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동안거에 든 외국인 스님 - 참선은 깨끗한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일 뿐

難勝 2011. 11. 13. 21:21

 

 

화계사 동안거 수행 들어가는 미국인 관행 스님

“그저 깨끗한 마음 얻으려 참선할 뿐”

 

관행 스님이 동안거 결제 하루 전인 지난 9일 화계사 국제선원 선방에서 참선 자세를 취하고 있다.

30평 안팎의 선방에는 스님들이 자리할 좌복 몇 개와 예불 때 사용하는 운판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벽에는 문설주 위에 가로질러 걸려 있는 용상방(龍象榜:안거 때의 소임을 정하여 붙이는 방), 국제선원 설립자 숭산 스님이 쓴 ‘무일물(無一物)’과 ‘성성착(惺惺著)’이라는 휘호 2점만 걸려있을 뿐이다. 무일물은 ‘본래 아무것도 없다’이고 성성착은 ‘화두를 놓치지 말고 깨어있으라’는 뜻이다.

 

관행 스님은 미국 보스턴 출신이다. 1986년 미국 케임브리지 선센터에서 숭산 스님의 법문을 듣고 감화되어 1997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두 해 동안의 행자생활을 거친 뒤 1999년 비구계를 받아 한국 조계종에 승적을 올렸다. 관행 스님은 불가에 입문한 이후 매해 여름과 겨울 화계사와 무상사를 오가며 수행정진했다. 그의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What am I)’. 스승 숭산 스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화두를 잡으면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마음속에 진심(瞋心:성내는 마음)이 가득 차 걸핏하면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숭산 스님의 ‘방하착(放下着)’ 가르침을 되새기면서부터죠.”

 

관행 스님은 참선 수행을 통해 화뿐 아니라 스트레스, 분노 등 여러 가지의 인간 감정을 제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오랜 안거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느냐고 묻자 “깨달음의 진전이나 경지는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그는 “옛날 고승들이 얻었다는 깨달음은 원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깨달음이라는 특별한 인연이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참선을 통해 맑고 깨끗한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10일 전국의 수좌스님들이 동안거(冬安居)에 들었다. 동안거는 겨울철 3개월 동안 외부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정진하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전통이다. 조계종 총무원은 이번 안거에 조계종 스님 1만3000명 가운데 2200여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에는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 계룡산 무상사, 예산 향천사에 주석하는 외국인 스님 20여명이 포함돼 있다.

 

화계사 국제선원의 관행(觀行·55) 스님도 올해 동안거에 동참했다. 하안거를 합치면 벌써 27번째 안거이다. 지금까지 온종일 선방에서 지낸 시간만 계산해도 78개월이나 된다. 그는 이역 땅 선방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정진하고 있을까. 수년간 참선정진한 그는 무엇을 깨쳤을까.

 

동안거 결제 하루 전인 9일 관행 스님을 만나러 찾은 화계사의 대적광전 앞마당은 느티나무 낙엽으로 뒤덮였다. 관행 스님이 동료 외국인 스님 4명과 정진하게 될 국제선원 선방도 허허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국제선원의 유일한 한국인인 혜통 스님은 관행 스님 외에 홍콩, 폴란드, 프랑스, 리투아니아 스님이 안거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동안거 결제에 참여한 외국인 스님들은 한국 선방의 전통에 따라 하루 9시간가량 참선을 한다. 국제선원 동안거 시간표에는 새벽 4시30분~6시, 오전 9시~11시20분, 오후 1시30분~4시30분, 저녁 7시~9시 등 하루 네 차례 참선수행을 한다고 되어 있다. 외국인들이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좌선하며 화두를 참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듯했다. 그래서 “결제 때와 해제(안거 수행을 끝낸 평상시) 때의 차이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곧바로 “(선방을 가리키며) 방바닥은 노랗고 벽은 하얗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안거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게 없다는 설명이다.

 

조계종 최고 스님인 법전 종정은 동안거 결제에 앞서 지난 7일 “죽음 속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 결제를 하는 것”이라며 안거에 드는 수좌들에게 용맹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관행 스님은 “한국 선불교는 많은 방법을 아우르고 많은 수행법을 포용하는 통불교라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생각한다”며 “수행자의 근기에 맞게 정진하는 게 가장 좋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는 “숭산 스님은 선이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면서 “선은 안거 때만이 아닌 생활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식도 하고 100일 기도도 해봤다”면서 “그러나 가행(加行:힘써 수행함)과 느긋한 수행 가운데 무엇이 옳고 우월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숭산 스님과의 인연으로 불제자가 된 관행 스님은 숭산 스님의 유지를 계승 발전시키는 게 자신의 목표라고 말했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뭐냐고 묻자 “오직 모를 뿐”이라고만 답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기자에게 그는 “숭산 스님은 생전에 ‘오직 모를 때’에야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