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세요 그대 안의 상처받은 아이를
누구나 마음속엔 상처받은 아이가 있다, 피하지 말고 다독여라
내려놓고 깨어있을 때 고통에서 벗어난다
화해
사람은 저마다 내면에 고통받는 어린아이를 품고 있다. '상처'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상처가 고개를 들면 우린 그걸 꾹꾹 눌러 마음속 깊숙한 어딘가에 처박아 버린다. 재미도 없는데 TV를 켜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떤다. 술이나 담배, 약물에 의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틱낫한 스님은 "더 이상 피하지 말라. 당신 안의 아이에게 인사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라"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함께 울어주고, 보챌 때마다 곁에 앉아 함께 숨을 쉬라"는 것이다.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를 치유하는 그날, 우리는 자유를 되찾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들이 자유를 되찾도록 도울 수 있다."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 보르도의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를 중심으로 세계를 돌며 내면의 평화에 관해 말해왔다. 베스트셀러 '화(Anger·2002)'에서는 마음의 화(火)를 다스리는 방법을 이야기했고, '힘(Power·2003)'에서는 진정한 힘은 권력이나 돈이 아닌 내면의 평화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 안에 꼭꼭 숨겨둔 상처받은 아이와 '화해(Reconciliation)'하라고 말한다.
출발은 "고통이 거기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처받은 아이는 마음의 지하실에 숨어 마음의 거실, 즉 의식 위로 올라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리고 지하실에서 거실로 올라오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어지럽고 고통스러워진다. 스님은 아이가 올라올 때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아이를 거실로 불러올려 큰 소리로 말을 걸어보라"고 제안한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린 이제 어른이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고 얘기하라는 것이다. "15분만 매일 이야기를 해 보면 머잖아 오랜 장막이 벗겨지고 숨어 있던 두려움이 정체를 드러낸다."
스님은 또 "고통스러운 감정을 보살피려면 먼저 고통스럽지 않은 감정, 즉 기쁨과 행복을 보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술받을 환자가 너무 허약할 땐 먼저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고 쉬어서 체력을 기르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기쁨과 행복으로 다가가는 원천은 '내려놓기'와 '깨어 있음' 이다. 해돋이를 바라보면서 마감이 임박한 보고서나 바람난 연인 문제에 정신을 판다면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없다. "깨어 있음이 부족할 때 그곳에 오롯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호흡 수행을 깊이 한다면 우리 마음 전부를 지금 이 순간으로 가져올 수 있다."
'처방전'도 다양하다. 우선 모든 것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과 온전히 함께하는 '깊은 이완' 수행법이 있다. 호흡하는 동안 뇌, 눈, 귀, 어깨, 폐, 심장으로 옮겨가며 마음을 집중해 몸의 각 부분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방식이다. 마음을 집중해 '제가 …할 수 있게 하소서'라고 말해 보는 메타 명상도 유용하다. '화, 번뇌, 두려움, 불안에서 자유로워지게 하소서', '자신을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와 같은 구체적 명상 문구들도 제시한다.
틱낫한 스님은“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를 치유하면 진정한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한 소녀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스님의 모습. 친구, 부부, 가족 사이에 서로의 내면에 있는 화와 폭력의 씨앗에 물을 주지 않기로 약속하는 '평화협정'도 있다. 이 평화협정은 스님의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의 전통이기도 하다. 9세기 중국의 대선사 임제 스님으로부터 비롯된 '물건 치우기 명상법', 몸·감정·마음·대상을 보살피는 '16가지 호흡 수행법', 내 안의 아이가 하고 싶어할 말을 직접 써 보는 '내 안의 아이에게서 온 편지 쓰기'도 있다. 단, 고통의 원인을 내면으로 돌리고, 명상과 수행으로 다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 한결같은 메시지가 '공염불'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는 곳곳에 보석처럼 박힌 노스님의 말씀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스님은 고통을 외면하기 위한 쾌락 추구를 물고기와 낚싯바늘의 관계에 비유한다. "물고기는 맛있어 보이는 미끼를 보면 물어버린다. 미끼 안에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는 걸 모른다. 깨어 있을 때, 우리는 쾌락의 추구에 내포된 낚싯바늘의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다"(79쪽)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면 내 속에도 있을 그 아이를 향해 말을 걸고 싶어진다. 미소를 보내고, 손을 잡아주고 싶어진다. 괜찮다고, 이젠 다 괜찮다고. 그때의 너는 작고 상처받기 쉬웠지만, 지금은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만큼 강하다고.
틱낫한 지음|진우기 옮김|불광|236쪽|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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