다.

 

「주막에서 하룻밤 묵어갈까? 아냐, 부인이 기다를 텐데 어서 가야지.」

 

대복은 사위가 어두워지자 말 위에서 잠시 망설였으나 집에서 기다릴 아내를 생각하고는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했다는 오리정 고개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주위는 조용하여 말발굽 소리만 요란할 뿐인데 어디선가 대복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대복은 말의 속도를 줄이고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귀를 기울였다.

 

『대복아! 대복아!』

 

분명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틀림없었다. 발을 멈추고 소리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던 대복은 그만 『앗!』하고 질겁을 했다. 바로 어깨 너머에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큰 구렁이가 두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혀를 날름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처럼 담이 크고 용감한 대복이도 이번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점잖게 말했다.

 

『그래, 무슨 연유로 남의 바쁜 걸음을 지체케 했느냐?』

 

『나는 백년간이나 이 오리정 연못을 지켜온 「지킴」인데, 흉한 탈을 벗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다. 그래서 오늘밤 내 너를 잡아먹고 나는 사람으로 태어날 테니 너는 이 연못의 지킴이가 되어 줘야겠다.』

 

순간 대복은 허리에 찬 칼을 뽑아들었다. 그때였다. 허공에서 한 줄기 빛이 일더니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오리정 연못의 지킴이는 듣거라. 대복이는 본인의 심성도 착하지만 그 부인 불심이 남편을 위해 부처님께 간절이 기도하고 지성껏 시주하니 그 정성과 공덕을 보아 해치지 않도록 해라.』

 

평소 아내가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대복이었으나 그날은 자기도 모르게 합장배례하고는 관음보살님께 감사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관음보살은 간 곳이 없었다.

 

『그대는 부인의 공덕으로 오늘 목숨을 건지었소. 그러나 나는 구렁이 탈을 벗지 못해 한이 되니 집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부처님께 기도해 주실 부탁하오.』

 

구렁이는 이처럼 신신당부를 하고는 힘없이 연못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복은 「어휴, 이제 살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내 집에 가거든 네 부탁을 잊지 않고 열심히 기도할 것을 약속하마.』

 

대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 혹시 절에다 많은 시주를 한 일이 있소?』

 

『들어오시자마자 웬 시주 이야기세요?』

 

절에 가는 것을 마땅찮아 하던 남편이 시주 말을 꺼내자 부인은 내색을 꺼렸다.

 

『부인, 그렇게 곤란해 하지 않아도 되오.』

 

눈치를 챈 대복은 담뱃대에 불을 붙인 뒤 오리정에서 일어났던 아슬아슬한 사연을 아내에게 들려줬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내는 여러 차례 관세음보살을 뇌이면서 부처님께 감사했다.

 

『실은 당신께 꾸중들을까 염려해서 밝히지 않았으나 얼마 전 대곡사에 쌀 30석을 시주하고 삼칠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바로 어제 회향했어요.』

 

『당신의 그런 지극한 정성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오리정 연못의 지킴이가 되었을 것이오. 여보, 정말 고맙소.』

 

그날부터 대복은 착실한 불제자가 되었다.

 

『부인, 부처님 가피가 아니었다면 내 어찌 당신 곁에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겠소. 내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불사를 하고 싶은데 당신 뜻은 어떻소?』

 

『그야 물으시나마나지요. 적극 찬성이에요.』

 

『그럼 우리절 대곡사 법당이 굉장히 낡았던데, 우리집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법당을 중창하도록 합시다.』

 

대복이 내외는 그날로 대곡사 법당 중창불사를 시작, 법당을 새로 지었다.

 

낙성식 날이었다. 대복이는 많은 신도들과 축하객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자신이 법당을 새로 짓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피에 감탄을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남원부사가 말했다.

 

『듣고 보니 부처님의 가피가 진실로 하해와 같이 놀라울 뿐이오. 더욱이 그대 부인의 정성은 더욱 감동스러우며, 부처님이 계신 훌륭한 법당을 새로 지은 그 불심 또한 가상타 아니할 수 없소. 이러한 대복의 불심과 사연을 후세까지 기리기 위해 이 절 이름을 대곡사에서 대복사로 바꿔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주지 스님의 의향은 어떠하신지요?』

 

『소승도 부사님 생각과 꼭 같습니다. 대복이란 크게 복이 깃든다는 뜻이니 아주 훌륭한 이름입니다. 이왕이면 부사님께서 「대복사」현판을 오늘 써 주시지요.』

 

부사는 쾌히 그 자리에서 대복사란 현판 글씨를 썼다.

 

그 후 대복이는 오리정 지킴이가 사람으로 환생하길 기원하는 백일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마치는 날 밤이었다.

 

『고맙소. 그대 때문에 나는 남자로 태어났소. 당신이 더욱 선업을 쌓고 정진하여 꼭 극락왕생하길 나는 기원하겠소.』

 

꿈에서 깬 대복은 부처님께 감사의 절을 거듭거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