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샹그릴라 - 내 마음속의 해와 달

難勝 2011. 11. 14. 20:25

 

샹그릴라

 

샹그릴라(Shangri-la)는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턴이 1933년에 발표한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나오는 이상향이다.

 

그곳은 쿤룬산맥(崑崙山脈)의 어느 고원지대에 위치한 라마 사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소설은 인도 주재 영국 영사인 콘웨이를 비롯한 4명의 서구인이 탄 비행기가 납치되어 이곳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원 앞에는 카라칼(Blue Moon으로 번역된다)이라는 8500m의 산이 솟아 있고, 그 아래 기름진 계곡에서는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풍부한 물자가 생산된다. 놀라운 것은 이 라마 사원이 중앙난방과 같은 현대적 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도서관에는 서양의 모든 책이 구비되어 있으며, 로첸이라는 중국 여인이 쇼팽의 피아노곡들을 완벽하게 연주한다는 점이다. 이 사원은 룩셈부르크 출신 가톨릭 사제가 18세기 초에 건설한 후 우연히 이곳에 들어오게 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되었다. 어쩐 일인지 이곳 사람들은 나이를 천천히 먹어 한없는 장수를 누린다. 주인공 콘웨이는 원장 라마승이 바로 설립자 신부로서 나이 300세에 달해 이제 조만간 죽을 것이며, 그가 이 사원을 이끌어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듣는다.

 

모든 유토피아 작품이 그러하듯 이 소설 역시 해당 시대의 문제와 열망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거치고 난 후 또다시 전쟁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려 하는 암울한 시대에 쓰였다. 찬란한 근대 서구 문명이 모조리 파괴되어 사라질 것처럼 보이던 당시, 시간의 흐름마저 거의 초월한 아득히 먼 이국땅에 이상적 공동체를 지어 그곳에 서구 문명의 정수를 보존하고자 하는 꿈이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샹그릴라는 위기에 처한 서구가 탈출구를 찾는 과정에서 창안해낸 동양적 신비주의의 이상향이다.

 

샹그릴라가 원래 어느 지역인가 하는 문제는 부질없는 논쟁일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의 호기심과 돈벌이의 욕심이 괴이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1997년 중국의 윈난(雲南)성 정부는 디칭(迪慶) 티베트자치주가 샹그릴라라고 선언했고, 2001년에는 중뎬(中甸) 시를 아예 샹그릴라(香格里拉)로 개명했다. 그동안 티베트족 주민들이 야크 방목을 하던 곳이 어느 날 유명한 관광지로 변모했고, 그 후 10년 동안 23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샹그릴라는 '중국의 현대 관광산업 사상 최고 발명품'이 된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짝퉁' 낙원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오늘날의 사람들이 마음의 안식을 갈구하는가 보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